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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NC 28731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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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 Jul 27. 2024

크로스컨트리(XC)가 뭐길래

 달렸을 뿐인데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운동으로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고, 빠르게 걸어도 충분히 운동이 되는데 굳이 숨 가쁘게, 무릎을 상하면서까지 달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면에 걸음마를 떼고부터 내 아이는 달릴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평지든 오르막길이든 어디든 질주하며 달려 다녔다. 아이의 수많은 달리기의 모습 중 내리막길에서 속력을 내고 멀어져 가던 아찔한 상황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뛰 지 마! 하며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러대던 내 모습과 함께.

 이렇듯 달리기는 나에게 위험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이거나 아무 감흥 없는 무매력에 가까운 운동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이들 달리는 모습에 왜 울컥할까? 비탈길을 오르는 선수들의 다리가 여느 때보다 천근만근 무거워 보인다. 젖 먹던 힘을 짜내 힘겹게 달리는 선수들을 지켜보자니 왠지 코끝이 시큰해진다. 나만 투머치인가 싶어 옆을 보니 손주를 보는 할머니 한 분도 훌쩍이시고 있다.


크로스컨트리를 응원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춘기 아들이 불쌍해 보인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힘들게 뛰는 아이를 보며 영어 배우랴, 운동하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 보다 체격도 작고,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를 보며 사춘기에 들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아이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노력하고 있구나. 그동안 다그치고 몰아세워서 미안하다.'  이제는 크로스컨트리를 뛰는 널 응원하듯 가깝고도 멀리서 응원해야지 다짐을 했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아이가 돌발상황 없이 안전하게 완주한 것,

 성한 두 다리로 다음 연습에 참여할 수 있는 것,

 다음 시합에 뛸 수 있는 것,

 시합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포도봉봉을 나눠 마실 수 것,    

 사소하지만 잠 못 드는 비행기에서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 아이가 (병원비 비싼 미국에서)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두 다리 뻗고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웃는 아이의 모습을 구경하니 더 이상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가 천천히 적응을 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내 마음이 너그러워진 데는 크로스컨트리를 응원하러 다니면서 여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포도 봉봉의 재발견

 내 스낵당번 차례가 오자 골드피쉬, 에너지바, 파워에이드 그리고 포도 봉봉을 준비했다.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이온음료만 준비해도 되었지만 아직 영어로 입이 잘 안 떨어지는 아이가 한국 음료수를 마시며 친구들과 말 한마디라도 나누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미국에서는 알러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을 준비할 때 미리 물어보고 조심해야 하는데 포도 알러지가 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단순한 생각에 포도 봉봉을 샀었는데 히트였다.  미국 아이들은 껍질이 없고, 씨도 없는 포도 알맹이만 들어간 포도 봉봉을 정말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진짜 포도인지 물어보고, 어떻게 씨를 뺐는지도 궁금해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진짜 포도 알맹이고, 특별한 기술로 포도씨를 뺀다고 한다. 포도봉봉이 인기가 많아서 기뻤지만 포도 봉봉을 사려면 1시간 거리의 한인 마트나 아시안 마트를 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간혹 미국인 가정에 초대를 받아 방문할 때는 평범한 와인 선물 대신 한국을 알릴 겸 포도봉봉을 사갔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어른들을 위한 선물로 갈아 만든 배를 함께 사가면 더 좋아했다. 한국의 달달한 음료의 맛을 보며 대화의 물꼬가 노스코리아로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애국적인 관점에서 포도봉봉을 알리며 애국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향인에서 외향인으로

 미국 학부모들 그룹에 끼어드는 것은 어렵다.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니 어색해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도 이상하다.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내서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해 놓고 정작 엄마는 뒤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것이 말이 안 되어 보였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가  그냥 지나가기도 하니 투명 인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학부형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 끼어들어야 할지 몰라서 말 한마디 못하니 병풍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스몰톡을 하긴 해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롯이 응원만 하고 왔었는데 몇 번 시합에 응원을 하러 다니다 보니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할 일이 꽤 많아졌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여, 아이들 운동 이야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도 듣고, 나를 소개하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맛집 정보도 얻고, 운동팀 엄마들이어서 재활 코치 정보를 얻기도 하고, 여러 운동화를 소개받기도 한다. 처음에는 같은 팀 아이들의 부모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샌가 처음 본 사람과도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영어로 스몰톡을 하러 누군가 말을 걸까 봐 언제 긴장을 했었나 싶을 만큼 스몰톡을 즐기게 되었다.


 몸 튼튼, 마음 튼튼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있다. 건강은 그 무엇보다 일 순위다. 그래서 교육이 잘 되어 있는 대도시를 마다하고 공기 좋은 시골로 온 이유이기도 하다. 크로스컨트리를 한 후 겉으로 보기에는 빼빼 마른 멸치가 되어서 염려가 되었지만 달리기로 아이의 체력이 좋아졌고, 허연 밀가루 같던 얼굴에서 혈색이 돌고, 몸은 튼튼해졌다. 또한 달리기를 하면서 아이가 자신감도 생기고 부쩍 의젓해졌다. 아무래도 친구도 생기고 영어도 늘고 여러 가지 욕구가 충족이 되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에 안정을 찾은 것 같다. 크로스컨트리를 만나고부터 마음이 튼튼해졌다.


 헨더슨빌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크로스 컨트리 경기는 매번 다른 학교에서 열린다.  원정시합이 있을 때마다 헨더슨 카운티의 여러 학교를 가 보았다. 학교 주변의 집들은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으며, 도로 옆의 상점은 어떤 곳일까 하나같이 들어가고 싶게끔 궁금증을 일으켰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림 같은 경치, 온화한 가을의 날씨는 그곳에서 되도록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이곳에 살면 아무런 욕심 없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도시 규모가 크지도 작지도 않게 탐험하기에 완벽하다. 지루한가 싶다 싶으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매혹적인 대자연이 펼쳐지고, 자연만 너무 몰빵인가 싶으면 구석구석 크고 작은 수제 양조장이 있고, 와이너리는 골라 다닐 수 있고, 여름 과수원으로 블랙베리, 블루베리, 복숭아를 따러가고, 가을에는 사과와 호박을 따러 간다. 중고 서점, 레저용품 스토어, 아웃렛몰 등등 수많은 예측 불가능한 흥미진진한 곳들로 가득한 곳이다. 크로스컨트리를 참여하기 전에는 유배지처럼 느껴지던 도시에서 크로스 컨트리 시합을 응원하러 다니면서 은퇴 후에 살고 싶은 후보지로 삼을 만큼 매혹적인 도시로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잘못 알고 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뛰지 말라고 하닌깐 열심히 뛰었을 뿐이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난데없이 나를 육상팀에 들어가도록 권유했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으면 영어 때문에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은데 달리기는 영어가 별로 필요 없으니 하겠다고 했다. 내 달리기 실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학교에서 방과 후에 잠시 연습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대회에 참석해야 한다니 미국 학교는 스포츠에 진심이다.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준비, 땅! 내 앞에 많은 아이들이 출발했다. 크로스 컨트리 달리기는 체력이 좋아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고 무엇보다 전략을 잘 세워야 하는 운동이다. 빨리 달리고 싶어서 선두그룹에 섰다 가는 너무 떨려서 초반에 힘을 빼서 끝까지 완주를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후발 그룹에서 서서 다소 늦게 출발하지만 꾸준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을 선호한다.


 숲 속에서 뛰는 것은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힘이 더 든다. 그래서 숲 속 길을 달릴 때면 나는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숨소리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면 생각나는 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리면서 달리면 다시 달릴 힘이 생긴다. 대부분의 구간을 다리에 힘을 빼고 반사적으로 걷는 듯 달린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다.  힘이 들면 굴러서라도 가야지 생각을 하거나 괴물이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냅다 뛰기도 했다.


   나는 멈추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멈추면 우리 팀의 성적이 낮아지고, 열심히 뛴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해진다. 나 하나 때문에 팀 성적이 저조해질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뛴다. 그렇게 뛰다 보니 끈기가 생겼다. 내 체력이 더 좋아져서 팀 점수도 올라가고,  더 노력해서 Top 10 메달을 따는 것이 내 목표다.

 팀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 나도 노력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고, 노력하는 과정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연습하니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래부터 체력이 나쁜 것이 아니고, 체력단련을 안 한 것뿐이었다. 나는 성실하게 연습했고, 주말 연습에도 빠지지 않았고, 실전 경기 모두 참석하였다.


 달리기가 하기 싫었던 순간은 두 번째 연습 날이었다. 한국에서 달리는 것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지만 장거리 육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미국 학교의 운동장은 사이즈가 정말 크다. 보기에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운동장을 한 바퀴도 아니고 여러 바퀴를 달리고, 운동장 주변을 달리고, 또 달리고,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려보니 너무나 힘들었다. 나만 너무 뒤처졌다. 그러다 아이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로질러 갔다. 코치 선생님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엄마, 아빠를 불러서 상담을 하였다. 그때는 운동 실력이 부족해서 잘리기가 싫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달리기가 점점 재미있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원정시합이 있다. 보통 8~9개 학교가 참여하고 많을 때는 11개 학교 크로스 컨트리팀 학생들이 참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우리 학교에서 대회가 열렸을 때이다. 마지막 결승점을 앞두고 영화처럼 나는 다섯 명을 제쳐버렸다. 달리기를 통하여 나에게 굳은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노력형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첫 경기에서 200명 중에 나는 70등을 했다. 일 년 뒤에 나는 24등을 했다. 비록 탑 10에는 들지 못했지만 내 다리로 이뤄낸 성장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뛰어 준 내 다리에 감사하다.


 사실 내가 크로스 컨트리 러닝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엄마의 권유도, 내가 달리기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처음 코치 제프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선생님은 나에게 너는 러너의 체격이라고 칭찬을 했다. 항상 내가 너무 말라서 걱정이다라는 사람들의 소리만 듣다가 처음으로 들어 본 내 몸에 대한 칭찬이었다. 내가 러너에 적합한 몸이라니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프 선생님은 무척 엄하다. 과거에 미국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였다고 한다. 연습을 게을리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다. 크로스 컨트리 원정경기 때 다리에 힘이 빠져 걸으려고 할 때 앞에서 제프 선생님의 “ Go! Sam go!” 고함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난다. 펠리시아 코치님은 내가 낙담해 있을 때 항상 잘했다고, 처음 크로스컨트리를 했는데 정말 훌륭하다고 늘 격려해 주셨다. 제프 선생님과 펠리시아 선생님이 처음에는 무섭고 어려웠는데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주시고, 운동 후 스트레칭 하는 법도 알려주셨다. 항상 용기를 주시고, 내가 잘 어울리도록 배려해 주시는 코치님들이 좋아서 나는 더 잘 달리고 싶었다.


 라이벌이 필요하다. 같은 팀 브로디라는 친구가 나한테 경쟁의식을 느껴서 연습 도중에 나를 밀어버린 일이 있었다. 나는 열이 받았고 화가 많이 났었다. 브로디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막상 마지막 경기에 안 나와서 조금 허무했다. 그래도 브로디가 있어서 달리기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크로스 컨트리를 하면서 팀워크를 배웠다. 친구들하고 같이 뛰는 것이 좋았고, 뛰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친구들이 “Good job, Sam!”이라고 해줄 때면 말로 표현 안 되는 뿌듯함을 느꼈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내가 결승점에 들어온 후 친구들과 함께 다른 아이들을 응원해 주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달리기를 하면서 친구들하고 더 친해졌다.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렸다. 포도 봉봉이라는 단어와 안녕이라는 말을 알려줬다. 부모님이 스낵당번 때 포도봉봉을 사 오셨다. 미국 아이들은 포도 봉봉 주스를 정말 좋아한다. 부모님이 헨더슨빌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그린빌 한인마트나 애쉬빌 아시안마트에 가서 포도봉봉을 사 오셨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멀리까지 가서 포도봉봉을 사 오시고, 가족들이 모든 경기에 와서 응원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크로스 컨트리 러닝은 장거리 달리기다. 조금 오래 달리고, 포장된 도로가 아닌 숲 속 같은 곳을  달리는 것이 일반 달리기와 다르다. 두 다리로 달릴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꼭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어서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달리기를 하고 싶다. 혼자 달릴 수도 있지만 뜻이 맞는 친구들과 달리고 싶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단체전 1위



 크로스컨트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새로운 환경에서 영어도 안 들리고 학교에서는 엄청 긴장을 했는데, 달리기에 비하면 영어는 쉽다. 적어도 영어는 몸이 힘들지는 않다. 달리기는 게임보다 즐겁고 훨씬 보람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합에 나가면 내가 실제로 세계대회에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내년에도 달릴 거냐고 묻길래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내년 가을에도 참여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있으니깐 내년에도 꼭 다시 뛰고 싶다. 내가 미국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나는 크로스컨트리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해 본 크로스 컨트리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가을이 되어 나는 크로스 컨트리를 하면서 축구팀에 들어갔다. 매일 크로스컨트리 훈련을 해서인지 전/후반 지치지 않고 달리는 선수는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리틀닌자라고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많은 응원을 받았다. 지금 미국 학교 축구팀 트라이아웃을 한다면 나는 무조건 패스이다. 모두 크로스컨트리 덕분이다.




 아이가 달렸을 뿐인데 내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가 새롭게 보이고, 아이에 대한 근심 걱정을 떨쳐낼 수 있었다. 크로스 컨트리에 뛰어 본 경험, 크로스 컨트리 경기를 응원해 본 경험은 아이도 나도 인생에 두고두고 불꽃이 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그 경험으로 얻은 것들로 계속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 바란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크로스 컨트리는 심리적인 운동이다. 정말 체력 조건이 좋아야 뛸 수 것이 아니고 정신력이 좋아야 끝까지 뛸 수 있다. 한 걸음만 내딛자 , 한 걸음만 더 내딛자 자신을 독려하며 뛰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웬만하면 내가 헤쳐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안겨주었음이 분명하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너의 속도로 꾸준히 뛰렴.


 크로스 컨트리 러닝의 장점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모든 운동의 기본기는 달리기이다. 운동에 재능이  있건 없건 두 다리로 달릴 줄만 알면 되니 모두에게 적합하다.


 크로스 컨트리를 하면서 들어간 비용은 달리기에 적합한 러닝화 몇 켤레를 장만하고,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한 후 서류를 발급한 비용이 전부다(좋은 러닝화는 200불을 훌쩍 넘고, 병원비 또한 100불이 넘었지만).

 아! 포도 봉봉을 사느라 멀리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기름비가 쪼끔 더 들었고, 포도봉봉 한 상자에 11불이었던 것이 우리가 귀국할 즈음에는 19불까지 올랐다. 포도봉봉을 이렇게 자주 구입할 줄 알았다면 미리 사놓을 것을. 인생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어서 당황스럽게 재밌다.


 So, No more practice.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왜 허전할까? 이제는 내가 달리고 싶다.  크로스 컨트리는 내 안에도 달리기 불씨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내게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선물해 주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어오는 것이다.
- 여몽






☆크로스 컨트리(XC)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Macfarland>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1S6Fo9ittA&t=30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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