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3 폭포, 1일 2 호수
복작 복작 사람 많은 대도시에 고작 삼일을
머무르고 돌아왔을 뿐인데 평화롭고 한적한
이곳에서 다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풀벌레, 새소리… 초록 초록한 자연에 둘러싸인
한적하고 조용한 헨더슨빌이 진짜 좋다.
Day 18. 어느 폭포를 가볼까요? Hooker Fall 당첨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은 후 유니버셜의 여독이 완벽하게 풀렸는지 놀러 가고 싶어요! 를 외친다.
“오늘은 어디 가요?
응? 너희들 안. 피. 곤. 하. 니?
“네! 썸머캠프에서 갔던 폭포에 가고 싶어요.”
“High fall? Triple falls?
”Hooker fall 가고 싶어요. “
“그래, 집에서 할 일도 없는데 가자!”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서늘해졌다. 폭포수를 맞으며 피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빌려서 멋대로 놀아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잠시 들었다. 아이들은 여느 미국인들처럼 웃통을 벗고 섬뜩할 정도로 서늘한 폭포수를 맞으며 신나게 놀았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잠시 살고 있다고 나도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신기하다.
Day 19. 더티 댄싱 촬영지, Lake Lure
Lake Lure는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특히 더티 댄싱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호수 주변을 빙 둘러싼 고급 별장들이 즐비하다. 5분 거리에는 Chimney Rock State Park가 있어서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은 보트를 타고 루어 호수를 투어 하는 대신 물놀이를 선택했다. 모래와 조개껍질이 많았던 플로리다 Armond Beach보다 아담한 Lake Lure Beach가 아이들이 놀기에는 더 적격이었다. 플로리다주의 대낮의 강렬한 햇살에 비하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햇살은 순하지만 미국 남부의 여름 햇빛은 어디든 강하다. 뜨거운 땡볕 아래 파라솔도, 돗자리도 아무것도 없이 나왔지만 고맙게도 아이들은 물속에서 별거 아닌 놀이로 까르르 웃어대고 신나 했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아침에 만든 김치볶음과 진미채에 스팸과 계란말이를 추가해서 도시락을 부랴부랴 싸왔더니 모두들 남김없이 싹싹 잘 먹었다. 아이들을 배불리 맛있게 잘 먹이고 싶은 내 마음은 사랑이다. 다만, 아무런 장비가 없어서 짐 가방 위에 올려놓고 밥을 먹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모습이 쪼끔 불쌍했다. 시한부 방문객으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고, 물건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만 돗자리를 사야 하나 잠시 흔들렸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야지 불편하다고 어떻게 다 갖추고 살겠어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은 라이프가드가 사용하라고 준 누가 남기고 간? 튜브로 끝장나게 놀다가 물놀이가 지겨워질 무렵 거위가 나타나서 거위를 따라다니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걷지도 않고, 물에서 몸에 힘을 빼니 뭉친 근육이 부드러워졌다. 올랜도를 다녀온 여독이 이제야 풀렸다. 오늘 상의탈의를 하고 다섯 시간을 땡볕에서 놀던 아이들은 결국 모두 화상을 입었다. 화끈화끈 거리다는 아이들을 달래서 감자 마사지를 해주고 하루를 마감했다. 잠든 아이들 얼굴을 한 명씩 들여다보니 정말 새까맣게 탔다.
Day 20. 지중해가 부럽지 않아. Lake Jocassee, SC
“오늘은 새로운 호수에 가볼래? 네~! 출발한다. 렛츠고! 껌 씹을 사람? ”
내가 그곳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헛짓 같았던 네 번의 오픈런 덕택이었다. DMV에서 꼭두새벽 줄 서기를 하면서 Lake Jocassee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구글맵에서 확인한 조카시 호수는 꽤 좋아 보였지만 실제로 보니 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일 줄은 몰랐다. 특히 물이 너무나 맑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였다.
이 호수에 있는 사람들은 뭘 좀 아는 사람들이다. 인생이 별거 있나 물 위에 튜브 띄워놓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면서 더우면 물속으로 들어가 풍덩하다가 나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지.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나와 남편은 성인 어른들하고 노는 맛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미국에 와서 흥미롭고 재미난 곳을 많이 다녔던 것 같은데 늘 긴장하며, 만일에 대비해서 플랜비까지 염두하느라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미국에 온 것이 십 년은 된 것처럼 느껴졌고, 한국에서의 생활이 마치 전생처럼 아득하다. 아 나도 한국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던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있었지. 이 경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즐기는 이곳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고 여기에 내 여름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 내 사람들과 보트 타고, 카약 하고, 낚시하며 여름을 누리고 싶다.
땅을 파서 파라솔을 세우고, 타월로 앉을자리를 만들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시니 구름과 호수와 노란 튜브를 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빛나게 눈부신 미소를 보며 좋아했을 내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시리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늘의 시간이 따뜻하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길. 아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줘야겠다. 이제 집에 가려고 짐을 챙기자 하며 아이들을 불렀는데 조카아이 한 명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아이들은 힘을 합하여 한 마리를 더 잡았다! 얘들아 어부 하자!
DMV에서 Lake Jocassee를 알려준 여자분이 왜 이 호수가 인크레더블리 뷰티풀 하다고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월든의 작가가 어찌하여 Walden 대한 글을 썼는지 쪼금은 알 것 같다. (다만, 월든이 호수가 아니고 연못이었다니. 천조국의 스케일은 자연마저도 그 사이즈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이들은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는 잔잔한 호수를 보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갈해진다. 오늘은 호수와 사랑에 빠졌다. 끝이 보이지 않은 호수……맑은 호수가 좋다. 너처럼.
안녕 Jocassee 호수야! 오늘 1시에 와서 7시까지 다섯 시간을 정말 잘 놀고 간다. 먹을 것도 어제보다 더 많이 준비했고, 앞집 쿠퍼 엄마가 빌려준 파라솔 덕택에 시원한 그늘이 있어서 더 좋았고, 베프 제시카가 빌려준 커다란 비치타월을 깔아 돗자리로 사용하여 누울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전부 다 좋다.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6일 남았다. 맛난 음식도 먹여주고, 더 재미나게 놀려야겠다.
Day 21. 곤란해, 먼저 건드리지 마.
LaunchTrampoline park, Arden, NC
몸이 노곤노곤하다. 그냥 물에서 허우적대다가 아이들 노는 것 보기만 하는데도 물놀이 시중이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실내 트램폴린장에 가서 아이들은 1층에서 닷지볼(Dodge ball 피구와 유사함) 대결하며 놀고, 어른들은 위층 안마의자에 몸을 푹 파묻을 예정이다.
덩치로 보면 하이스쿨 형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닷지볼 게임을 하며 우리 아이들을 향해 공을 사정없이 던졌다. 녀석들은 스낵바에서 아이들을 마주치자 굿 게임이라며 주먹인사로 Fist Bump를 한다. 또 다른 그룹아이들이 몰려와 우리 아이들에게 닷지볼 한 판 붙자고 하더니 한 미국 남자아이가 조카아이들 중 한 명의 싸다구를 날려버렸다. 작지만 태권도 블랙벨트인 것을 몰라보고 맹수를 건드리다니! 맞공격으로 권투 주먹으로 선빵을 날린 미국 아이의 명치를 가격해 버렸다.
강력한 한 방을 맞은 녀석은 울면서 내려갔고, 조카는 혼날까 봐 보호자인 나와 남편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왔다. “가만히 있었는데 지닌 깐 갑자기 다가와서 제 빰을 때려서 저도 한 대 때렸어요. 고모, 고모부, 죄송해요. ” 하며 곧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다. 잘했어! 맞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 미국 애들과 작은 기싸움이 있었고, 미국 아이가 먼저 때려서 조카아이가 펀치를 날리는 것을 보고 있었으나 순식간에 일어나서 말릴 새도 없었다. 인종 대결이 되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흠 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나가는 게 좋겠다며 잽싸게 물건을 챙겨 나갔다. 다행히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Day 22 Historic Silva, WCU 학식을 기대하며.
Western Carolina University를 방문했다. 미국 대학 캠퍼스도 구경하고, 학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WCU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다. 우선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Alumni 타워에서 사진도 찍었다. 기쁜 마음으로 Cafeteria로 가니 조용하고 싸하다. 어랏! 문이 닫혀있다. 방학이라 카페테리아도 문을 닫은 건가ㅠㅠ 미리 알아보고 올 것을.
점심 먹으러 어디로 갈까 의견이 분분하다. 밀크셰이크파! 치킨윙파! 그냥 Ingles 푸드코트로 정했는데 그마저도 테이크아웃뿐이고 작고 별로다. 어디에서 밥을 먹을 것인가 고심 끝에 Silva에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의 반대쪽으로 가니 큰 성당? 시청 같은 건물이 보이고 식당도 보인다. 마차가 다니던 시절부터 있었던 마을이라고 하는데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 작은 다운타운에 있는 가게에 과연 사람들이 드나드는지 궁금하다.
몇 안 되는 식당 가운데 Mad Batter 미친 반죽 스페셜이라는 시선 강탈 음식점의 메뉴판에 치킨이 있길래 더 이상 고르지 않고 그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비좁은 입구와 달리 실내로 들어서니 꽤 넓었다. 바도 있고, 공연 무대도 있고, 저녁이 되면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 같다. 나는 BLT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베이컨에서 냄새가 났다. 빵도 딱딱하다. 시큼한 버팔로 치킨 윙은 남김없이 먹었지만, 칩스와 콜라를 가장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아… 배도 안 부르고, 맛없는 거 먹고 20만 원을 쓰다니!
어찌 됐든 간단히 요기를 했으니 전망대 역할 하는 법원으로 이동하자. 귀염둥이 아이들아, 어서, 제발, 구경 가자. (이를 꽉 물었다). “걷기 싫어요. 더워요는 금지어야! ” 계단을 올라오니 바람이 불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니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법원과 도서관 건물이 고풍스럽고 아기자기 이쁘다. 올라가기 싫다던 아이들은 여기서 한참 놀고 구경을 했다. 도서관에는 한 두 명의 어른들만 보이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젠가를 하며 놀아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실컷 놀 것을 권장했다. 도서관의 사서가 더 재미난 것들이 있는 방으로 안내도 해 줬다.
내 아이들이 헨더슨빌에서는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았던 곳이 도서관이었는데, 처음 방문한 도시 실바 도서관에서는 책도 읽고, 놀이도 하고, 도서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에 와야 하나? ) Main Street 실바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람이 세차다. 이곳은 Great Smokey Mountain이 가까이에 있는 West North Carolina 답게 산세가 깊다. 헨더슨빌은 과수원이 많은 사과 마을로, 교외 지역이라면, 실바는 사람이 다니는지 한참을 기다려야 나올 듯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곰이 금방이라도 마을에 나타날 것 같은 진짜 산악 마을이다.
Day 23. 1일 2 호수는 껌이지.
Lake Keowee 갔다가 다시 Lake Jocassee!
Picken County Park- Mile Creek로 발길을 향했다. 아이들은 물이 탁해 보이고 지저분하다며 Jocassee로 다시 가자고 졸랐다. 작은 모래 해변도 있고 놀기에 적당해 보였는데 조카씨의 맑은 물에 눈높이가 맞춰졌기에 다들 표정이 시무룩하다. 4시가 넘어 조카시에 갔더니 여전히 주치장은 만차였다. 차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5시가 다 되어 다시 주차장에 가보니 직원들은 칼퇴하고 매표소는 오픈되어 있다. 프리패스라니 오늘따라 물이 더 맑아 보인다. 나도 호수에서 튜브를 타고 물에 둥둥 떠다녔더니 힐링이 된다. 잠시 물놀이하고 나오니 무릎이 반질반질 빛났다. 뷰티풀!! 자연호수인 줄 알았는데 인공 호수였다니. 독수리도 보고, 물고기 낚는 것도 보고 밤 8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도 놀 수 있겠다. 함께여서 더 즐거웠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 양옆의 가로수가 짙은 초록을 뽐내며 빽빽하게 펼쳐져 있다. 앞으로 쭈욱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는 뭐가 있을지 상상을 해 본다.
Day 24.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가 사는 곳,
Greenville, SC
도시탐험!히자.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가 사는 곳이라고 하니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국에서 아름다운 스몰 타운 1위로 꼽힌 그린빌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만 달리면 도착하고 주가 바뀌었다고, 분위기도 확 바뀐다. 그동안 로드트립으로 13개 주를 다녀봤는데 주를 통과하다 보면 각각의 State들의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미국의 50개의 주가 각 주마다 법이 다르고 개성이 뚜렷해서 각각 하나의 나라로 봐도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빌이 백인 어르신 동네라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은 흑인들의 비율이 높은 다양한 인종의 청년 도시 같다. 그린빌 다운타운 안에는 자연폭포가 있고, 살짝 흔들거리는 리버티 브리지도 있고, 다양한 맛집과 눈요기가 가득하다.
Beautiful Small Town 1위의 명성답게 그린빌 다운타운에는 현대식 높은 건물들과 잘 꾸며진 주택들이 타운을 조성하고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나, 더워서 지친 아이들은 그린빌인지, 블루빌인지 심드렁하다가 차이니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야 일제히 환호했다. 음식은 어찌나 하나같이 맛이 좋고, 양은 많은지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에 올려지자마자 무섭게 비워졌다. 우리 테이블 담당 서버는 중국계 아주머니였는데 서툰 영어와 능숙한 중국어로 내가 아이가 여섯이냐며 등을 토닥여주셨다. 계산서에 이미 팁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고 추가로 팁을 주고 나왔더니 그분이 헐레벌떡 나와서 팁 추가 지불 안 해도 된다며 취소하고 다시 결제를 해 준 후 내 손을 잡아주었다. 꼭 다시 오라는 다정한 당부와 함께.
Day 25. 잘 있어, 우리의 최애 조카시 호수
마지막으로 조카들에게 귀국하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을 다녀오자고 하니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Jocassee 호수를 외쳤다. 그래 너희들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Jocassee 호수에 가자꾸나(대단하다! 지겹지도 않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내 조카들과 내 아이들의 최애 호수에 왔다. 날이 적당히 화창하고, 조카시 호수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 휴게소에 들러 타코맛 해바라기씨가 있는지 살폈다. 여기 있다!.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만큼의 해바라기씨를 샀고, 여자 조카아이만 솜사탕 한 봉지를 샀다. 매표소 입구에 들어서니 오늘은 Free! 라니. 화요일은 공짜인가? 자주 왔다고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순진무구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2023년 여름은 시원하고 특별했다. 물놀이 중간에 해바라기씨로 간식을 먹으며 “아! 이 맛이에요! 해바라기씨에서 라면 맛이 나요. 진짜 맛있어요! ” 한다. 집에 돌아와 앞집 쿠퍼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고, 농구도 하고 놀았다. 마지막으로 트렁크에 짐을 미리 실어 두었다. 정말 마지막 밤이다.
Lake Jocassee를 유독 좋아했던 나의 조카들과 내 아이들, 그곳의 물 냄새와 온도, 하늘과 구름, 화창한 날씨를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랑 많이 해 주시고, 귀한 한국 음식 해주신 K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착하고 잘생긴 앞집 쿠퍼랑 데이비드, 함께 놀아줘서 고마워. 두 명의 제시카가 빌려준 타월과 비치파라솔, 에어펌프 너무 유용하게 잘 썼다. 맘껏 사용하라며 흔쾌히 빌려줘서 고마워. 옆집 마이크 아저씨가 구워주신 쿠키도 진짜 맛있었어요. 한국에서 온 여름 손님들을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Day 26. 뿌앵 ㅜㅜ 공항은 그런 곳이지? 잘 가!
Atlanta, GA
곧 볼 건데… 공항이란 그런 곳이다. 설렘과 슬픔이 함께하는 복잡 미묘한 공간. 오늘도 누군가와 작별하고 누군가를 맞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공항에서 조카들이 간다고 손을 흔드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걱정했던 아이들이 밝아서 다행이었고, 덜 혼내고 더 잘해줄 걸 후회도 되었다.
모두 건강하게 돌아가서 다행이어서 안도의 눈물이 나왔나 보다. 조카들이 와서 올여름이 쓸쓸하지 않았다. 사랑이 없다면 할 수 없었을 도시락 준비! 귀여운 아이들에게 빨리 안 챙긴다고 다급히 재촉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그 해 여름 손님들과 헨더슨빌에서 보낸 그 여름날의 추억이 생각날 것 같다.
공항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면서 한인마트에 들러 김, 콩나물, 포기가 풍성한 배추와 무를 샀다. 배추가 시들기 전에 (1. 맛이 있을지 모르지만 2. 망하더라도 김치는 활용할 용도가 많으니 ) 배추 세 포기로 포기김치를 담았다. 켜켜이 조금 과한가 싶을 만큼 소금을 뿌리고, 배춧잎이 흐물거릴 때까지 절였다. 다섯 시간? 절이고, 찹쌀풀은 생략했다. 부족한 듯, 한국에서 온 귀한 고춧가루 아주 쪼끔 , 게 세 마리 액젓, 새우젓, 매실액, 설탕, 음료수 갈아만든배, 마늘 듬뿍, 육수 국물 살짝 넣어 배추에 버무릴 양념을 만들었다..
음~~~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 대충 꺼내서 무심하게 만들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다. 김치의 핵심은 절이기가 80, 그리고 액젓과 마늘, 그리고 귀한 한국산 고춧가루이다.
꼬마손님들까지 있었으면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막 담근 김치에 얼마나 맛있게 먹었을까? 아이들이 떠나니 허전하다, 도시락에서 해방되니 후련하기도 하고 다시 그들이 보고 싶다. 왁자지껄 같이 있을 땐 부족해서 다 맛있더니 애틀랜타 한인타운에서 찐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도 금세 배부르고, 시큼하고 느끼하고 별로다. 오늘따라 전부 맛이 이상하다.
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다.
Adult time, Lake Keowee, SC
호수 앓이가 심했나 깨끗한 물에 몸 담그는 것만도 좋았지만 저 멀리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수를 몇 번 다니다 보니 내 보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곧 귀국해야 할 우리가 보트를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보트 운전면허도 없으니 보트가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며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기에 일주일을 넋두리처럼 틈만 나면 중얼거렸다. 나의 작은 소망을 하늘에서 들었을까? 이곳에서 마음을 툭 터놓게 지내는 친구 제시카에게 잡채를 배달해 주러 갔더니 그녀의 주차장에 보트가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까악!!! 난 소리부터 질렀다!!! Gorgeous! Oh My Godness! 따끈따끈한 그녀의 보트를 보며 내가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니 마음 약한 제시카가 남편과 나를 키위 호수에 데리고 가서 보트를 태워주기로 했다.
그날이다. 아이들이 백투스쿨하고 아침 일찍 제시카 부부와 우리 부부, 이렇게 어른들끼리 보트를 타러 갔다. 영화처럼 보트로 호수 두 바퀴를 드라이브했다. 탁 트인 시야, 보트를 가르는 물살, 산, 물, 하늘, 매 이런 것들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보트를 세우고 물속으로 풍덩!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수에서 다이빙을 했다. 꼬륵꼬르륵하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바들바들 떨었는데 진짜 별거 아니었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호수의 품 안에 안기자 드디어 헨더슨빌에 적응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트에 앉아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한국의 살림을 정리해서 이곳에 와서 작은 집을 사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졌다(너무 허무맹랑한 계획이다). 꼭 어느 여름에 다시 와서 한여름 낮에 보트를 타고, 카약을 하며 매일 호수로 풍덩해야겠다. 하필이면 여름의 끝자락에 미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보트를 타다니! 아쉽다. 호수야, 다음에 다시 올게. 진짜 안녕. 잘 있어.
아이들의 여름의 흔적인 캠프에서 엽서가 왔고, 미처 챙기지 못한 조카들의 바람막이와 속옷을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난다. 내 아이들도 함께 있을 때는 투닥거리더니 사촌들을 많이 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00형이 내가 목욕하고 나올 때까지 이렇게 푸시업을 했고, 00 동생은 음악을 들으며 이 자리에서 춤을 췄는데… 하며 남겨진 내 아이들은 사촌 형아들과 동생들을 추억한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바글바글 정신없이 여름을 보내면서 내가 사는 곳이 1일 1 호수, 맘 바뀌면 1일 2 호수 가능, 1일 3 폭포 매우 가능 한 여름 별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을 끼고 있는 헨더슨빌 인근 산과 호수에서 원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잘 가라 여름아! 흥 많은 여섯 아이들과 26일간 Grandfather Mountain, Carl Sandbug Home, Jum Off Rock, Dupont State Forest Hooker Fall, Pisgah Sliding Rock, WCU, Silva, Greenville, Lake Lure,Chimney Rock, 그리고 우리들의 최애 장소가 Lake Jocasseee, 그리고 Orlando Universal Studio까지! 4,800km를 이동하고, 아침마다 점심 도시락 마라톤에 참가하느라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친 것 같았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끝내주게 즐거워했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으니 오래오래 기억될 특별한 여름이다.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고, 간절하게 원했던 뜨거운 모닝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