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프레드릭>을 읽고
#자기사랑#내안의예술가#나다움
"너는 왜 일을 안하니?" 라는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들었었다. 평생 끝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고 무언가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많다. 함께 생활인이 되어 살아주지 않아서이다. 그럼에도 난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의 관심사와 의미있는 일은 현실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 자신에게 많은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왜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할까? 나는 왜 이상적인 것을 붙잡고 있을까? 나는 왜 돈을 버는 일에 무관하고 싶어할까?' 이런 생각들에 시달리면서도 현실에 뛰어들지는 못했다. 중년 여성의 현실이란 배운 게 좀 있다고 해도 막일을 해야 목돈을 벌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게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랑이 있다면 내가 망가지고 의미가 없는 일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책<프레드릭>에 등장하는 프레드릭은 들의 돌담에 사는 들쥐이다. 다른 들쥐들이 열심히 곡식을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눈을 개슴츠레 뜨고 앉아있다. 다른 들쥐가 "프레드릭 너는 왜 일하지 않니?"하고 물으니 프레드릭은 매번 "나는 햇빛을 모으고 있어... 나는 들에 있는 색깔을 모으고 있어... 나는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라고 이야기한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몽롱하게 앉아 있는 프레드릭의 모습은 영낙없이 무책임한 나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되었다. 생쥐들은 모아둔 식량을 맛나게 먹고 예전에 만났던 어리석은 여우와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이야기마저 다 떨어졌을 때 들쥐들은 의욕을 잃고 회색빛의 어둠에 갇혀버린다. 그리곤 문득 프레드릭이 모아두었던 식량을 떠올린다. "프레드릭 네가 모아두었던 식량들은 어디에 있어?" 그러자 프레드릭은 들쥐들에게 여름날 모아둔 따스한 햇살 이야기를 해준다. 눈을 감고 장면을 떠올리는 들쥐가족의 평안한 모습. 잠시 후 들쥐가족은 따스한 햇살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또 다른 것은?" 프레드릭은 들에서 만났던 초록 풀들과 빨간 양귀비와 딸기를 떠올리며 이야기 해준다. 잊고 있었던 풍성함과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며 들쥐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또, 또 다른 건 없어?" 들쥐들의 성화에 프레드릭은 자신이 모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송이는 누가 뿌릴까? 얼음은 누가 녹일까? 궂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맑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유월의 네잎클로버는 누가 피워 낼까? 날을 저물게 하는 건 누구일까? 달빛을 밝히는 건 누구일까?
하늘에 사는 들쥐 네 마리.
너희들과 나 같은 들쥐 네 마리.
봄 쥐는 소나기를 몰고 온다네.
여름 쥐는 온갖 꽃에 색칠을 하지.
가을 쥐는 열매와 밀을 가져온다네.
겨울 쥐는 오들오들 작은 몸을 웅크리지.
계절이 넷이니 얼마나 좋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사계절."
이야기를 듣는 들쥐 네 마리의 뒷모습은 진지하고 사랑스럽다. 들쥐들은 새삼 프레드릭이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들쥐들은 감탄하며 말한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나도 알아."
프레드릭은 외부적인 압박이나 자신의 죄책감이 아니라 가장 나답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시인으로서의 길이었다. 햇빛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며 열심히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했다. 다른 들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나무라듯 왜 일하지 않느냐고, 꿈꾸고 있는 거냐고 했을 때 프레드릭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 내었다.
내 안의 시인을 긍정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만의 길을 잘 가고 있노라 당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을 찾으려 애썼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고 성취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심신통합치유학을 공부하며 나 자신이 먼저 많은 변화를 하고 치유되었다. 아직도 개똥같은 공부를 하느라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젠 그런 그들의 견해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나침판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내 안의 예술가가 흔들리지 않는 그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대와는 다르게 내 안의 예술가가 살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수긍해주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뭐가 진짜 맞는 길일까하고 고민만 하면서 보냈던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내 안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 나를 먼저 사랑해주는 길이며 훗날 타인사랑이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