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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Oct 28. 2021

글을 통해 재 탄생한 내 삶의 순간

그렇지만 요즘은 외식을 하기만 해도 사진을 한 장씩 찍는다. 

얼마 전부터 국가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요양보호사이다. 이게 국가자격증인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인이 한다길래 엉겁결에 함께 시작했다. 한 달 반 동안 난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8시간씩 수업을 줌을 통해 받고 있다. 집에서 수업을 받다 보니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가 엉망이 날이 많다. 재미없는 수업내용이 있는 날은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리기도 하고 가끔은 사적인 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묵묵히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요양보호사 교육이다 보니 대부분 노인성 질환과 그에 따른 요양보호사의 행동대처 능력에 대해 배우게 된다.  현장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는 간호사분들이 교육을 하시다 보니 사례를 많이 얘기해주신다. 특히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듣다 보면 치매가 남일이 아니고 점점 내 가족, 내 지인, 내 일처럼 감정이입이 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상 행동들이 이어지고 단기 기억상실로 인해 가까운 시간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맘이 아픈 것은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남편, 내 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동안 미처 못해준 말들, 요즘도 잘하지도 않는 포옹이나 얼굴 뽀뽀는 어떡하란 말인가. 


아이들이 커버려서 학원이나 친구들 모임이다 하면서 얼굴 제대로 바라볼 기회도 많지 않다.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고 3 아이는 밤 12시쯤 들어와서 10분 정도 그날 있었던 일이나 감정에 대해 내 앞에서 쏟아내듯 말한다. 밤 12시면 난 이미 비몽사몽이라 아이가 하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둘째 아이는 아직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고주알미주알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이말에 어른다운 질문을 하면 싫어한다. 예를 들면 "네 친구 OO 왜 그렇게 행동해?" , "OO는 언제 해? OO는 어디서 해?"처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하면 "엄마, 왜 그렇게까지 물어봐?" 하면서 세세하게 말하던 것을 멈춘다. 그저 엄마인 나는 궁금할 뿐인데 말이다. 그저 아이가 말해주는 정도만 감사하면 듣게 된다. 혹여 아이가 사춘기라도 심하게 와서 말문을 닫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일상들에 그저 감사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시간들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나에게 아무것인 순간으로 될 것이다. 


내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에요
<여덟 단어>  -박웅현-


요즘은 가족들끼리 어디를 가던 사진을 찍는다. 예전에는 여행을 갔을 때만 사진을 찍었다. 여행은 내 인생에 특별한 순간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기려고 찍는 거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 속에 담긴 여행 사진을 보면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행복해한다. 난 원래 음식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은 외식을 하기만 해도 음식 사진을 한 장씩 찍는다. 가족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나에게 점차 특별해지고 있다.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나 보다. 4명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점점 쉽지 않다. 모두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밥만 후딱 먹고 흩어지기 바쁘다. 아이들이 성장하다 보니 점차 부부만 덜렁 남아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두 모여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 마치 여행 온 듯 행복하다. 






순간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예전에는 사진이 유일했다. 그런데 요즘 글을 쓰는 게 나의 무기가 되었다. 기억을 글로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재주이다. 멋지게 글로 남겨놓은면 더 좋겠지만 그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내 삶을 하나하나 남겨서 누군가가 다시 펼쳐볼 수 있다는 게 소중한 거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생긴 거다. 내 글은 기억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글로 남겨진 순간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게 된다.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게 있을 거다. 다만 난 언제나 손쉽게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을 익히고 있는 거다.


사진을 찍고 나면 장소와 물건, 사람만 저장할 수 있는데 글로 쓰다 보면 그날, 그 순간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펼쳐놓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 내 살아갈 방향과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인데 미처 전달하지 못한 말들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혹여 나중에 내 가족들이 이 글을 보게 되면 나를 추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돌아가긴 친정엄마를 자주 떠올리지만 엄마가 했던 행동들이나 얼굴만 기억할 뿐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내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무엇을 고민하고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정색하면 말하긴 쑥스러워 제대로 하기 힘들다.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내 삶이 글이 되는 순간 의미 있는 순간으로 재탄생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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