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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Sep 26. 2021

보고 말았다. <오징어 게임>

쓰러져 있는 너, 서 있는 나


인간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구경거리가 뭘까요? 인간을 흥분시키고 도취시켜서 모든 것을 다 잊게 만드는 지고한 구경거리가 뭘까요? 그건 죽음이에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이죠.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시선은 음탕한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는 피 구경을 하고 싶어 해요. 엘리아스 카네티식으로 얘기하면 인간이 권력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죽은 사람을 봤을 때라는 거죠. 죽은 사람은 항상 쓰러져 있어요. 반면에 나는 서 있죠. 쓰러져 있음과 서 있음의 관계, 이것이 권력이라고 얘기하는데 결국 우리는 그걸 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상처로 숨쉬는 법, 김진영)


 요즘 모였다 하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야기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인하다. 평소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 잔상이 오래 남아 무조건 보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징어 게임>을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중간에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하루 만에 9회까지 정주행 했다.

 

 다양한 사연으로 억대의 빚을 진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456명의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서바이벌 미스테리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게임 참가자들은 456억 원의 상금을 받기 위해 비밀의 장소에 갇혀 6일 동안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게임 탈락은 곧 죽음이다.


 왜  나는 <오징어 게임>이 그토록 보고 싶었을까? 처음에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추억의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참가자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게임에 탈락한 사람들의 피가 낭자하고 잔인하지만 드라마 속 VIP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쇼파에 앉아 참가자들의 죽음과 폭력에 점점 무뎌지고 덤덤히 시청한다. 내 안의 알량한 선량함은 어리숙하고 부족하지만 주변인을 챙기려 하는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를 응원한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불현듯 그 누가 앞날을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게임 참가자가 될 수도 있다. 예기치 못한 극한의 상황에 처해 엄청난 빚에 쪼들리면 돈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솔직히 없다. 당연히 ‘저기’까지 가는 일이 없길 바라지만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두려움이 생겼다.


“이 미친 짓을 계속하겠다는 거야?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자 게임 참가자 중 한 사람이 게임 중단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참가자들은 돈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며 점점 광기를 보인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으니 게임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변신하며 악의 가치에 몰입된다.


 현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지배 구조의 모습을 드라마  VIP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들만의 세상인 밀실에 모여 지루한 세상에  자극적인 게임을 즐기기 위해 참가자들을 부추기고 살벌하게 경쟁하도록 판을 짠다. 현실 게임을 하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있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게임의 판을 읽을 수도  수도 없다. <오징어 게임> 속에서 게임의 힌트가 벽에 그려져 있지만 생존에 급급한 참가자들이  힌트를 가까이 두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같다.


 돈이 너무나 많은 그들은 돈이 너무나 간절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정하려 한다. 참가자들 자유의지로 들어왔고, 과반수가 넘으면 게임은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으며, 게임에서는 누구나 공평한 세상이라고 세뇌시킨다. 돈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돈이 권력인 세상에 돈의 권력은 인권보다 더 위에 있다.


상우야, 가자, 집에 가자.

 찌질하고 오지랖만 넓은 주인공은 돈 많은 그들의 예상을 깨고 돈을 지키지 않고 사람을 지키고자 했다. 내가 그였다면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을 텐데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이 대단히 빛났다.


 주인공에게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가 있었다. 거기에 운’이 따라주었고 필사적으로 살려고 노력한 그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최후의 1인이 되어 게임의 우승 상금으로 받은 돈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은행에 놔둔다.

 왜 그랬을까? 죽은 사람들의 목숨 값이었기에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주인공은 게임을 통해 선에 가치를 두게 되는 모습에서 그가 느낀 죄책감을 나도 따라 느꼈다.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극의 마지막 부분에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노숙자를 한번 쳐다보고 갔던 청년이 노숙자를 도와주러 다시 경찰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니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삭막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선한 사람이 있으니 희망이 있다.


 하필이면 어린이들의 놀이터에서 산전수전 겪은 다 큰 어른들이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의 놀이를 하며 피가 낭자하는 모습을 보니 끔찍하다.

 

 하지만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듯 알록달록 예쁜 색감의 세트장, 몽환적이고 부드럽고 때론 쫄깃쫄깃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음악 선곡, 몇 명의 캐릭터만으로도 확실히 보여준 인간의 욕망과 본성, 누구나 마음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 선함의 가치를 두고 삶을 살 때 악함을 이긴다는 메시지가 이 영화를 몰입하며 보게 했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가리고, 빨리 돌렸더니 금세 드라마가 끝이 났다. 막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 같다. 휴! 다행이다. 내가 안전한 세상에 있음을 확인하니 갑작스레 허기가진다. 우선 배가 고프니 냄비에 라면 물을 올린다.



* 사진 출처: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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