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알림
<브런치>에서 글을 안 쓴 지 한참 됐다는 알림이 '친히' 울린 마당에(알림만 보면 내 글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듯 한 서글픈 착각을 하게 된다)
글귀가 쉬이 이어지는 그날을 떠올린다
그 시절 완성되지 못한 나의 내외면은 뭐라고 해야 할까, 홀로 머릿속으로만 그려낼 수 있는 이상한 생물이었다
생김새야 입술이 두껍고 평균보다 좀 더 큰 키에 조금 마른 그냥 그런 남아였고(멋스럽게 보이려 부단히 신경 쓰는 편)
내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여럿 충돌은 지금에 와서도 설명이 어렵다
자존심, 허세 뭐 그런 것들이었겠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불 킥을 하게 만드는 그 시절은, 대체 무엇이 날 그렇게나 흔들어 댔건 것일까
어울리던 중학교 친구들과는 다르게 동네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중학교 시절은 패거리를 이루어 그다지 억울한 일 없이, 침 좀 뱉으며 지냈던 것 같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솔로 데뷔를 한 것인데,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몸에 익은 어딘지 딱딱하고 건방져 보였을 나의 분위기는 고1 새 학급 시작에 맞춰 발 빠르게 서열정리를 하려던 아이들의 눈에 금세 띄었을 것이다
유독 거슬리게 하는 K라는 놈이 있었는데 그 야비한 놈이 같은 반의 B를 나에게 보내서 시비를 걸게 했다
나는 보란 듯이 B에게 윽박을 질러 보내버렸고 그렇게 신경도 안 쓰고 있었던 사건은 방과 후 상상도 못 한 상황으로 돌아왔다
B가 내 자리로 당당히 걸어와 결투 신청을 한 것이다
10대 시절 누군가와의 싸움이 그렇게 절차를 밟아 본 적이 없었기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너무 짜증이 났다
아 솔로의 서러움이여..
방과 후 까지 여러 생각을 하다가 교실에서 일을 치른다면 보나 마나 눈요깃감이 될 듯하여
(내 싸움을 낄낄 거리며 바라 볼 우리 반 양아치들을 피하기 위해)
나는 학교 밖으로 장소를 옮기자고 B에게 제안했다
돌고 돌아 지하철로 치면 세 정거장을 지나 결투의 장소를 물색하고 결국에 우리는 한판 떴다
걸어서 이동했기 때문에 중간중간 대화도 나눴는데 그 시간에 흐름 속에 점점 나의 투지는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 것은 B가 계속 싸우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체격도 내가 좋았고
아마도 싸움의 경험도 내 쪽이 우세했을 것이다
처음에 자기가 다니는 도장에서 싸우자고 제안할 만큼 B는 어딘가 낭만적이라고 할까, 분명한 것은 악의가 없고 선량한 아이였다
너무 많이 맞아서 그만 때리라고 결투를 스스로 중단시켰던 B의 얼굴이 많이 부어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진정될 때쯤 나는 B에게 K가 시킨 일 이냐고 물었다
B는 그렇다고 했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는데 내가 실수가 잦은 B에게 핀잔을 많이 줬던 모양이다
(나는 제법 농구를 잘했다)
이유가 별로 거창하지 않아서 맥이 조금 빠지기도 했지만 급우들 앞에서 무시받는 것이 마음에 큰 상처가 되어 자신보다 쎄 보이는 나에게 당당히 결투를 신청할 만큼 B는 적어도 나보다 섬세하고 용기 있는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마지막 '결투'였다
30년 가까이 지난 그날의 매치를 여러 번 회자하며 내 주먹을 과시하고 떠들어댔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마다 B는 점점 강한 아이로 각색되어갔고 나는 더 멋진 히어로가 되어 있었다
내 여자 친구들은 한 번씩 꼭 들었을 나의 '라스트 댄스'를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명예스럽게 상기한다
그 시절 10대 사내들은 참 후지다
나는 그래서 다시 10대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과도 바꾸겠다는 말에 공감할 수도 없다
아..! 다시 돌아간다면 B와 함께 일본 청춘만화처럼 즐겁게 농구나 한 게임하고 사죄의 마음을 담아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제일 비싼 즉석 떡볶이도 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