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쯤... 미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드디어 구직을 해서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을 1년 정도 했었다.
입사를 8월엔가 한 것 같은데 샌프란시스코는 하루 안에 4계절이 다 있는 것처럼 하루 중에도 온도차가 컸고, 특히 아침에는 너무 춥고 싸늘해서 옷을 어떻게 입어도 늘 한기가 느껴졌다. 결국 입사 후 몇 달 되지 않아서 감기에 걸렸고, 기관지가 약한 나의 감기는 늘 초반부터 기침을 동반하는지라 사무실에 앉아서 몇 차례 콜록거렸던 것 같다.
이런 나를 본 뒷자리 동료는 즉시 자리에 없던 매니저를 찾아 데리고 와서는 나를 집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매니저도 즉시 집에 가서 쉴 것을 권했다. 허걱... 아직까지 한국적 회사 마인드를 거진 나로서는 매우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다. 기침 좀 한다고 집에 가라니... 물론 요즘같이 코로나를 겪은 후코로나 문화(?)로서는 한국에서도 애초 감기기운이 있으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안전할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 그렇겠지?... 잘 모르겠다. 요즘 문화가 어떤지...) 아무튼 집에 가란다고 정말 가야 할지 사양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매니저는 아픈데 사무실에 앉아서 동료들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전파하느니 집에 가서 쉬는 게 나도 돕고 남도 돕는 일이라 했다. 되게 맞는 말이고, 집에 보내주는 것은 고마운데, 또 한편으로는 뭔가 매우 차갑고(?) 섭섭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내가 10년간 일했던 한국의 직장문화는 이럴 때 따뜻한 국물 음식을 사주거나 차를 타다 주거나... 약은 먹었는지 묻거나 하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아무도 조퇴를 시키지는 않는 것이었는데... 뭔가 고마우면서 서운했었다.
지나고 보니, 미국에서는 아무도 아픈데 굳이 꾸역꾸역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 좀 아파서 재택을 하겠다는 메일만 보낸 체 집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병원에 간다고 잡혀있던 미팅들까지 취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나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공부하고 성장하여,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10년간 해온 나로서는 한국적 반응이 훨씬 정겹고 편한 느낌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픈데 쉬는 것은 사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아픈데도 일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분위기에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합리적인 일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 아프다고 조퇴하거나 결근하는 동료나 후배를 볼 때, 건강관리를 어찌하길래 그리 쉽게 아픈지, 아니 얼마나 아프길래 회사를 쉬는 건지 등등의 생각까지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간혹 한국정서가 정말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어지간하면 점심때가 되면 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챙기는 것, 저녁에도 걸핏하면 야근하면서 저녁도 먹고, 퇴근도 같이 하면서 동료에서 친구가 되어가고 쌓아가는 정은 정말 종종 그립다. 미국에 와서도 가장 자주 연락하고 격의 없이 지내는 육아동지들은 모두 한국에서 같이 일하다 결혼 후 어찌어찌 하나씩 미국으로 이주해 온 옛 회사 동료들이다.
여기서는 오후 4시만 되어도, 아이 픽업하러 간다거나, 집이 멀어 (그래봐야 대부분 30-40분 운전거리) 트래픽이 심하니 일찍 간다며 사라지고 없다. 5시 무렵이면 전체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
그래서 싫으냐고? 뭐.... 근면하고 성실한 직장생활은 물론 미덕이지만, 비나 눈이 조금 많이(?) 오는 날에는 안전을 위해 재택을 하고, 조금 몸이 안 좋은 날에도 재택을 하고 몸을 챙기는 여유는 가지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