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상 Mar 11. 2024

방귀 이야기는 누구나 즐겁다

그림책<방귀쟁이 며느리>를 읽고

#방귀쟁이며느리#방귀소리#소리알아차림#동요고향의봄


이번 주 노인치매케어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자리로 모셨을 때는 표정이 담담하고 지루해 보이셨다. 일주일을 잘 보내셨는지 인사를 드리고 나서 기공체조를 응용한 두들기기를 했다. 정수리를 손끝으로 두들기며 뇌가 살아난대요 하니 응?하는 표정으로 자못 진지해지신다. 잼잼이를 하며 심장이 튼튼해지는 체조라고 하니 열심히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신다. 가슴치기, 배치기를 하고 발치기까지 하며 체조를 마무리하였다.


몸을 움직여 보셨으니 이제는 목소리를 여실 차례이다. 어르신들은 센터에서 그리 말을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다른 센터를 다니시는 지인의 아버님은 색칠하기와 만들기만 기계적으로 시키고 옆사람과도 말 한 마디 안하고 집으로 온다며 불만을 털어 놓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책을 읽으며 옛이야기도 하시게 하고 생각을 털어 놓게 하며 인지자극을 드리고자 애쓴다.  동요<고향의 봄>은 어르신들이 어린시절 부르셨던 기억도 있으실테고 고향도 생각나게 하니 여러 면에서 감성을 살아나게 하는 게 아닐까 기대가 되었다. 어르신들은 늘 진지하시다. 정성껏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시고 열심히 참여하셨다.


그림책<방귀쟁이 며느리>를 읽을 땐 이야기가 다소 과장이 많다는 사전지식을 드려 너무 부담을 갖지 않게 해드렸다. 시집을 간 색시가 방귀를 참다참다 얼굴이 메주덩어리처럼 되어버려 도저히 못참고 방귀를 뀌는 대목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방귀를 좀 뀔라니께 아버님은 솥단지 뚜겅을 잡으시고, 어머님은 문고리를 잡으시고, 서방님은 아무거나 잘 잡으시요, 잉?' 그렇게 말하고 며느리는 '뿡빵뺑삥뽕'하고 방귀를 뀌는데 아버님은 솥단지 잡고 날아가 닷새만에 집에 돌아오시고 어머님은 문짝과 함께 날아가시고 서방님은 훨훨 던져졌다 돌아와 무서워 벌벌 떠는 장면에서 어르신들은 '하하'하며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시던 어르신도 오늘은 눈을 뜨고 잘 집중해주셨다. 방귀쟁이 며느리 덕분에 오히려 재산을 모으고 모두 잘 살게 되었다는 결말을 들려드리며 며느리의 방귀소리를 한 분씩 내보시라 마이크를 대어 드리니 어떤 어르신은 '피웅피웅'하시며 엉뚱한 소리를 내셔서 다들 웃음을 터트리게 하신다. 또 어떤 어르신은 부끄러워 박장대소 하시면서 소리를 못내신다. 그래도 최대한 소리를 내보시라 권유하니 '뿡'하고 말씀하시고 또 크게 웃으셨다. 그 웃음이 참 즐거워 보였다. 열두 분의 방귀소리 재현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책읽기 시간을 마감했다.


방귀소리와 연계해 소리알아차림을 하고자 악기준비를 미리 부탁드렸다. 센터에 있는 악기 중 가벼운 마다카스, 트라이앵글, 케스터네츠, 에그 쉐이커를 각자 나누어 가시고 고향의 봄 노래에 맞추어 소절마다 같은 악기별로 연주를 하라고 주문해 보았다. 트라이앵글이 연주될 때 울리는 소리와 케스터네츠가 연주될 때 울이는 소리가 다름을 경험하고 머물러보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 함께 연주를 할 때도 알수없는 해소감과 힐링의 느낌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모두 눈을 감고 한 분만 돌아가며 연주하는 걸 들으라고 말씀드리니 그 소리를 맞추기도 하시고 집중하시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고 귀여우시다.


한 시간의 수업이지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건강체조로 몸자극을 하고, 동요부르기로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의 물꼬를 트니, 그림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몸과 마음도 살아나 반응이 좋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방귀 이야기가 즐거움을 주고. 직접 방귀 소리를 내보는 것이 또한 부끄러움을 자극하며 웃게 하고, 악기 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힐링하는 시간이 되었다. 늘 그렇지만 어르신들은 표현이 서툴러도 즐기고 계시고 좋아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마치고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드릴 때 '고맙다'며 보내주시는 미소에 모든 피로함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담 주에 더 즐거운 이야기로 만나길 약속드리며 오늘 수업을 글로 남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매노인과 그림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