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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Apr 07. 2020

#A7. 복도식 아파트는 힐링이다

복도가 있어서 가능한 것들 

안양1동 진흥아파트 고층부는 복도식 아파트이다.

복도식 아파트에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숨을 틜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신축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를 찾기 힘들다. 그 많던 복도식 구조의 건물들이 자취를 감춘건, 효율성을 추구하는 지금의 시대에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입주자가 사용하는 실평수가 작고, 공간 활용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첫째, 복도 쪽에 창이 있었던 방은 해가 떠도 어둡다. 둘째, 공용공간이다 보니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창문 열어놓기가 가끔 민망했다, 마지막으로 복도는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있어서 비 오면 젖어있고, 여름에는 온갖 벌레들이 붙어있다. 가을에는 낙엽이 굴러 다닌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똑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재단 한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그런 건축물에 아파트의 복도는 비효율의 공간이다.

하지만! 인간사 모든 것은 기회비용이 존재하지 않는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좋은 기억도 많았다. 복도는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고 사람을 만나며, 집 안과 밖의 공기가 순환하는 장소였다.

먼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창문, 현관문만 열어도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집은 2층이었고, 내 방은 복도 쪽에 창을 내고 있어서 어두웠다. 그래도 흙, 나무와는 가까웠다. 창문을 열면 매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봄에는 벚나무의 벚꽃이 바람에 후드득 내리고, 어린 연두색 새싹들이 추위를 뚫고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봤다. 

여름에는 성장한 초록잎이 복도 앞을 가득 채웠고, 빗방울이 초록잎에 부딪혀 나는 빗소리는 녹음을 더해주었다. 매미의 울음소리도 우렁차게 들렸다. 아침저녁의 찬바람과 함께, 가을이 오면 나무들은  붉게, 노랗게 자기만의 색을 뽐내며 겨울을 준비한다. 나는 내방 1열에 앉아 문만 열어놓고 단풍놀이를 즐겼다. 정말 장관이었다. 겨울이면 함박눈이 내려 복도에 쌓이는데, 심심하면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초여름, 초가을에는 에어컨보다 맞바람이 시원했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반대쪽 베란다 창문을 열면 거실부터 각 방 곳곳까지 바람이 돌면서 시원했다. 음식 냄새도 빼고, 미세먼지만 없으면 환기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 선풍기까지 돌이면 파워 업!

마지막으로 복도는 한숨 쉼터였다. 수험생일 때는 한창 공부하다가 문 열고 나가서 복도에서 기지개도 켜고, 스트레칭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들어왔다. 성인이 되어서는 스트레스받는 날에 우리집 현관문 앞 복도에서 턱을 괴고 멍하니 있다가 들어가곤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 파란 하늘을 보거나, 비 오는 광경을 보거나, 밤에는 달도 보고 그러면서 리프레쉬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든든했다.


돌이켜 보면, 복도라서 ‘세탁~ 세탁~’ 소리도 들었고, 해가 쨍쨍한 주말 오전엔 복도에서 이불도 털었다.

열쇠 키 시절에 엄마를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 있으면 옆집 아줌마가 간식도 주시고, 괜히 몇 마디도 나누었다.

고추도 말리고, 화분도 내놓고, 장독대도 있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물론 시끄러웠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복도를 활용했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인간미 넘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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