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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Mist Jan 30. 2024

두 번은 못할 싱가포르 취업여행, 첫날의 추억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다니던 외국계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로 잘리고 나서 한동안 억울하고 세상이 나를 등진 것 같았던 마음을 조금 털어내고 나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해졌다.


원래는 대만지사로 옮겨갈 가능성을 매니저와 의논 중이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매니저를 포함해서 팀이 통째로 날아간 상황에서 대만은 더 이상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한국어 외에 그나마 가장 잘하는 것은 영어이니 영어가 통용되고, 안전한 곳, 외국인에게 기회가 잘 주어지는 곳, 고민의 여지없이 싱가포르외에는 답이 없었다.


가능하면 한국에서 미리 잡오퍼를 받고 가면 좋을듯하여 링크드인을 통해서 그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지원해볼 만한 포지션들에 지원을 했고, 화상 인터뷰, 전화 인터뷰 혹은 한국에 지사가 있고 인터뷰할만한 누군가가 있는 경우는 한국 지사에 내방해서 인터뷰할 수 있도록 조율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 요청은 종종 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영어실력도 물론 지금보다도 더 허접했지만, 무엇보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경험과 경력이 있었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설명하지 못했었다. 한편으로는 거리적인 약점도 있었다. 비슷한 경력자라면 당연히 당장 현지에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결국 나는, 계획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그냥 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이전 회사의 고용기간이 끝나는 날로부터 1주일 뒤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를 끊었다. 장기체류 비자가 아직 없었으므로 일단 3개월 뒤 돌아오는 왕복을 끊었다. 가서 잡오퍼를 3개월 이내 받으면 한국행 티켓 날짜를 바꾸고,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면서 다시 3개월 체류기간을 확보할 작정으로...


나이 서른 중반에 처음으로 독립해 나가는데... 일자리도 없이 장기적인 거처도 없이 2달 계약한 임시 아파트만 믿고 짐을 꾸리는 상황이라니... 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가서 정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캐리어 2개에 나름 소중히 생각하던 물건들만 추려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날 체크인이 늦어서 빠른 통과를 위해 나와 동행해 주시던 공항 직원분의 목소리, 그날 이륙 시점에 느껴지던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 그때의 비행기 좌석 등등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나름 계획했던 대로 그러나 무계획으로 싱가포르에 임시 둥지를 틀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앞 호커센터에서 밥 먹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일단 밥은 먹어야지... 그렇게 싱가포르 이주 아닌 이주 후 나의 첫 식사는 Nasi Lemak... 웃프게도 내가 갔던 그 집의 나시레막은 그전이나 이후 먹었던 모든 나시레막 중 가장 맛있었다. 인생 나시레막을 이렇게 생애 가장 심난한 날들 중 하나로 기억될 날에 먹다니... 그야말로 눈물은 떨어지는데 맛은 있어서 감동하며 먹은 슬픔과 희열이 묘하게 교차하는 인생 나시레막을 먹으며 취업해서 반드시 이 집에 다시 와서 온전히 기쁘고 맛있게 다시 먹어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2년쯤 후에 정말로 팀 사람들과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맛은? 여전히 너무나 맛있었고 현지인인 팀 사람들도 모두 감탄하며 먹었다..


무모하고 용감했던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 하라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서른 중반의 외롭고 스산했던 수개월을 그래도 맛있는 음식과 더운 날씨 덕분에 버텨냈던 것 같다. 지금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일부러라도 밥은 맛있게, 뜨끈하게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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