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즈음에
벌써 8월이야? 9월이야? 시간이 저 혼자 갔을 리 없는데 달력이 바뀔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한다. 정신없이 바쁘던 날도 빈둥빈둥 아무 일 없던 날도 시간은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처럼 정직하게 흔적을 남긴다.
내가 육십이라고? 달력을 보듯 영혼 없이 놀랄 뿐 나이 먹는 일에 무감하게 살았다. 흰머리가 생기고 눈가에 주름이 생겨도 별 타격감이 없었다. 출생 연도야 여기저기 적을 곳이 많지만 누구도 내게 나이를 묻지 않고 나도 물을 일이 없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서 나이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순셋이 된 올해, 손목이 아파 새로운 작업을 포기하면서 비로소 내 나이를 실감했다. 잔뜩 준비했으나 쓸 수 없을것 같은 나무판과 조각도를 어디에 쓸지 궁리 중이다. 손목뿐 아니라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벼락같이 깨달았다.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고 스스로 나이 감옥에 갇혀 버렸다. 말끝마다 나이! 나이! 나이!
나이에 집중된 에너지를 쏟을 곳이 필요했다. 나이 듦을 주제로 브런치북을 만들기로 했다. 나이 들어가는 나를 관찰하고 쓰고 읽고 공감을 나누며 잘 나이 들고 싶었다. 노년, 늙음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도 다양하게 찾아 읽으며 늙어 갈 준비를 했다. 문제는 5화까지 쓰고 보니 나이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게 두렵지 않았다. 나이타령으로 나이를 넘어 선 기분이다. 나를 압박하던 나이의 무게는 사라지고 내가 써야 할 글만 남았다.
나이는 사십에도 먹고 오십에도 먹지만 육십이라는 나이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대체로 이 시기에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 보따리를 풀어야 할 시간,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 얼마나 담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자유롭게 살지, 자의든 타의든 더 짊어지고 더 채워야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제 막 은퇴 한 사람, 은퇴를 앞둔 사람, 오래전에 은퇴를 완료한 칠십 대 팔십 대 선배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육십은 늙기엔 너무 할 일이 많다고. 과거로부터 가장 늙었으나 미래로부터 한창 젊은,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나이였다.
그러니 이번 브런치북은 망했다. 죽음은 자주 생각했지만 늙음은 자주 생각하지 않은 자의 나이 들어가는 얘기, 늙음을 맞이하는 자세를 적어보리라 기획한 이 브런치북은 아무래도 20년쯤 후에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기원전 로마철학자 키케로가 쓴 '노년에 대하여'의 화자가 84세, 최근에 관심 있게 읽은 '나로 늙어간다는 것'의 저자 엘케도 82세 현역 작가였다.
늙기엔 젊고 젊기엔 늙은 예순 셋, 그냥 나이 없이 살기로 했다. 아침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잘한 욕망을 쫓아 할 수 있는 건 하고, 할 수 없는 건 가볍게 놓아주면서 유쾌하고 당당하게, 살던 대로 살기로 했다. 10년이나 20년 후, 오늘 망한 브런치북을 다시 짓기로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