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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해 May 04. 2020

이심전심

 석주명 평전


한동안 우리 나비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 된  석주명 평전 (이병철/그물코) 때문이었다.  한국의 파브르라고 불리는 주명(1908~1950) 선생은 한국 나비의 계통분류를 완성한 분이다. 그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이 직접 산과 들을 다니며  채집하고 측정을 해서 이론을 만들

내가 생물학에  문외한이라 그의 연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이 나비뿐 아니라 물리와 지질, 철학, 일어,영어, 라틴어,방언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어 놀라웠다. 무엇보다 내가 감탄한 건  그가 붙인 나비 이름이다. 이름마다 하나하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비는 단순히 노랑나비 흰나비가 아니었다. 우리말 나비 이름의 70% 이상을  선생이 지었다는데 그가 살아온 시대가 일제 강점기였음을 상기하면 감동은 더 커진다.  


 산푸른부전나비

 선녀부전나비

 시골처녀나비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

 구름표범나비

 부처나비

 기생나비

 굴뚝나비

 수풀꼬마팔랑나비

 꼬리명주나비

 청띠신선나비

 눈많은그늘나비

 벚나무까마귀부전나비

  ......

 언젠가, 오랜만에 전화 한 친구에게 안부도 용건도 묻지 않고 대뜸  “이것 좀 들어봐!” 노트에 적어 둔 나비 이름을 읽어 준 적이 있다. 친구는 뭔 소리냐고 묻지 않고, 자기가 전화를 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나비 이름을 듣고 있었다. 내가 나비 이름을 한참 읊어대다가  실은 최근에  석주명 평전을 읽었는데  나비 이름이 너무 아름답다고, 시 같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친구가 말하길,  시끄럽고 2절이나 계속하라고 했다. 자기는 눈을 감고 듣겠다고.


친구란 이런 것이지! 뿌듯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 잘 통하는 친구와 연락을 않은지 일 년이 훨씬 넘었다. 나는 이 또한 이심전심이라고 믿고 있다.  각자 무언가에 푹 빠져  있거나 아니면 친구고 뭐고 만사가 귀찮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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