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받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의 경우 기껏해야 길을 물어보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신경 써서 길을 알려주는 정도가 떠오른다. 업무적으로나 지인, 동료를 제외한 정말 길 가다 발생하는 어떤 일에 호의를 언제 받아보고 베풀어봤을지 생각해 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보다 호의를 베풀 일도 적고, 받을 일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호의에 대한 훈훈한 소식과 그 반대 소식들은 각각 자주 없기 때문에 뉴스감이 되는가 싶다. 나는 지난주 이 친절의 온탕 냉탕을 동시에 경험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자전거를 꺼냈다. 날이 정말 좋아져서 와이프와 신나게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기분 좋게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꺼냈는데 아뿔싸. 와이프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없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자전거를 성인이 되어 제대로 타봤고, 구매한 것은 결혼하고 산 자전거가 첫 자전거이다. 그래서 몇 개월 타지 않으면 바람이 빠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왜 그렇게 길거리나 공원 여기저기에 자전거 바람 넣는 공기압축기가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무튼 우리 둘은 흐드러지게 바닥에 깔린 은행 열매를 헤쳐 나가 근처 자전거 판매점에 도착했다. 바람을 넣을 차례. 그런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전거를 처음 사 봤으니 관리하는 법도 몰랐다. 바람을 처음 넣어봤다.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나오더라.
사장님은 “그 초등학생도 넣는 걸 뭐 하는 거냐?”라며 바로 충분히 기분 나쁠 만한 비아냥거림을 나에게 던졌다. 서툴게 바람을 넣는 모습이 민망하기도 하면서 공짜로 바람을 넣고 있는 입장에서 오묘한 감정이 들며 스스로 사장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어쨌든 머쓱해하며 바람을 모두 넣었다. 이후 마침, 내 자전거도 넣으면 좋겠다 싶어 추가로 넣고 있는데 입구가 맞지 않는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또 억지로 하니 바람이 오히려 빠지는 게 아닌가.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당장 방법이 없어 억지로 더 넣어보려 시도했다.
그러니 사장님이 한 마디 더 던졌다. “그건 안 맞는 거다. 내 말의 신빙성이 없어서 무시하고 계속 넣는 거냐? 내 말에 신빙성이 없냐?”라며 강하게 비아냥댔다. 사실 나도 알았다.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다시 또 맞는 공기 압축기를 찾아야 한다는 상상과 당장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며 억지로 몇 번 더 바람을 넣고자 시도했다. 마치 들어가는 것 같았으니까. 어쨌든 계속되는 눈총을 나는 이기기 힘들어 오묘한 위축감을 느끼며 자리를 떴다. 별것 아닌데 멍청하고 죄를 지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요청하면 도와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비아냥대는 사람에게 맞는 밸브를 찾아 도움을 구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왜 자전거 바람 하나로 굽신대야 하는지 몰랐다.
참으로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비아냥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공기 압축기가 공짜라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인지, 이 나이 먹고 자전거에 바람 하나 못 넣어서 핀잔을 받아야 하는 것 인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망가진 기분을 갖고 근처 다이소에서 공기 펌프를 사러 갔다.
낑낑대며 또다시 바람을 넣고자 시도하는 데 일이 엎치면 덮친다고 아까 무리하게 누르다 보니 바퀴 공기 밸브가 쑥하고 바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낮 1시밖에 안 됐지만, 참으로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오늘이 벌써 해가 저문 것처럼 내 주말이 날아간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또다시 자전거와의 씨름이 시작됐다. 몇분 고생했을까? 갑자기 쑥하고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하며 내 옆에 앉으셨다. ‘뭐지?’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아저씨는 손수 자전거 수리를 도와주셨다. 옆 가게에서 도구까지 얻어와 밸브를 함께 낑낑대며 뽑아냈다. 그러곤 “허허 요즘 내가 자전거 도움 주는 사람이 많네” 하면서 자전거 점포에 가보라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어디로 사라졌다. 이후 근처 다른 수리점에 가서 다른 친절한 사장님의 도움으로, 무료로 수리까지 받았다. 이 모든 일이 비아냥을 듣고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두 자전거를 정비하고 신나게 우리는 주행을 즐겼다. 참으로 간사하게도 좀 전에는 하루가 짧고 망한 것 같아 스트레스가 가득했지만, 한순간에 날아갔다. 비아냥으로 망가진 기분이 그렇게 순식간에 회복될 줄이야. 마치 찌그러진 범퍼가 순식간에 펴지는 기분과 같았다. 너무 깔끔하게 회복되니 뭔가 싶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장님은 나에게 왜 비아냥댔으며 그 아저씨와 수리 집 사장님은 왜 나를 도왔을까? 친절의 온탕 냉탕을 경험하니 욱신거리듯 당시 감정선이 나를 자극했다. 덕분에 그 이유를 자연스레 유추해 보게 됐다. 생각해 보면 그 온탕 냉탕은 별것 아니다. 나도 호의를 베푼다. 그때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사실 없다. 또한 나도 누군가에게 비아냥대거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종종 한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비아냥댔다면 내 심리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마음이 그대로 비친 것 같다. 사실 호의를 베풀지 않을 때도 이유는 없다가 맞는 듯하다.
그 사장님은 그냥 내가 귀찮고 순수하게 한심했을 수 있고 아저씨와 수리 집 사장님은 단순히 본인들에게는 별거 아닌 호의라서 베푼 일일 수 있겠다.
그저 이런 경험을 하고 느껴지는 결론은 하나다. 고리타분하지만 착하게 살긴 해야겠다고 말이다. 누구나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고 반대의 일도 겪는다. 그러나 그 각각의 일들을 평소 길 가다 똑같은 사람에게 받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기에 나도 이렇게 받은 호의를 누군가에게 나눠 그들도 언젠가 어디서 받은 수모를 치유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다. 엉뚱한 곳에 가서 화풀이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누군가 뺨을 맞았다면 다른 곳에 가서 화풀이하지 않도록 나도 누군가에게 받은 호의를 베풀어야겠다.
평소 호의라는 것과 친절이라는 것은 멀지 않다. 호의나 친절에 망설여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냥 베풀어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도 당장 출퇴근길에 그 사소한 상황을 경험한다면 즉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