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미안한 게 많죠?

by 새해

"하늘나라에 가면 깽판 칠 거예요."


그녀가 느릿느릿 말하고 느릿느릿 웃었다. "그렇잖아요, 머리라도 안 아프게 하던지 빨리 데려가시던지." 하늘나라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는 미경(가명)씨는 뇌에 악성 종양을 가진 서른 살 아가씨다. 눈이 유독 아름다웠던 그녀는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했다. 말없이 허공을 보고 있을 때 무슨 생각하냐고 물으면 "미안한 생각이요. 왜 이렇게 미안한 게 많죠?" 내게 다시 물었다.


때로는 아이처럼 환하고 때로는 죽음을 달관한 노인처럼 덤덤한 그녀는 휠체어에 내려앉는 것은 물론 침대에 반쯤 기대어 앉는 자세도 어려웠다. 침대에 붙박이처럼 누워 미안한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녀가 말하면 내가 받아 적었다. 엄마는 참 좋은 엄마였는데 자기는 나쁜 딸이었다고, 속만 썩여드렸다고. 엄마에게 미안한 얘기를 나열하다 문득 "열심히 사세요! 그래야 후회가 없죠."나를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호스피스병원에서 오랜시간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임종이 가까운 많은 환자를 만났다. 돌쟁이 아가부터 10대 소년 30대 젊은 아빠 40십대 중년 엄마 50대 비혼녀 70대 할아버지 80대 할머니.


그분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시를 읽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와 시를 읽고,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노래를 들었다. 할머니가 밭일을 하며 지어 불렀다는 그 노래는 길고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할머니 스스로 "힘들어도 재밌게 살았지! "하시던 그 모습을 상상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분과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소년의 파티를 준비했다. 개인전을 해 보고 싶다는 분의 전시회를 열고,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분의 결혼식도 올렸다. 병원 사람들과 봉사자들이 뚝딱뚝딱 협심하면 병원은 갤러리도 되고 결혼식장도 되고 연주회장도 되고 눈 오는 날 카페도 되었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은 건 무엇보다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사느라 바빠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거 같아서, 가족끼리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그 흔한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시간. 특히 연세가 많은 부모님 세대는 부부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농담처럼 혹은 진담처럼 말했다.


그분들이 바짝 마른 입술에 물을 묻히고 무거운 눈꺼풀을 참아가며 더듬더듬 꺼내 놓는 말을 나는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기억,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말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고마웠다는 진심,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다는 후회, 항상 지켜주겠다는 약속, 진주 같은 한마디 한마디를 편지로 옮겨 드렸다. 글은 말보다 힘이 세서 오래 묵은 오해와 원망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곤 했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살아온 이력, 자랑, 고마움, 미안함도 다 달랐지만 그분들은 남은 사람들에게 모두 똑같은 하나의 교훈을 주고 갔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정해진 순서도 없고 우리의 계획과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걸 알지만 언제 어떻게 닥쳐 올진 아무도 모른다. 호스피스 병원을 오가며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만일 일 년만 산다면, 한 달만 산다면, 나는 무엇을 만족하고 무엇을 후회할까?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면 내가 끝까지 애써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선명해졌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내 손 잡아줘서 고마웠어요, 저 잊지 마세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온통 미안한 생각뿐이라던 서른 살 미경 씨, 나는 그녀의 곱절을 살았으니 미안함도 그럴 것이다. 헤아리지 못한 잘못은 또 얼마나 많을까? 자신이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말하던 그녀는 타인의 친절을 잘 받아줄 줄 아는 배려있는 사람이었다. 호스피스 봉사자로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때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 준 것이 아니라 그녀가 먼저 내 손을 잡아주었다.


평소 안 먹던 점심을 거하게 먹고 한없이 늘어져 있는 오후, "열심히 사세요, 그래야 후회가 없죠!" 그녀가 나를 다시 타이른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고. 앞서간 사람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그들이 남은 사람들에게 오늘을 돌아볼 기회, 다시 살 기회를 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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