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10년 차, 난 항상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아침 간식 집이다. 나에게 아침 간식이 어떤 것이냐 하면 달달한 아침 대용 무언가이다. 피곤한 아침에 달콤한 무언가가 입에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뜨인다. 물론 어엿한 대한민국 직장인답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이긴 하지만, 내 기준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출근한 다음 먹어야 한다. 항상 지나칠 수 없는 아침 간식은 그 아이스 아메리카노 전에 먹어야 한다. 나만의 기준이다.
아무튼 출근길에 그 간식 집들을 지나치는 것이 항상 나의 최대 난관이다. 가게 앞에 서서 무려 출근길에 5분씩이나 먹을까 말까를 고민한 적이 올해만 해도 몇 번은 되는 것 같다. 나는 일을 10년 정도밖에 안 했지만, 다양한 회사를 다녔다. 그렇다 보니 매번 바뀌는 환경에서 출근길에 마주하는 맛 좋게 달달한 아침 간식 집을 만나왔다.
‘지나칠 수 없어’ 첫 번째 간식 집은 크리스피크림 도넛이다. 첫 직장은 강남역이었다.
첫 직장은 강남역이었다. 김포에서 강남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강남역 4번 출구에 내리면 바로 앞에 항상 크리스피크림 도넛 가게에 들어갔다.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처음 먹어본 것은 중학교 시절 신촌에서였다. 간판에 불이 들어오면 글레이즈드 1+1 행사를 했었다. 갓 나온 따끈한 글레이즈드 도넛은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렸다. 겉은 차가운 설탕 코팅이지만 입에 넣는 순간 안에 따뜻한 글레이즈드가 씹히며 사르르 사라졌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라는 표현이 소고기에서만 있는 표현이 아니란 걸 느낀 것이 그때였다. 아직도 그 맛이 그립긴 하다만, 요즘 크리스피크림은 마트만 가도 박스째 벌크로 팔고 있다. 옛날 그 맛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어엿한 첫 직장이 생긴 직장인으로서 기본 도넛인 글레이즈드보다 비싼 뉴욕 치즈케이크 도넛을 즐겼다. 바삭한 쿠키 부스러기들이 올라간 뉴욕 치즈 필링이 들어간 도넛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았지만, 크리스피크림에서는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도넛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다. 핼러윈이나 제철 과일, 유행하는 다양한 도넛을 돌아가며 먹어보긴 했지만, 뉴욕 치즈케이크 도넛이 최고였다. 지금도 종종 그 맛이 떠올라 사 먹곤 한다. 여담이지만 당시 매일 크리스피도넛을 먹으니, 살이 찌긴 하더라. 그리하여 강제로 참는 날도 많았다.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지나칠 수 없어'는 구로 디지털단지에 있다. 픽셀 네트워크를 창업했던 당시 공유 오피스로 가는 길을 생각보다 멀었다. 약 10분을 넘게 걸어야 했다. 구로 디지털단지 아침에는 직장인 대군이 우르르 각자의 회사로 걸어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그 대군이 멈추는 곳이 있었다.
구로 디지털단지 이마트 뒤편 대로변에는 스팸 김밥 아저씨가 항상 있었다. 아이스박스에 따듯한 간장 스팸 김밥을 한가득 준비해 두셨다. 꼬마김밥 3줄에 4,000원, 꼬마김밥 5줄에 6,000원 정도로 기억난다. 딱 사무실로 가는 길이기에 참을 수 없었다. 김밥 안에는 달콤한 간장에 졸여진 두툼한 스팸이 한 줄 들어가 있다. 달달한 스팸 미니 김밥이다. 항상 3줄짜리 김밥을 사 먹었다. 김밥은 먹기 좋게 투명 플라스틱 담겨 있고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꼬투리 부분이 은박지로 싸여있다.
간장 스팸 김밥도 구매한 뒤 사무실까지 걸어가면서 먹으면 깔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 자칫 주춤대면 비싼 6,000원짜리만 남아 오시는 날마다 사 먹었던 것 같다. 이 김밥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구디단 스팸 김밥'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구로 디지털단지를 떠난 이들이 몇 년이 지나도 그 김밥이 생각난다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세 번째 '지나칠 수 없어'도 구로 디지털단지이다. 세 번째 맛집은 맥도날드이다. 공유 오피스 1층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당시 코로나 시절로 모두 재택을 즐겨하던 시절이다. 나는 본가가 너무 더워서 사무실에 출근해 시원하게 혼자 일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커피와 간식을 한 번에 해결하는 맥모닝을 즐겼다. 맥도날드 앱을 활용하면 포인트도 쌓이고 할인 쿠폰도 쓸 수 있어 맥도날드를 더욱 자주 방문했다. 아침 쿠폰이 상당히 가성비가 좋았는데, 그중 3,500원 정도에 맥 치킨과 아이스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세트를 가장 즐겼다.
뜨거운 수준으로 갓 나온 맥 치킨에 아이스 드립 커피를 함께 먹으면 그보다 행복할 때가 없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이 에어컨 속에서 쾌적하게 먹다 보면 아침이 즐거웠다. 그때는 아침 식사 세트, 스낵랩 다양한 아침 메뉴 등을 먹었지만 지금도 단연 꼽으라면 맥 치킨이 최고다.
마지막 '지나칠 수 없어'는 무려 3개의 관문으로 이뤄져 있다. 매일 이 관문을 참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 인천 부평역 인근에 거주한다. 사무실은 용산이라 1호선 급행을 타고 가면 그리 지루하지 않게 도착한다. 첫 번째 관문은 부평역 1층 맥도날드다. 그렇다. 맥도날드다. 지난 구로 디지털단지의 기억 때문에 아침마다 맥 모닝의 유혹을 참아내기가 참으로 힘들다.
이어서 용산에 연달아 2개의 관문이 등장한다. 하나는 용산역 출구에 있는 근대 골목도 나스 집이다. 옛날 시장 스타일의 한국식 도넛을 파는 곳이다. 이곳에서 다른 것은 전혀 먹지 않는데 어렸을 적 동네 빵집에서 먹던 생 도넛을 팔아서 지나치기가 힘들다. 그 도넛의 이름은 '와도 나스'인데 겉은 튀겨져서 바삭하고 속은 파운드케이크 식감의 목이 텁텁한 달콤 고소한 맛이다.
몇 번을 참다가 들어가면 출근 타이밍에 따라 '와도 나스'가 아직 진열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날은 참으로 감사하다. 그 도넛 외에는 먹고 싶지 않기에 미련을 전혀두지 않고 나는 사무실로 향할 수 있다.
그렇게 뿌리치고 나오면 바로 옆 코너에 삼송 빵집이 나를 마주한다. 이렇게 보면 나는 빵이나 도넛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삼송빵집에는 다양한 고로케들을 저렴하게 팔고 있다. 고추 고로케, 한우 고로케, 먹물 치즈 고로케, 옥수수 고로케 등 다양하다. 고로케는 구매 즉시 야무지게 먹으면 사무실 엘리베이터 직전에 딱 끝이난다. 어차피 점심시간이 11시 30분이라 비교적 금방임에도 이것 참 참을 수가 없다.
부평에서 용산은 3개의 관문이 등장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힘들다. 요즘은 살이 많이 찐 관계로 잘 참아내고 있긴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상 심리가 아무 이유 없이 발동돼 딱 한 번이라도 한 곳에 들어간다면 그다음 날부터 '지나칠 수 없어'의 지옥이 시작된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면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싶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구로 디지털단지역의 간장 스팸 김밥이 추억처럼 밀려와 마치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침 9시면 동나는 김밥이다 보니 가서 먹어볼 수도 없고 참으로 그 맛이 기억나는 밤이다.
이렇게 저의 직장 생활 10년 중 가장 기억나는 아침 간식 집들을 나열해 보았다. 오늘 글로 정리를 해보니 나는 그저 먹는 것에 살고 죽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창피하면서도 인정하게 된다. 여러분들은 하루 루틴처럼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혹은 절대 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그간 지내오면서 그런 것들을 한 번 곱씹어보자. 나는 배고파지는 데 당신은 다른 영감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