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2
누구에게나 소울푸드가 있다.
소울 푸드란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정서적으로 안정 혹은 위안을 만들어주는 음식을 뜻한다.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흑인들이 프라이드치킨을 영혼의 음식이라고 불렀던 데에 있다. 요즘은 좀 더 범용적인 의미 같다.
특정 추억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적 연결 또는 여러 의미에서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위안의 의미로 말이다. 예를 들어 추억을 떠올리는 대표 음식으로 여고생들의 떡볶이가 있을 것이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음식으로는 잔치 국수 한 그릇이 떠오른다.
어쨌든 내 소울푸드는 닭강정이다 나는 왜 닭강정이 영혼의 음식이 됐을까? 일단 닭강정을 말해보자. 닭강정은 모든 사람 머릿속에 정확히 떠오르는 형상이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무슨 음식이라고 똑 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 추상적인 요리다. 왜냐하면 치킨 공화국, 양념 치킨의 본고장인 대한민국에는 닭을 튀긴 요리가 수천 가지는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히나 순살 치킨과 닭강정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어렵다. 그 정도로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닭강정은 깨나 추상적인 음식이다.
내 머릿속에 닭강정 하면 떠오르는 형상은 시장에서 파는 순살 치킨이다. 꼭 어느 동네에나 지역 대표 재래시장들이 있다. 그곳에는 한켠에 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순살 치킨이 있는데, 그게 내 기준 속 닭강정이다. 놀랍게도 그 닭강정은 모든 시장에 필연적으로 있다. 정말이다.
검색도 해보니 정의는 이렇다. 닭고기를 강정처럼 밀가루와 찹쌀가루 등에 버무린 후 기름에 튀긴다. 이어서 졸인 양념으로 볶는 음식이 닭강정이다. 함경도에서 최초 유래됐으며 인천 신포시장에서 형태가 고정돼 퍼진 그런 음식이라고 한다. 함경도가 시작점이라는 점도 놀라우나 인천 신포시장이 정말 오리지널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바이럴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집 앞에 보기 드문 신포닭강정 분점이 하나 있다 보니 새삼스럽다.
아무튼 그래서 돌아와 나에게 왜 소울푸드가 닭강정인가? 분명 엄마가 집에서 해준 음식은 아니기에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소울푸드는 아니다. 그렇다고 닭강정을 먹으면 떠오르는 행복한 추억도 없다. 굳이 치면 어렸을 적 아빠가 동인천 신포시장에서 사 온 닭강정은 가히 센세이션했기에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갓 나온 치킨과는 다른 차가워도 맛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신포닭강정은 내 기준에 지금은 닭강정이 아니다. 맛은 있지만 위에 나열한 순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신포닭강정은 뼈가 있다. 항상 먹고 싶긴 한데, 그것과는 별개다. 둘째로는 늘 뼈 치킨만 먹던 나에게 순살시킨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둘리치킨 정도가 추억 혹은 기억.
그렇다면 내 기준 소울푸드라는 말은 위안과 행복을 주고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음식이겠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난 주기적으로 닭강정을 먹고 싶어 한다. 와이프가 징글맞아야 할 정도로 말이다. 오죽하면 "닭강정으로 링거를 만들어 맞지, 그래?"라고 장난삼아 조롱할 정도로. 따뜻한 양념 소스에 충분히 볶아진 혹은 절여진 닭강정은 한 입 먹으면 상당한 행복감을 준다. 단맛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마늘이 가득한 양념치킨 소스는 행복 그 자체이고, 튀김을 좋아하는 나에게 닭튀김은 그 자체로 완성된 음식이다. 더불어 뼈도 없고 부드러운 다릿살을 사용한 치킨이 얼마나 맛도리하겠는가?
달큰한 양념 치킨 소스, 바삭한 식감, 부드러운 다릿살이 어우러지면 그것이 나만의 삼위일체다. 특히 인심 좋은 사장님을 만나면 단순히 소스를, 닭튀김을 볶는 데에만 사용하지 않고 그릇 바닥까지 흥건하게 소스를 주신다. 뜨겁게 튀겨진 겉면이 푹 소스로 절여진 닭튀김 한 조각을 다시 한번 바닥에 가득한 소스에 쓱쓱 하고 입에 넣으면 사장님의 인심까지 먹는 것 같다. 최근 넘치는 휴가 소진을 위해 뜬금없이 평일 하루를 쉬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나의 행복과 비례하는 닭강정'력'을 채우기 위해 닭강정을 주문했다. 요즘에는 SNS에서 발견하고 알게 된 맘스터치 핫치즈싸이순살을 시켜먹는 데, 그때 오랜만에 인심 맛까지 맛볼 수 있었다. 맘스터치 핫치즈싸이순살은 일반적인 마늘맛이 한 가득한 붉은 양념에 순살 치킨을 볶아 위에 치즈와 마요 소스를 뿌려준 음식이다.
그날 시켜 먹은 이 치킨은 정말 사장님의 인심이 가득했다. 따끈한 양념 소스가 종이 그릇 아래에 차올라 닭강정의 아랫부분 1/4 지점까지 촉촉이 만들어주고 있었다. 소스가 너무 많아서 다시금 푹 찍어 먹을 수 있어 인심의 달큰함이 더 올라왔다. 소스도 다 돈인데 사장님의 인심 맛이랄까.
마치 같은 돈이지만 남들보다 큰 사이즈의 300짜리 신발을 사면 왜인지 모를 뿌듯함이 든다는 '강호동'의 말처럼 같은 닭강정이지만 내가 더 맛있는 닭강정을 먹었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든다.
와이프는 닭강정을 별로 안 좋아해서 요즘 먹는 빈도는 줄었지만, 오히려 좋다. 사실 자주 먹으면 감동이 사라지긴 한다. 혼자 휴가 쓰고 몰래 먹는 닭강정은 더 맛있으니까. 아무튼 이러한 한 닭강정 중독자의 닭 강정강정한 이야기를 보아주셔 감사하다.
여러분들에게도 소울푸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고른 소울푸드에 다양한 의미와 감정이 섞여 있을 테니까. 세상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알게 되면 세상은 정말 음식 하나로 행복해질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모두들 소울푸드를 먹으며 행복한 하루 보내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 와이프를 설득해서 내 소울푸드 닭강정을 먹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