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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May 06. 2022

달을 향해 가는 요금 6센트.
아마 그건 편도였겠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마지막 문장

달에 관한 매력적인 이야기 두 편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등학생 때 EBS 영어 교재에서 읽은 짧은 단편이에요. 

제목은 ‘달을 사랑한 남자’입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에요.  


    



옛날 어느 마을에 달을 사랑하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매일 달을 바라보기 위해서 

달이 뜨고 다시 질 때까지 

마을의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아갔어요. 

하루하루 달에 대한 사랑이 커지자 

이제 그는 달을 볼 수 없는 한 낮이 견디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달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이곳이 아닌 

달이 있는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해요.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 반드시 이끌어 줄 거라 믿으면서요. 

마침내 그날이 왔고, 그는 마을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 벼랑에 섰습니다. 

이윽고 달을 향해 힘차게 발을 굴렀을 때예요, 

갑자기 그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저 달에 가지 못할지도 몰라.”      

힘껏 뛰어올랐던 그는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이 짧은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던 건 

스물일곱 살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IMF는 가뜩이나 별 볼 일 없는 저의 미래를 한층 더 암울하게 만들어 버렸죠. 

가난을 버티느라 모험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었던 저는 대학교 때부터 쭉 해 왔던 학원 강사 일을 계속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많이 힘들었었나 봐요. 진이 다 빠진 채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물끄러미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문득 그 이야기의 결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왜 달에게 가지 못했을까? 

그렇게나 자신의 사랑을 믿었는데. 

단 한 번의 의심이 그를 산산조각 내버린 건 아닐까? 




저는 단 한 번일지라도 결국 흔들려버린 그의 부실한 믿음을 탓하고 싶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 달에게 가지 못한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저에게도 꼭 가서 닿고 싶었던 달이 있었으니까요.     


  



중학생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심야 라디오에 빠진 후 저는 라디오가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꼭 라디오 작가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라디오는 그 남자의 달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대상이었습니다. 

도무지 가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꿈이란 게 그런 거지. 

내가 어떻게 라디오 작가가 되겠어.  

그건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일찌감치 포기한 저는 애써 그 달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외면하며 사는 하루하루도 역시 시시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필 그날 밤 텔레비전 자막으로 나가고 있는 작가 교육원의 라디오 작가 교육 과정 모집 공고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저는 그 남자와는 달리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라디오 작가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달에게 가는 것만큼이나 상상 이상의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달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작가 교육 과정을 수료했지만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작가 일은 알음알음 연결되는 상황이었는데, 

저에게 그런 인맥이 생길 턱이 없었죠. 

게다가 저는 결혼도 했고, 나이도 많았습니다. 

작가 구인이 그래도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제 나이에 메인 작가가 되어있는 분위기이니 

자료조사로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저는 이력서조차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라디오 쪽은 정말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가야 할 만큼 좁았고 그마저도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라디오 수업을 맡아서 하셨던 작가님이 저에게 가벼운 자료 조사를 부탁했고, 

그 일을 최선을 다 해 해 내면서 차츰 기회를 얻게 됐어요. 

그렇게 달을 사랑했지만 결국 그 달에 가지 못했던 그 남자를 떠올린 지 

1년 반 만에 저는 그토록 되고 싶었던 라디오 작가가 돼서 원고를 쓰게 됐습니다. 




‘달을 사랑한 남자’의 마지막을 오래오래 되새기며 지내왔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가 마지막에 흔들리지만 않았다면 달에 도달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달과 관련된 매혹적인 이야기 중 첫 번째예요. 


두 번째 이야기는 이 글의 제목에 이미 나와 있는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이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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