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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Feb 06. 2023

얼음-땡!

"우리가 기다리는 날만 동이 트는 것이다." - 데이비드 소로우

얼음땡이라는 놀이가 있다. 술래가 나를 잡으러 오면 얼음을 외치며 스스로를 얼음 상태로 만든다. 그러다가 자비로운 친구가 나타나 땡하며 몸을 만져주면 그 순간 얼음이었던 친구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술래를 피하려 얼음이 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법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얼음이 되어 꼼짝 못하게 된 아이는 언제까지 도움을 기다려야 할까? 만일 친구들이 모두 춥다고 집에 가버리면 언제까지나 그대로 멈춰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얼음이 된 아이는 스스로에게 땡을 외쳐줄 수는 없는 것일까?


겨울이 끝나가고 햇살이 따스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문득 동안 내가 얼음상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쳐 멈춰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자각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저 시간을 견디고 참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힘들다기보다는 아무 감각이 없는 얼음처럼 그렇게 멈춰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말짱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양새로 보였을 것이다. 조금 눈빛이 멍해보이는 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웃음이 없는 건 이제 늙어가며 감정이 무디어가고 있는 걸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건 학기가 끝났고 방학이기도 하니까. 책을 읽지 않는 건 집안일에 열성을 부리려는 걸로 보이니까. 그런대로 아주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고 아주 나쁜 마음상태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한데 이제 겨우 힘을 내어 책을 읽고 글 한줄을 곰곰히 되새겨 보면서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고나니, 동안 내가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한 세상에 갇혀 있었구나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막연히는 알고 있다. 동안 여러가지를 해내야했고, 인간관계를 잘 풀어야 했으며, 나의 한계를 절감하며 미래가 어지럽게 여겨져 걱정을 했다. 한 마디로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있었다.


셀프고립을 원했던 것일까? 결국 나는 년초에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아팠다. 심한 몸살에 몸져 누웠고, 입맛을 잃어 살이 빠졌고, 목이 아파 지금까지도 걸걸하다. 두 주가 넘게 아픈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절로 정리가 되어진 것 같다. 보고싶은 사람도 없고, 굳이 의미를 가져야하는 관계도 없고, 잘해줄 사람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저 이렇게 나를 건사하며 내 삶을 살아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월 중순에 갑자기 고양이 유가 세상을 떠났다. 3일을 심하게 앓다가 큰 병원에 데려간 날, 응급처치를 받던 유는 그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만난 유는 기진해 있었고 눈빛은 힘을 잃어 있었다. 나와 큰딸 아이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울었다. 미안하다며 고마웠다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그렇게 이별을 했다. 그 아이를 먼 경기도의 어느 모르는 곳에서 화장시키고 유골을 가져온 후, 나는 새삼 유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깨닫고 여러 날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었던 그 존재가 천사였고, 축복이었음을 유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의 힘겨움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것이 어지럽게 느껴졌다. 나는 새삼 나라는 인간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참으로 약할 뿐아니라,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을 하려 살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살아내는 것으로도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땡을 외쳐주기 전까지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신세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무디어져 웃음을 잃었고, 의욕도 잃었다. 의미있는 일이 특별히 없었고 내가 누군가에 무얼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런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를 막연히 기다렸던 것 같다. 몸과 마음에 힘을 잃은 존재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오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힘을 회복시켜줄 존재는 진정 없을까? 전능하신 하느님이나 운명이나 별자리의 위치가 주는 역학관계 같은... 막연하고 답답한 시간을 한참 지나 보낸 후 이제 조금 정신이 든 것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땡을 외쳐야 한다고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속삭임이다. 힘들겠지만 그래서 꼼짝 안하고 싶겠지만 삶의 본성안에 머물며 이 시간 안에서 다시 힘을 내어보라는 속삭임이다.


나는 지금 깨어있는가? 나와 맞닿아 있는가? 나의 깊은 서러움과 슬픔을 잘 느끼고 있는가? 그걸 덮으려 무감각 상태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 충분히 머무르고 있는가? 과거나 미래에 내 마음을 뺏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머문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 힘을 얻고 있는가?


'우리가 기다리는 날만 동이 튼다'는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처럼 나의 나날은 깨어기다리는 날만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아쉽게도 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내가 원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살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오히려 힘을 찾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젠 얼음에서 나오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땡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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