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야기
지난 긴 겨울 동안 정원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고민했다. 나의 목표는 꽃으로 가득한 정원을 갖는 것이지만 시간과 노동력은 없었다. 그래서 꽃정원을 만들자는 강한 의지와 3년간의 경험을 엮어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최대한 단순하고 손이 안 가게 계획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잡초를 방지하는 계획을 먼저 세우고, 심는 꽃 종류도 일년초 2종만 하기로 했다. 심을 꽃은 미니백일홍과 메리골드로 정했다. 3년간 심어놓기만 했는데 알아서 잘 불어나고, 장마도 이겨내고 끝없이 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둘 다 흔하디 흔한 꽃이지만 다양한 색을 섞고 군락으로 심으면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로로 긴 화단에는 미니백일홍을 심기로 했다. 먼저 가로 화단을 정리했다. 3년 동안 이리저리 심어놓은 다양한 식물들을 거의 다 뽑았다. 키를 고려하지 않고 느낌 가는 대로 심었던 많은 식물들을 뽑아내서 화분으로 옮겼다. 알아서 불어난 노랑달맞이꽃은 뿌리 나눔 해서 울타리목인 남천 아래로 나란히 옮겨 심었다. 구근도 정리하고 불어난 매발톱 싹도 이리저리 뽑았다. 다시 판판한 도화지가 된 화단에 잡초방지매트를 깔았다. 토치로 잡초방지매트를 길이에 맞게 끊고, 핀을 박아서 고정시켰다. 그리고 꽃을 심을 간격에 맞게 토치로 구멍을 뚫었다. 덮인 부분에는 잡초가 자라지 않고, 만약 자라나도 쉽게 뽑힌다. 잡초 뽑는 수고 없이 내가 보고 싶은 꽃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잔디에는 잔디 제초제를 뿌렸다. 아직 새 순이 트기 전 노란 상태일 때 뿌리면 된다고 한다. 집 옆의 가늘고 긴 텃밭에는 아니나 다를까 작은 망초, 강아지풀, 사랑초 싹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약간 따뜻해진 틈을 타 싹트기 시작했다. 잡초 방지 방법을 검색해 보니 식물을 빽빽하게 심으면 된다고 해서 냉장고에 잠들어있는 씨앗을 꺼내서 모조리 섞고 뿌렸다. 그래도 남는 빈자리에는 동네 공원에서 쑥을 캐와서 심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서 살 적에 봄이면 항상 쑥을 캤다. 할머니가 쑥국 말고 쑥 떡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캤던 쑥을 오랜만에 캐봤다. 뿌리째 캐와서 옆 화단에 심으니 쑥 냄새가 퍼진다. 한 번씩 식탁에 오를 식물들로 가득 채웠으니 이들이 잡초들을 이겨주기를 바랐다.
네모난 화단을 정리할 차례가 되었는데, 이곳은 애플민트가 점령하고 있었다. 삼 년 전에 심은 한 포트가 무럭무럭 번식과 월동을 반복하여 3년간 화단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잘 자라니까 기특해서 딱히 손대지 않았는데, 어찌나 수세가 강한지 곁에 심어놓은 식물들을 잡아먹고 밀어냈다. 국화가 밀려나서 화단 밖 바닥으로 꺾인 채로 불쌍하게 피어나고 라벤더는 빛을 받지 못해 10주가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 년 내내 푸르르기만 하고 큰 변화가 없는 애플민트 화단은 영 재미가 없었다. 큰 마음을 먹고 민트와 국화를 모두 뽑아내고 거름을 섞어서 다시 깨끗한 흙 상태로 돌려놓았다. 여기도 잡초방지매트를 꼼꼼히 깔고 나니 아들이 돗자리 깔아놓은 것 같다며 덜컥 엎드렸다. 제법 땅이 넓었다. 기초 작업은 끝났다.
낮은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한자리 수 기온으로 추워서 아직은 꽃을 심을 때가 아니다. 당장 화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겨우 억누르며 버텼다. 나의 디데이는 식목일이다. 드디어 식목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퇴근길에 단골 화원으로 차를 몰았다. 역시나 봄을 맞아 화원 앞마당이 알록달록한 화사한 꽃으로 가득하다. 기다리던 백일홍을 샀다. 가격이 착해서 한판 가득 살 수 있었다. 충동구매로 하얀 목마가렛도 한 판 샀다. 포트를 가득 싣고 돌아오는 데 차 안이 꽃향기로 가득하다. 가드너들이 제일 설레고 기쁜 순간이 아닐까. 꽃으로만 가득 찬 모습에 절로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모종을 심을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 색을 배치할지 고뇌에 빠졌다. 올여름에 일본 홋카이도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여행 책에서 비에이 농원의 사진을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색을 알록달록하게 섞지 않고 가지런히 배치하기로 했다. 상상이 잘 안돼서 검색도 많이 해보고 챗GPT 이미지 생성도 해서 앞으로 미래를 그려보았다. 미니백일홍은 가로로 긴 화단을 채우고, 메리골드로는 네모난 화단을 채울 것이다. 이렇게 놓아보고 저렇게 놓아보았다. 색 배치를 어떻게 하면 보기 좋을지 이 순간만큼은 유명한 가든 디자이너가 되어서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결정을 내리고 모종삽으로 구멍을 파서 꽃을 심었다. 심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구멍이 많았지만 차차 번식시켜서 채울 것이라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정원은 과정이다. 그리고 정원 일에는 끝이 없다.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이미 있는 것에 감사하며 천천히 가야만 한다. 이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먹게 되는 것이 바로 정원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메리골드는 모종이 다 팔려서 한번 더 화원으로 가야 했다. 덕분에 메리골드 화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을 벌었다. 왜냐면 네모난 화단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내부 면적이 꽤 넓었다. 안에 심어야 할 식물 수가 많았고 그리고 식물 배치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확정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원형 화단을 발견했다.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게 한번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으로 하면 심을 구역을 줄여주면서도 독특한 모양으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유튜브 영상을 뒤져봤다. 못과 끈을 이용해서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 어느 가드너의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도 화단 가운데 못을 박아 끈 한쪽을 고정하고 다른 한쪽 끝으로 동그란 모양을 잡아서 돌로 표시해 뒀다. 한 바퀴를 돌리니 원 모양이 나왔다. 벽돌을 이용해 동그란 모양을 잡고 그 안 쪽에 메리골드를 심을 구멍을 토치로 동그랗게 뚫었다. 4개의 동심원을 따라 바깥 2줄은 노란 메리골드, 가운데 2줄은 주황색 메리골드를 심으면 강조가 될 것 같았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단 3개 포트씩 사온 메리골드를 심었다. 여기도 차차 번식을 시켜서 채우고 알아서 자라면서 점점 부풀어 오를 것이다.
삼 년이 지나니 어느덧 정원 디자인이란 것도 해보고, 잡초 관리에 대한 계획도 세우게 되니 정원을 가꾸는 것이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든다. 정원 일을 즐길 수 있게 될까. 정원일을 즐기고 싶다. 작년에도 이맘 때도 참 설렜는데 또 다시 설렘을 선물받았다. 하지만 이 설레임은 더 성숙한 설레임이다. 앞으로 무덥고 모기의 공격과 빗물로 가득한 날도 오겠지만 이 설레는 봄 날같은 마음만은 늘 이어졌으면 한다. 황량했던 정원이 다시금 꽃과 초록 잎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며 가드너의 손으로 더 채워나갈 색색의 희망과 기쁨을 더 즐기겠다고 다짐해본다. 이 선물을 위해 보낸 4월이 참 보람있고 나의 정원은 이미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