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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Dec 19. 2021

거꾸로 가는 그의 시간

그 남자, 시아오루

 중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재빠르고 민첩하게 만두를 빚었던 그의 큼지막한 손, 선한 인상의 준수한 외모, 투박하지만 겸손한 미소. 성실하고 착한 그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지……


 그의 이름은 루지엔펑 卢剑锋。나는 그를 '小卢 시아오루'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친한 사이에 성 앞에 小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고향인 河南城 하남성을 떠나 대도시 북경으로 올라온 그는 농민공이었다. 농민공은 가난한 농촌의 땅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해  하급 노동자의 일을 하는 농민을 일컫는다. 농촌 인구의 대거 도시 유입을 우려하여 등록 거주지 이동을 제한하는 중국의 독특한 호구 (户口 후코우) 정책 때문에 농민공은 도시로 이주해도 임시 거주증만 있을 뿐 자녀 교육, 주택, 의료, 복지 등 여러 면에서 배제되어 최빈층의 삶을 살고 있었고,  도시 호구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받는 기본적인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불이익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신세대 농민공들이 도시에서 번듯한 직업을 갖고 정착을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그는 1세대 농민공들처럼 돈을 벌기 위하여 고향의 땅을 떠났지만 한시바삐 돈을 모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사진 출처: baidu.com

 2002년, 그 해 스물여섯이었던 그는 공사장의 따가운 햇볕에 많이 노출된 건설 노동자의 삶과 언뜻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외모에 하얀 얼굴과 곱슬머리는 그를 유약하게 보이게도 하고 선하게 보이게 했고, 큰 키에  노동으로 다져진 그의 다부진 체격은 가녀린 여자친구인 시아오왕 옆에서 더욱 듬직하게 보였다.  


 중국 대도시의 급성장을 상징하는 화려한 빌딩 숲은 값싼 노동력으로 쉴 틈 없이 일한 수많은 농민공들의 땀방울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의 일터는 朝阳区 조양구  望京 왕징에 있었다. 왕징은  북경의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한인 타운이 잘 조성되어 흡사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왕징의 초고층 빌딩과 최신식의 고급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최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농민공들의 구슬땀이 있었고 그도 매일 한 바가지의 땀방울을 보탰다.

사진 출처: baidu.com

 그의 임시 거처는 북경의 북서부 외곽에 있는 昌平区 창평구 철거 예정지에 있었고 철거촌에는 한참 天通苑 티앤통위앤이라는 아시아 최대의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이었다. 창핑 부근의 티앤통위앤 일대는 북경 중심부에는 떨어져 있지만 월세가 월등히 저렴했기에 시아오루처럼 농촌에서 북경에 꿈을 안고 올라온 외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직장인 望京 왕징까지 버스로 50분이 걸렸지만 시아오루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그리고 출근 시간대의 혼잡도 피할 겸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6시 30분쯤 일터를 향해 1시간 반쯤 열심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 왕징에 도착했다. 한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건설현장의 막노동 일이 시작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던 셔츠에 땀으로 그린 소금 지도가 덩그렇게 그려져 있을 때쯤 집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몰아치듯 밥을 먹고 씻고 고된 하루를 마감했다.

 

 그의 고향에서 착실한 청년으로 인정을 받았던 小卢시아오루는 동네 어른의 주선으로 참하고 예쁜 아가씨를 만났고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3년 동안 교제를 했다. 어느 날 그가 우연히 西藏서장(티베트)으로 볼 일을 보러 갔다가 큰길에서 지프 트럭이 고장이 난 것을 발견하고 차를 고쳐주었다.  그 차에 호탕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한 중년 여인이 타고 있었다.  농촌을 떠나 돈을 벌러 도시로 가고 싶어 하는 그의 사정을 듣고 그녀는 북경에 있는 남동생의 회사에 시아오루를 소개해주겠으니 북경에 오고 싶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시아오루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보다는 돈 벌기가 훨씬 유리한 북경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여자찬구를 시골에 남겨두고 먼저 북경으로 떠났다.


 그가 북경에 일자리와 거처를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에 있는 여자친구를 북경으로 올라오게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북경에 시아오루의 일자리를 알아봐 준 중년 여성의 집과 주변 친구들의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었다. 둘은 일개미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고, 아끼고 또 아껴 어느 정도의 돈을 모와 약혼을 하고 아담하고 조촐한 방을 마련했다.


 그들은 결혼도 하고 얼마 뒤 어여쁜 첫째 딸을 낳았다. 북경에서 일가친척 없이 둘 뿐이었던 그들은 어린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일을 할 수가 없어 아내는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 시아오루는 가장의 책임감을 다하며 착실하게 생계를 꾸려나갔다. 딸 아이 한 명을 더 낳아 식구가 늘어났고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고향으로 내려가도 될 만큼  제법 돈이 모여서 고향집 인근의 작은 식당을 인수했다. 분주하게 그는 북경과 고향을 오갔고 그 사이에 그들은 아들 한명을 더 낳았다. 처음으로 자기 명의로 된 가게를 오픈하고 그는 의욕을 보였고 성공이 그의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새로 개업할 가게에 이것저것 돈이 들어가느라 시아오왕은 북경에 홀로 남아 입주 베이비시터 일을 하기로 했다.  


 시아오루는 고향집으로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갔고 그가 일을 하는 동안 부모님이 어린아이들을 돌봐주었다. 아내를 홀로 북경에 남겨두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지만 몇 년 만 고생 하자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의 가게는 차츰 자리를 잡게 되었고 입에 풀칠하는 것에서 저축할 만큼 여유가 생겨났다. 그즈음 그의 식당 옆의 몫 좋은 가게가 좋은 가격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빠듯한 예산이었지만 그는 무리하여 그 식당을 인수하게 되었다. 두 개의 식당으로 이윤을 남기면 더 이상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지 않아도 되었다. 새로운 가게를 오픈하며 자기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를 수리하고 손보았다. 애정이 크기도 했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보고자 했다.


 곧 다가오는 춘절을 앞두고 내부 인테리어는 어느 정도 끝마치고 간판을 수리하는 날이었다. 간판 수리공을 불려도 되는 비용이었지만 기존의 간판에 색칠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지라 혼자서 해보기로 했다. 다시 새롭게 칠한 간판을 달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간판은 무거웠고 간판을 지지하면서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는 순간 간판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내리쳤고 그는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북경에서 일하고 있던 아내가 내려왔다. 남편은 세 번의 큰 수술을 마쳤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남편을 다시는 보지 못할까 발만 동동 그렸던 날들이 지나갔고 한 달  뒤에 시아오루는 의식을 되찾게 되었다. 잘생기고 건장했던 시아오루는 초췌하고 핼쑥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꿈꾸는 듯 편안해 보였다. 아내는 남편이 깨어난 모습을 보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가 살아있음이 믿기지 않아 그의 얼굴을 몇 번이고 만져보고 쓰다듬어 봤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 이상했다.   그녀를 보고 반가워하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누워있는지,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고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시아오루의 상태를 살폈다. 시아오왕과 가족들에게 다행히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신체적인 건강은 곧 정상을 회복될 테지만 우려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뇌를 다쳐 일반 성인의 지능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아내의 지극정성 덕분에 그의 몸은 튼튼해졌고, 다시 식욕도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일곱 살인 그의 막내아들의 지능만큼도 못했다. 그토록 선량하고, 건장하고, 의욕에 차 있었던 시아오루는 한순간의 사고로 두세 살 아이의 지능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 퇴원해도 될 만큼 건강은 회복되었고 시아오루는 부모님의 작은 집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엄마 아빠의 보살핌을 받고 살게 되었다. 아내는 다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편의 식당을 나갔지만 손님도 없었고 생각만큼 벌이가 좋지 않았다. 아이들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철이 들었다. 시아오왕은 순식간에 닥친 불행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시아오루를 찾아왔고 그녀에게 위로를 건넸다.   시아오루가 병원에서 퇴원할 만큼 건강해졌지만 그는 더 이상 든든한 가장 노릇을 하는 아빠가 될 수 없었다. 북경과 고향집으로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지만 또다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세 아이들과 착하고 예쁜 아내에게 멋진 집, 멋진 차를 사주고 떵떵거리고 살고 싶었다. 그의 욕심이 화가 되었을까?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고 아내에게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을 모두 맡겨버렸다. 그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복잡하다. '괜찮다. 그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를 닮은 세 아이들이 있고  내 마음은 가난하지 않다.'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이마를 매만지고 볼을 쓰다듬어 본다.   


 삶의 정점에서 다시 순수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시아오루.

 거꾸로 가는 그의 시간 속에 행복이 깃들기를,

 심지어 기적이 만들어지기를.

 신이시여! 부디 그를 보살펴주소서.

 친구의 허락을 받았지만 타인의 불행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참 조심스럽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친구의 아픔을 생각하니 제 마음도 힘들뿐더러,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쓸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있다면 이 한 편의 글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쓴 글은 그저 안타까운 제 심정만 담겨있네요. 제 친구의 사연을 소개해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 , 친구와 같은 처지의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았으면 하는 작지만 큰 소망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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