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흥미롭다. '연애 빠진 로맨스', 연애가 없는 사랑, 이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을 가장한 장난일까?
성관계를 클로즈업 하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잡지회사에서 일하는 박우리(손석구)와 팟캐스트사업을 준비하는 함자영(전종서)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오작교미'라는 데이팅앱을 통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박우리는 섹스칼럼을 쓰기 위해, 그리고 함자영은 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둘은 어색한 첫 만남에서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지만 데이팅앱의 특수성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렵게 다시 만난 장소에서 고민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박우리에게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그녀와의 만남은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함자영처럼 솔직하면서 섹스칼럼이지만 섹스가 없는 칼럼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함자영도 의외로 잘 맞는 박우리가 싫지는 않다. 서로 상처가 있어 연애가 어려운 그들에게 서로는 힘이 되어준 것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박우리는 함자영에게 진실한 마음이 생긴다. 그의 솔직한 감정에 함자영은 처음에는 불편해하지만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둘 다 연애 빠진 로맨스가 아닌 연애를 하고 싶게 된 것이다. 과연 둘은 연애가 없는 사랑에서 사랑을 찾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1시간 35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가볍게 보기 좋은 '연애 빠진 로맨스'는 보는 내내 즐거웠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박우리와 함자영의 티키타카로 많은 개그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간중간 뼈가 있는 말들은 연애와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잡지를 읽는 이유를 묻는 편집장의 말에 여러 작가가 어렵고 고급스러운 단어를 쓰면서 이유를 분석하지만 그 이유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감정에 있었다. '행복하고 싶다.' 독자들은 잡지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나는 잡지뿐만 아니라 다른 글도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글은 우선 재밌어야 한다. 독자들은 제목부터 '이거 읽고 싶은데?', '이거 재밌겠는데?', '이거 무슨 내용일까?'라는 호기심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글 안에서 감동을 느끼든, 공감을 하든, 행복하든.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한다. 글이 읽힌다는 것은 독자들이 하나의 글을 읽고 느낀 카타르시스를 다시 느끼고 싶어 다른 글들을 찾아 읽는 과정의 반복이다. 따라서, '작가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독자들이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야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글이 어떤 것인가?
-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미 안에 감동적인 요소가 있어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하고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도록 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적이면서 재밌고 주인공의 성장이 보이는 글. 그래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 '어? 나도 저런 생각해봤는데.'라고 공감이 되는 글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함자영이 술집에서 친구들에게 하는 이 말은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연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로워서, 그렇지만 내 옆의 연애 상대는 그 외로움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하니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같이 하는 것들은 재밌으니깐 연애를 한다.
그렇지만, 연애는 힘든 노역과 같다. 상대가 내 감정을 위로해주는 만큼 나도 상대의 감정을 이해해줘야 한다. 상대방의 외로움을 해소시켜줘야 하고 사랑을 계속해서 표현해줘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감정 쓰레기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느 순간 나만의 시간은 없어지고 그를 위한, 혹은 그녀를 위한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집에 있을 때도 상대방 생각, 일을 할 때도 상대방을 생각해야 하니 내 인생에서 나의 위치가 줄어든다. 그렇기에 피곤하고 어느 순간 권태기가 찾아온다.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만들어서 헤어지면 '왜 헤어졌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잘못했네' 부터 '걔가 잘못했네'.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 헤어졌음에도 연애로 감정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기간은 기약이 없다. 결국, 연애는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피곤한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애에 목숨을 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번에는 다르겠지. 다를 수도 있지.' 라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그래도 연애를 하는 순간의 기억에는 분명 행복도 있었기에.
이 영화에서 제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이것이다. 오작교미라는 데이팅앱을 통해 만난 둘은 처음에는 연애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원나잇 상대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잘 맞아서 계속 생각났고 어렵게 두 번째 만남을 가지며 연애는 아닌 로맨스가 시작된다. 하지만 로맨스 역시 사랑이다. 연애 없는 로맨스는 사실 말장난일 뿐이다. 로맨스가 있다면 언젠가는 연애가 따라온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모르지만 연애 없는 로맨스는 원나잇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한다면 옆에 두고 싶고 매일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결국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어떻게든 피곤할 수 있는 연애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피곤함을 선택하는 모순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연애가 피곤하다고 연애 없는 로맨스는 참을 수 없다.
두 번째 만남에서 함자영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박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가장 친한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 아니다, 매우 아니다.' 중 어떤 선택지를 고를까?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렇다를 택할 것이고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진짜 친한 사람이라면 그나마 솔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보통을 선택할 것이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상대가 없기에 친구가 많은 사람도 외롭고, 진실한 친구가 있는 사람도 외롭다. 가면을 벗더라도 마스크는 쓰고있는 느낌이랄까?
본인의 비밀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 애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가장 친한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누구나 있기에 가끔 '사실은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한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사람에게 오늘 하루 보고 평생 안 볼 사람에게 내 비밀을 말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더 솔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소중한 사람은 지키고 싶기에 이 말을 해버리면 영영 잃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있다는 마음은 있지만 모든 비밀을 말해줄 수는 없는 관계. 지키고 싶은 관계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모순적이다.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박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는 소설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런가. 제가 그 이후로 소설을 다시는 못쓰겠더라고요."
- 그 소설 제가 쓸 수 있게 도와줄까요?(함자영의 대답)
사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를 본다면 한 사람이 반드시 생각날 것이다. 그렇게 또 다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봐야한다. 그렇지만 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또는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복수심. 혹은 그 사람에게 행복해보이겠다는 미련이 모여 여러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보고 다시 아프고 더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