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 Jan 03. 2022

아름다운 바퀴

 운동을 하러 가는 내 발걸음이 경쾌하다. 걸음을 재촉하며 속도를 내다보니 내 볼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낯설지 않다. 그해 가을의 산들바람과 어딘가 닮은 데가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탄탄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바람을 맞는 맛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어려웠다. 나는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가 되어 호박마차를 탄다.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면 닫혔던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렸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에 왔는데 한자가 보기 싫었다. 한자 간판도 싫고 한자로 가득한 책은 펼치기도 싫고 한자만 보면 울렁증이 생겼다. 한자를 피하며 캠퍼스를 거닐다 우연히 인라인 스케이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교내 인라인 동호회 모집 안내였다.


 한 때 한국에서는 인라인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한강의 자전거 트랙에는 자전거보다 인라인 타는 사람이 더 많았고 공원 한쪽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인라인 강습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균형을 잘 잡기만 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슝슝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하체 운동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탁 트인 한강의 풍경을 벗 삼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 막혔던 생각이 뻥 뚫릴 듯했다. 하지만 마음속 생각이었을 뿐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워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막연한 미련이 남은 채로 중국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인라인을 배울 기회가 생기다니! 인라인에 대한 열망이 한자 울렁증을 잊게 하며 나를 인라인 동호회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이끌었다. 우선 동호회 활동을 위해서 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구매하기로 했다. 최신 성능의 자전거 한 대 가격이 500 위안 (9만 원)이었는데 인라인 스케이트의 가격이 300 위안 (5만원)이었다. 한국과 비교해서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유학생들은 자전거를 하나씩 구입하던 시기에 생활에 많이 필요한 자전거 대신 나는 레저용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구매했다.

 인라인이 분명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밤 9시, 인라인 강습이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교정에 학생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동호회 친구들과 밤에 모여 학교 기숙사 옆 작은 광장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첫걸음을 내디뎠다. ‘음....... 걸을 수는 있겠지?’ 아뿔싸 중심잡기부터 쉽지 앉았다. 그야말로 생초보였던 나는 한 발로 중심을 잡고 다른 발로 스치듯 옆으로 밀고, 브레이크를 잡는 기본 동작이 쉽지 않았지만 매일 저녁 연습을 하니 인라인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일주일 정도 맹연습을 한 후 드디어 캠퍼스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었다. 캠퍼스를 한 바퀴 돌며 낮에는 보지 못했던 교정의 색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다정하게 때론 화끈하게 밀회를 나누는 캠퍼스 커플들이 학교 벤치 여기저기에서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캠퍼스에서 애정표현에 과감한 중국 대학생들을 가자미눈으로 힐끗 훔쳐보느라 중심잡기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계속 인라인을 타다 보면 금세 한 시간이 지나고 때론 두 시간이 지났다. 중국어를 배우러 중국에 온 건지, 인라인을 배우러 중국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온통 인라인 생각뿐이었다. 인라인에만 열중했는데 뜻밖에 인라인과 중국어 공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세상일이 모두 그러하듯이 인라인도, 중국어도 겁을 내지 말고 일단 부딪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리 길도  걸음부터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걸음을 내디뎌야 앞으로 전진할  있다. 좋은 결과든, 씁쓸한 실패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무언 가를 시작해야만 얻는 것이 있었다. 수백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인라인을   있다. 그동안 처음부터 어법에 맞는 완벽한 문장으로 중국어를 말하려고 하다 매번 말할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다시 아기가 말을 배우듯이 단어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고,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인라인 스케이트의 발을 뗐다.


 몸을 움직이면서 외국어를 배우니 이상하게도 책상에 앉아서 단어를 암기할 때보다 쏙쏙 기억이 되었다.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지 못했던 나의 중국어는 인라인을 타면 마법을 부린 듯 자신 있게 나왔다. 가슴도 뻥 뚫리고 입이 뻥~~ 하고 뚫리며 집중이 더 잘되었다. 교실에서 혹은 기숙사 방에서 혼자 단어를 암기할 때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두리뭉실한 나의 성격은 중국어에서만큼은 꼭 꼬치꼬치 따지고 정확한 표현을 알아낼 때까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用中文怎么说?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지?” 입에 딱 떨어지는 표현을 알아내려 애썼고 그 표현을 적절한 상황에 사용할 때는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인라인을 타면서 나의 생존 중국어 공부법으로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갔다.


 마음이 흔들리고 기운이 빠지는 날에는 기운을 복돋우러 인라인 스케이트의 끈을 묶고 버클을 단단히 채웠다. 나의 현재 상황을 사랑하고, 싫어하게 될지는 누구도 아닌 내 발걸음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씽씽~~!!! 인라인을 탔다.

 동호회에는 여러 친구들이 나와서 매일 밤 연습을 했다. 밤 연습을 한 지 수일 후에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작은 비’와 움직이지 않아도 날렵한 동작이 예상되는 한 친구가 합류했다. 작은 비와 그의 친구는 눈에 띄는 외모와 수준급의 인라인 실력을 뽐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친구들과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인라인 연습을 하러 가게 되었다. 커다란 실내 체육관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아……분위기가 뭐랄까? 영화에서 보던 70년대? 80년대 롤라장?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에 적잖이 실망할 겨를도 없이 쌩쌩 돌진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작은 비가 다가왔다.

“ 위험하니 내 손잡아! 한 바퀴 돌고 오면 탈 수 있어! 하며 손을 내밀었다.”

“ 괜찮아! 혼자 타보고 안 되면 도움 요청할게!” 하며 조심스럽게 바퀴를 굴렸다.

‘휴~별거 아니네! 근데 ……’

 그때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새파란 청춘이었지만) 아마도 유학생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스무 살의 인라인 동호회 중국 친구들에 비하면 내 나이는 7살이나 많은 大姐 왕누나였고 나는 내 막내 동생보다 더 어린 친구들을 동생 대하듯 편하게 대했다.

작은 비와 나를 지켜보던 한 여학생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너 혹시 비를 좋아하니?”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해줬다.

“나는 네가 작은 비를 좋아하는 걸로 착각했어. 미안해.” 그 여학생은 줄곧 작은 비에게 관심이 있었고 새로 나타난 외국인인 내가 신경이 쓰여 가슴을 졸였다는 여학생의 핑크빛 사연을 듣게 된 후 작은 비에게 거리를 두었다.


 캠퍼스에서 종종 작은 비를 마주쳤다. 하루는 늦은 시간에 친구들에 둘러싸여 귀가하고 있던 나를 작은 비가 따갑게 쳐다보고 있었다. 밝은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던 나를 훑어보며 작은 비는 나에게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 OOO, 别忘了你的目标 너의 목표를 잊지 마!”

 염색한 머리 때문에? 찢어진 청바지 때문에? 내가 중국에 온 목표를 잊은 것처럼 보인 거야?

 북경에 진출해 있는 한국 미용실의 사업 규모를 확인해보느라 내 머리도 하고 기분 전환 한 건데 뭘 안다고! 마음속으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실 매일매일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은 참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마음은 무거웠다. 이렇게 놀면서 언제 앉아서 공부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외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특히 외국어를 공부하는 초기에는 수업 이후의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엉덩이가 무거울수록 입도 굳게 닫혀 무거워지고, 엉덩이가 가벼울수록 입도 수월하게 떼 졌다.


 인라인 동호회 친구들과 학교 옆 光盘 가게에서 해적판 DVD도 사러 가고, 국경절에는 景山公园 경산공원에 가고, 쇼핑을 하러 王府井 왕푸진과 前门 치앤먼도 가고, 가을 단풍을 보러 香山 향산도 가고, 판다를 보러 동물원도 가고, 식물원 등등 많은 곳을 함께 다니며 나는 친구들의 말을 잘 듣고 따라 했고 친구들은 나의 중국어를 교정해주었다. 어색했을 나의 중국어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단어 하나하나 물어보는 질문에 싫은 기색 없이 성실하게 답해준 나의 착한 친구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겨울이 다가와 인라인 연습을 잠시 중단하고 봄을 기다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스 상황으로 학교는 봉쇄되어 학생들은 뿔뿔이 고향으로 흩어져야 했다. 더 이상 인라인 동호회 친구들을 볼 수 없었다. 나도 사스의 위험을 피해 귀국 전 캠퍼스를 돌아보며 인라인을 탔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끝으로 북경이나 상해 등 대도시로 중국어를 배우러 갈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이 있다. 중국에 도착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한국 유학생들의 수에 깜짝 놀라 한국에서 학원이나 다닐 걸 이럴 거면 중국에 왜 왔지?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반드시 온다. 고민 대신 운동을 하시라. 내가 선택한 운동은 인라인이었고, 인라인을 타면서 중국어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운동이 꽉 닫혔던 언어의 자신감을 열어주고 마음에 온기와 활기를 불어넣어주며 명랑한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나는 그랬다.)


 인라인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고, 넘어지면 뼈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이제는 쉽사리 시도할 수 없는 운동이 되었지만 스치는 바람이 볼에 닿는 순간 인라인을 타며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글을 타고 나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 아름다운 바퀴를 굴리고 있던 나를 떠올려본다. 그 계절의 바람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혼자는 쓸쓸했고 같이는 즐거웠던 그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또다시 힘든 시기가 찾아왔으니 나의 새로운 아바를 발견할 때가 왔다.


*사진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나 항상 술잔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