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차 HRer에서 2개월 차 영업전략 직원으로...
한동안 글을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연초에 팀을 옮겼는데, 그게 타격이 좀 컸습니다.
2007년 입사 이후, 한결같이 제 커리어에는 HR, 인사, 교육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저를 인사팀 직원이라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작년 연말에 HR부문장께서 부르시더니 '너는 너무 오래 같은 업무를 했으니 자리를 옮겨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HR이 좋고, 저를 이동시키려면 HR팀장이나 노무팀장을 시켜달라"라고 했죠.
그랬더니 웃습니다. (그분 마음에는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동 자체는 변화가 없어'라는 게 딱 보입니다)
그러더니 다른 건 뭐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영업은 좀 부담스럽고 차라리 기획이나 숫자 만지는 게 나을 거 같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현업 기획팀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런데 영업전략파트라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기획팀으로 발령 났다고 축하해 주는데 저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를 잘 아는 분들은 바로 카톡이 왔고요)
이쪽 본부장님은 제가 기획을 하고 싶다고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이래서 말이 무서운 겁니다. 위에 적힌 제 말에서 기획하고 싶다는 의미가 느껴지시나요?)
어찌어찌해서 운명처럼 다가온 기획팀,
저는 여기서 영업전략을 맡고 있습니다. 동료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2003년생 한 명입니다.
(2003년 입사자가 아니고, 무려 2003년생입니다. 저는 1982년 생이고요)
인사만 18년 하다가 팀을 옮겨보니, '이직'을 하는 게 이런 느낌인 거 같습니다.
기존 HR실과 동료들, 일하는 방식, 선호하는 간식, 선호하는 음식점, 회식스타일까지 완전히 다릅니다.
이직한 선배들이 처음 몇 달 동안 연락 와서 힘들다고 한 게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를 통해서 얻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1. 회사가 하는 사업이 더욱 와닿습니다.
팀을 옮기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이용해 운동하는 것 같습니다.
힘은 들고, 신경 쓸 것도 많고요. (이쪽 실장님은 제 커리어는 크게 감안하지 않으시고 현업 관련 질문을 주셔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쪽 사업에 적응되면 저는 HR만 했을 때 보다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트원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실무를 바로 했어야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현업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2.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인사만 하고 지냈던 분들에게 업무를 물어보면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는 게 있더라고요.
블라인드에 올라왔던 각종 현업의 어려운 부분이 실제 그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더욱 와닿고, 그러다 보니 저분이 왜 저렇게 예민한 지도 알게 되고요. 일반적인 평판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았던 그분들의 진짜 마음, 차마 말 못 하고 가슴에 담아둬야 하는 것들을 들으면서 '내가 사람을 너무 겉으로만 봤구나', 'HR을 잘못 배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건, 이분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는 건데요.
아무래도 HR만 하던 사람이 팀에 있으니, 조용히 메신저를 주거나 물어보는 분들이 생깁니다. 상사평가를 사실대로 해도 되나요?, 원온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등등 나름대로 알려주니 좋아합니다.
그리고 기획이다 보니 자료 취합을 좀 해야 하는데, 바쁜 현업분들이 감정 상하지 않고 자료를 주시도록 넛지 하는 이메일 작성을 잘해야 합니다. (저희 아직 슬랙 안 씁니다..) 저야 뭐.. 전사교육을 하도 많이 해서, 이메일 몇 번 써서 메신저로 주니까 또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거 몇 번 하다 보면 이분들도 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3. 지금까지 몰랐던 영업의 개념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영업은 부담스럽다고 적었는데요. 제가 생각보다는 영업을 심하게 못하는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점점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업전략 쪽이라 직접적으로 영업 나갈 일은 별로 없지만, 지금까지 회사 임원들 보고하는 게 영업이랑 좀 비슷하더라고요. 그분들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정말 마음 깊은 곳에 숨어져 있는 Unmet Needs가 있는데, 그걸 잘 캐치해서 필요한 부분을 먼저 제기하는 것. 그래서 요즘은 임원 보고 들어갈 때마다 영업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업무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글거리가 생기면 또 글을 써 보렵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