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지난 20여 년 직장경험 중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아마도 내가 서있고 싶던 위치와 당시 내가 서있던 위치의 거리가 가장 멀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 밤 울면서 일기를 끄적이면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문구들을 되새기며 버텨내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되새기던 문구들은...
현재 받는 돈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날이 온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등등이었던 것 같다.
길게 보면 이런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아주 길게 보아야만 그렇다... 순간순간은 노력이 배신하기도 하고, 늘 받는 돈보다 더 일하는 날들의 연속일 수 있다.
20여 년 직장생활 동안, 한국, 미국, 싱가포르에서의 외노자의 나날들 중에는 억울한 날들, 모욕적이었던 날들, 자존심이 시궁창에 떨어진 것 같았던 날들이 숱하게 많았다. 그럴 때 나를 하루 더 버티게 해 주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직장에서 그래도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들, 모두가 나를 오해하지는 않는단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동료들, 그래도 포기하거나 도망치는 것보다는 버티는 쪽을 택하고야 말았던 나의 질긴 근성(?) 덕분이기도했지만, 가장 큰 힘은 긴 인생에서 어느 시점에는 어딘가에 다다라 있고 싶다는 바람, 꿈이 아니었을까... 특히, 긴 커리어 인생의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게 해주는 로드맵은 매일매일 생기는 고난을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타고난 계획형 인간이었던 내가, 지금 돌아봐도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되는 한 가지는내 커리어에서 10년, 20년 후에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를 그린 것이었다.지금 꼭 그때 그렸던 그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20년 전의 나보다는 훨씬 더 목적지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그렸던 로드맵은, 마치 여행할 때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갈 곳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어떤 이유로든 방황을 하게 될 때, 감정에 치우쳐 곧 후회할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먼저 10년, 20년 후의 목표점 적은 다음, 다시 5년, 1년 단위로 좀 더 작은 목표점들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나면 그 작은 목표들을 위해 지금 해야 할 것이 쉽게 떠올려지고, 그것들을 적어두고 실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로드맵을 머리에 새기고나니 커리어의 고비마다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당장 직장에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길게 보았을 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지금 이곳에서 버티고 이겨내는 나와 닿아 있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나 상황에 지지 않고 하루 더, 한걸음 더 내디뎌보는 근성을 저절로 키우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버텨낸다고, 노력한다고 항상 모든 일들이 바라는 대로 풀리거나 보상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게 마음에 새긴 로드맵은 비록 내 계획과는 다른 방법이 될지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들로 데려다 주기는 한다... 내가 바란 방법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때로는 더 느리게, 또 때로는 더 빠르고 재미있게, 종종 더 많은 경험과 모험을 겪게 하면서 결국은 목적지에 근접하게 나를 인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