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더슨빌의 천사들 (1)
삶에는 가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헨더슨빌에서 K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였다.
아이들의 학교가 개학하자마자 남편과 나는 아침 7시에 집을 나가서 오후 7시에야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근처 공원에서 터덜터덜 걷거나,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 두 장소가 우리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첫 셋방살이,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 중국 친구의 입장까지 고려해야 하고, 당장 친구 집을 나가고 싶어도 렌트가 귀한 지역에서 어디서 집을 구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생활 정보는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가져오는 문서는 쌓여있고, 머리가 터질 듯했다. 첫째는 방과 후에 학교 크로스컨트리팀에 소속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고되게 하고 있었고, 둘째는 매일 배가 아프다고 학교 양호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국인 친구와 중국어로 소통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 그녀와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영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툭하면 왓? 왓?! 이라며 사사건건 나와 님편에게 무례하게 대꾸했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면 돌아오는 건 무시였다. 집주인인 그녀의 텃새로 인해 집안에 있으면 숨이 막혀왔다. 남편과 나는 가만히 있어도 욕을 먹으니 주눅이 들었다. 집 밖을 나가면 남부 지방의 웅얼거리는 악센트의 영어는 더 들리지 않았고, 남편은 스트레스로 미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12kg이 빠져버렸다. 신체적 건강은 찾았지만, 남편은 웃음을 잃었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유일한 숨구멍이라고는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고 근처의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뿐이었다.
터벅터벅 우울하게 산책길을 걷던 어느 날, 한 달간 거의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늘 고정적인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손을 좌우로 마구 흔드는 상냥한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인의 손짓이었다. 우리 엄마보다는 훨씬 젊은 연배로 보였지만, 머리 스타일과 작은 키, 파마머리, 올라온 광대뼈가 엄마를 연상시켰다. 그녀와 서서히 가까워지자 서로 하이 하면서 손인사를 나눴고, 혹시 한국인일까? 말 없는 눈빛 교환이 있었다. 그러나 굳이 누군가를 더 알고 싶지 않아서 멈춰서 인사를 나누지 않고 곧장 가던 길을 갔다.
남편과 주차장에서 한바탕 서로를 향해 온갖 비난과 악담을 퍼부었던 날이었다. 남편은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징징거렸고! 나는 이제서야 어쩌겠냐며 나야말로 중간에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소리를 꽥 질렀다.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원에서 화끈하게 서로의 화를 터트린 후, 혼자 씩씩거리며 걷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가 “what is your nationality? “ 하며 영어로 나에게 국적을 물었다. “I’m from South Korea. “라고 영어로 말하고 곧바로 “혹시 한국 분 아니세요?" 한국말로 답하자, 아주머니는 반갑게 “어머나! 이 시골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온 거예요? 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그 간의 맘고생을 털어놓았고 혹시 이 근처에서 집을 구하려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정말 힘들겠다며 자신도 미국에 처음 와서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주셨다. 남편이 저만치서 걸어오길래 방금 전에 싸운 것도 잊어버리고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이리 와봐. 한국분이셔! 게다가 자기랑 성이 같아." 남편은 지금 아무하고도 말할 기분이 아니라며, 아무런 말하고 싶지 않다며 딱 잘라 재빨리 뒤돌아 가버렸다.
아주머니와 통성명을 한 첫 만남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다음날부터 아침 산책길에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는 때때로 단감과, 장아찌등 맛있는 한국 음식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김치도 주고 싶은데 중국친구와 냉장고를 공유하니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공원에서 만난 귀한 인연
방글방글 호호 아줌마를 만났다.
겸손하고, 소박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나를 포함하여,
공원의 운동 친구들에게
한국인의 정을 나눠주신다.
같은 한국인이라서 더 반가워하며 살갑게 대해 주시고,
만날 때마다 먹을거리를 한 아름 챙겨주신다.
다정한 챙김과 밝은 웃음으로
긍정 에너지를 나눠주는 멋진 분.
마음이 힘든 시기에 만나
내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큰 위로가 된다
다정하고, 상냥하고, 친정엄마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아름다운 풍경이 힐링이 되는 줄 알았지만,
결국 어디에서든 사람이 힐링이다.
사람이 힘들게 하고,
사람이 힘을 내게 하고
사람이 답이다.
오이장아찌, 고추장, 고추 모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가득합니다.
아주머니를 알고 두 달이 지났을까 정이 많은 K 아주머니는 음식을 나눠주고도 부족하셨는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나와 남편을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셨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고 난 후로 누군가를 깊이 알아가는 것에 덜컥 겁이 나고, 걱정부터 앞선 탓에 아주머니의 초대를 한사코 거부했다. K 아주머니는 그냥 따뜻한 밥 한 끼 배불리 먹여주고 싶어서 그러하니 꼭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 알던 인연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내 마음을 모르겠는 상황에,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서 또 사이가 깊어질까 봐 겁이 나는 내 마음을 모르시니까….)
은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헨더슨빌에서 누가 내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맘을 쓰겠는가? 다정히 내밀어주시는 손을 뿌리치지 않고 아주머니의 초대에 응했다. 아주머니의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정성껏 차려놓으신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한식 재료 구하기 귀한 이곳에서 언제 이 재료들을 구했으며, 이렇게나 많은 한국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그동안 얼마나 바쁘셨을까? 애쓰신 K 아주머니의 노고를 생각하니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밥상이 내 앞에 차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과 수고가 들어가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밥맛은 더 꿀맛이었고, 한상 가득 차려진 맛있고 귀한 한국 음식을 먹느라 헨더슨빌에 온 뒤로 입이 가장 바쁘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고 나니 기적처럼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배가 두둑해지니 평생 살 것도 아닌데 까짓 거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낯선 도시를 떠나지 말고 조금 더 탐험해볼까 싶은 배짱이 생겨났다.
그 후로도 휴일에는 K 아주머니는 꼭 우리 가족을 초대하여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먹여주었다. 우리 가족이 살 집을 구해 우리의 냉장고가 생기자, 맛있는 밥을 차려주시는 것도 모자라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차 트렁크에 음식이 꽉 차도록 김치, 국, 밑반찬을 챙겨주었다. K 아주머니의 사랑의 언어는 음식이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고, 남편에게는 고모가 되어주고, 아이들에게는 고모할머니가 되어주었다. K 아주머니는 남편의 치매로 깊은 고민이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 가족의 안부를 걱정해 주며 우리를 알고부터 우리가 헨더슨빌을 떠나는 그날까지 우리의 먹거리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K 아주머니는 사랑 가득한 음식으로 따스한 빛을 쬐어주셨다. 아주머니의 밥을 먹고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이 글을 쓰며 아주머니의 사랑을 회상하니 아주머니의 기적 같은 밥상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헨더슨빌의 동글동글 뭉쳐진 명랑한 구름을 보며 좋아하던 나를 보며 “ 나도 요즘 헨더슨빌의 구름이 좋아졌어” 환하게 웃으시던 그 주름 잡힌 얼굴이 생각이 난다.
헨더슨빌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K 아주머니가 베풀어주신 사랑과 아주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다. 때로는 예수님이 K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적처럼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난 K 아주머니의 보살핌, 따스한 손길은 내게, 그리고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Dear Mr and Ms Camp
K 아주머니, 캠프 아저씨, 두 분 모두 잘 지내시지요?
쓸쓸했던 가을에 만나 힘들고 추웠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주시고, 지치고 분주했던 봄을 잘 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써주시고, 뜨거운 여름을 잘 보내라고 보양식을 챙겨주시고, 입맛 없으니 함께 먹자며 캘리포니아롤을 만들어주시고, 가을, 겨울이 되어 땡스기빙과 추석과 크리스마스와 새해와 설날을 챙겨주셨네요. 정말 사랑을 받고 또 받고 넘치게도 받았습니다.
갓 만든 따끈따끈한 라자냐를 따뜻할 때 먹이고 싶은데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아 저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따뜻한 라자냐를 들고 우리 집으로 두 분이서 출동하셨던 때가 생각이 나요. 따뜻할 때 먹이고 싶은 마음이란 사랑이지요. 식을까 봐 서둘러 가져다주신, 사랑을 싣고 온 라자냐를 먹으며 얼마나 뭉클해졌는지요. 이 보다 더 귀한 음식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건강하게 씩씩하게 버틸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국하는 전날에는 짐 싸느라 바빠서 밥도 못 먹었을 거라면서 저녁을 챙겨주시고, 귀국날 집 인스펙션 하느라 힘들다며 애틀랜타까지 가려면 밥 먹고 기운내야 한다며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잔치국수를 한 그릇 만들어주셨지요.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과 성이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인다며,
맛난 음식 손수 만들어 배불리 먹여주시고,
뭐든 잘한다 칭찬해 주시고,
힘들 때마다 그럴 때가 있다며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잘 다독여주시고,
저희 가족에게 베풀어주신 넉넉한 사랑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생일날 씌워주는 멕시코 모자 꼭 써 보고 싶었는데 씌워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이 글을 쓰고 있는 며칠 뒤가 제 생일이어서 더 생각이 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헨더슨빌에서 저는 K 아주머니와 캠프 아저씨를 만나 복이 많은 삶을 살다 왔습니다. 달콤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깬 것 같아요.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날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