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 선생님은 왜 반에 불을 안 켜지? 애들 눈 나빠지겠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메릴랜드의 Worcester county는 메릴랜드의 25개 학군 중에서 꽤나 괜찮은 학군 중에 하나이다. 사실 랭킹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어떻게 메기는지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겠지만, 구글에 school district ranking을 검색해 보면 여러 사이트가 나오니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중간/기말고사, 모의시험 칠 때마다 교무실 앞에 커다란 칠판에 전교 1등부터 순서대로 이름과 성적을 적어놓았던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지라 순위와 랭킹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라서 미국으로 이민을 올 때도 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가는 곳의 정보를 모르면 오히려 더 이런 표준화된 점수 혹은 랭킹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도 있긴 하다. 그래서 Worcester county를 선택한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였고 특히나 아이가 영어를 잘 못했으니 County 차원에서 지원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이 절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ESL 프로그램은 대학생들 어학연수 등으로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미국 공립학교에 이민자들 (영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학교차원이 아닌 학군차원(County level)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학교에 관련 교사를 파견한다던지 등의 방법으로 지원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민자가 거의 없는 곳이라 매년 3~5명 정도를 교육하는 것으로 보이며, 일과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별도의 세션을 갖도록 하고 학년 수준의 영어를 한다고 평가가 되면 프로그램에서 졸업시키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게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터라 카운티의 재정역량이나 상황에 따라서 지원이 조금씩은 다르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에서 눈물겨운 과정을 통해서 적응을 해나가게 되고, 나름의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빨리 (불과 한 달도 안 걸려) 친구도 사귀고 수업도 따라가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부모를 놀라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어른들도 애들처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왜 안될까 싶기도 한다.. 언제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글을 정리해 보겠다).
학기 초의 혼란한 모습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 학교는 수업시간에 학부모를 초대를 한다. Parent-teacher conference라고 일 년에 3번 정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학습상황이나 여러 가지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도 하나, 이는 방과 후 이야기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의 수업하는 수업시간에 함께 참여하는 참관 수업의 기회가 있다 (저학년일 경우 더 자주 갔던 것 같기도). 예전에 나의 기억에서는 참관수업을 하면 일단 교실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고, 선생님과 어떻게 보면 짜인 각본대로 '약속대련'을 했던 것 같고, 부모님들도 한껏 차려입고 교실 뒤에 서서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미국 학교의 수업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도 해서 시간에 맞추어 학교를 찾아갔다. 일단 반에 들어가니 조명을 다 끈 상태에서 모니터와 최소한의 조명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거 원래 이렇게 하는 건지 오늘만 이렇게 하는 건가?' 하며 혼자 생각을 하는 순간 와이프가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왜 불을 끄고 수업을 하지? 애들 눈 나빠질 텐데 "
그러나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우리도 뒤에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20여분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당최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며 대화를 나눴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렇게 수업을 한단다. @.@ 나중에 선생님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하면서 그 점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이 읽은 자료에 따르면 어두울수록 아이들이 집중력이 커지고 학습능력이 좋아진다는 글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직접 해보았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학교를 둘러보며 우리와는 조금 다른 교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3년 봄,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에는 교사들의 인권과 교권에 대해 아주 아픈 과정을 겪고 있다.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나 역시 가족에 교사들이 많아서 마음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차이점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교사들의 높은 자유도. 전 화에서 이야기했듯이 교과서가 없는 부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건물 자체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주어진 교실 내에서는 각 교사들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마 한번 즈음은 미국 교실을 비추는 영상을 보신 적이 있겠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엄청 다르다. 뭔가 굉장히 정돈된 느낌을 주는 한국의 교실이라면 미국의 교실은 아주 자유스럽다. 그렇다고 원래 이 사람들이 이런 어지러운 환경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대학의 교실을 보면 또 너무 심플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튼, 학년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정돈되긴 하지만 각 교실마다 선생님의 스타일 그대로 드러난다. 그게 교실 환경, 무 교과서, 그리고 수업 스타일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불을 끄고 (창문도 심지어 다 가렸음) 수업을 하는 분은 그분밖에 못 봤지만, 어디까지 수업의 자유도를 주는지 상당히 궁금할 정도이면서도, 교사가 직업적 만족도를 느낄 수 있고 교육을 전공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부분에서도 이런 높은 자유도를 주는 건 좋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를 좀 더 해석해 보면, 행정업무와 교육업무의 분리가 명확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각 교사들의 교실 환경과 수업형태의 자유도가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학교장의 간섭이 그만큼 적다는 말일 수도 있다. 최근에 일어난 한국의 학교 관련 사건에 대한 글을 보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거나 현재 상황을 기술한 내용을 보았는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행정에서 바뀐 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각 반 선생님이 일단 가능한 처리를 해보고, 심하다 싶으면 (이건 내 기준에는 충분히 핸들 할 수도 있을 듯한 상황도) Front office로 보낸다. 이거야 말로 Uh~oh! 하는 상황이다. 학생들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러면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과의 상담을 하게 되고 이걸로 해결이 안 될 경우는 학교 측에서 학부모를 불러서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생님은 수업에 최대한 방해를 받지 않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이는 다른 말로 해보자면 교사의 자유도를 지켜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절차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소개가 되는 글들을 보긴 했는데, 제도적인 도입만으로 끝날일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야 하기에 단기적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면, 지금 아이들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 등/하교 시간에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물론 한국에도 그런 교장 선생님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없다. 이는 미국에서는 스쿨버스와 승용차로 등/하교가 일어나는데 실제 여기서 사고가 많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기도 하고 따라서 이를 책임지는 교장이 그곳에 직접 나온 이유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교장선생님은 고정값이고 등/하교 지도 선생님들은 돌아가시면서 하는 것 같다. 등/학교 지도 선생님들은 대부분 담당반이 없는 Special 교사 분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을 맡게 되는 선생님들은 수업준비를 해야 하니 그럴 수도).
오늘은 글이 좀 길게 되었는데, 그러면 교사들의 자유도가 왜 중요한가? 이건 교육적 목적 말고도 교사의 처우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본다. 미국의 National Educator Association (https://nea.org)에 따르면 미국 전체 공립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봉은 $66,745라고 한다. 내가 속한 메릴랜드는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한데, Starting salary가 $49,451이며 평균 연봉은 $75,766으로 미국에서 9번째라고 한다. 사실 평균 연봉이 $
75,766이면 오늘 $1=1360원(10/3/2023 기준)으로 하면 1억 3백만 원 정도 된다.
* 한국은 'OECD 교육지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초임 교사 급여(Starting salary)는 $33,615 이였으며, 15년 차 기준은 약 $59,350 정도라고 한다. 초봉은 OECD 밑, 평균은 웃돈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많긴 하지만, 세금 내고 어쩌고 하다 보면 결코 풍족한 금액은 아니다. 미국 2021년의 Census 자료 (https://www.census.gov/library/publications/2022/demo/p60-276.html)에 따르면, 미국 가계소득의 중간 값은 2021년 $70,784로 메릴랜드의 경우 가계소득의 평균을 약간 넘지만 전미 평균으로 따지만 교사들의 소득은 중간 값에 한창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오는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많은 교사들이 투잡을 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본 많은 교사들이 학교가 끝나면 저녁에 Ocean city (해운대 같은 느낌의 바닷가 도시 - 관광객이 많이 옴)의 바에서 일하거나 다른 일을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저게 되는 건가?'는 생각에 신기해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Maryland의 경우 2022년에 약 44%에 달하는 교사들이 2nd job을 가졌다는 설문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https://www.marylandmatters.org/2023/08/28/educators-working-second-jobs-to-make-ends-meet-new-teachers-union-poll-suggests/).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고 이는 필수적으로 교사들의 자유도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하나로 만족시킬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음 이야기는
탈을 쓴 교장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