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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Jan 05. 2021

다큐 <소셜 딜레마>는 왜 만들어졌을까?

선택과 집중 vs 과장과 비약

<소셜 딜레마>를 통해 고민해보는 다큐의 역할

: 선택과 집중 vs 과장과 비약


 지난해 9월에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실제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셜미디어 내 가짜뉴스, 중독, 상업적 알고리즘, 선거 조작 등을 다룬 93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스마트폰 의존도를 개인 단위의 문제로 짚은 후 '생각할 거리'를 지배한다는 관점으로 소셜 미디어 비판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짜뉴스 팽배'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나아간다.


 공개 후 페이스북은 공식 성명을 통해 '선정주의'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문제가 일부 과장됐으며 자사도 인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호소했다. 또한 일정 부분 해소된 결과가 다큐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점에도 유감을 표했다. 일각에선 '알고리즘'의 잘못된 이용을 지적하기보다 '알고리즘' 자체를 악마화해 반지성주의에 불을 지폈다는 시각도 있다.

감독 : 제프 올로프스키(Jeff Orlowski)


 반박에 담긴 사실엔 동의하지만 그 내용이 해당 다큐의 의의를 격하시키진 않는 듯하다. <소셜 딜레마>는 애초에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소셜 미디어의 딜레마를 파고든다. 다큐는 스마트폰의 초연결 시스템은 분명 편의를 높여주지만 이가 야기하는 문제가 더 가시화돼야 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도가 분명한 다큐에서 '소셜미디어'의 긍정적 측면이나 미디어 업체의 자발적 자정 노력 등을 담지 않았다는 비판은 거짓 등가성 오류에 기인한다.





다큐의 역할 : 특정 문제의식 제고

 

 저널리즘 콘텐츠는 문제에 관한 모든 원인을 파헤칠 의무가 없다. 다큐가 저널리즘을 수행할 때도 그러하다. <소셜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이 가진 여러 기술 중 소셜미디어만 콕 집어서 비판한 점을 이유로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 여러 이유가 얽혀 스마트폰 중독과 가짜뉴스 팽배 현상을 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가시화되거나 외면받는 문제의식을 공감의 장으로 가져오기 위해선 일정 부분 특정화가 필요하다. 보편적 관점을 전하는 것이 주 목적인 TV 다큐에서도 원인을 한 가지는 아닐지언정 몇 가지로 특정 짓곤 한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을 부각해야 저널리즘의 역할 중 하나이자 다큐의 기능인 '문제의식 환기'가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왼 : <로저와 나>(Roger and Me, 1989)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은 GM에 플린트 시 공장 폐쇄로 인해 수 만 명의 노동자가 실직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GM을 대표하는 로저 스미스 회장에게 묻는다.
오 : <슈퍼사이즈 미> (S2004)에서 모건 스펄록 감독은 삼시세끼 빅맥을 먹으며 생기는 몸의 변화를 통해 각종 질병(특히 성인병)에 대한 책임을 패스트푸드 업계에 묻는다.


 선택과 집중을 나쁘게 말하면 과장과 비약일 수 있다. 다큐가 문제를 조명할 때 후자가 아닌 전자로 불리기 위해선 바로 해결을 위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에서 플린트 시의 쇠퇴는 과장됐을 수 있고 GM의 영향은 적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쇠퇴는 진행 중이었고 영향도 분명 있었다. 이에 집중했기에 해당 문제의식이 퍼질 수 있었다. 모건 스펄록의 <슈퍼사이즈 미>도 마찬가지다. 맥도날드에서는 매일 삼시 세 끼를 먹으라고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일반 백반은 매일 삼시세끼 먹어도 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큐가 화제가 되자 맥도날드는 '슈퍼사이즈'를 없앴다. 문제의식이 공유되면 공유될수록 해결책을 위한 논의도 활발해진다.


 다큐멘터리는 주요 소재에 국한해 전개되기도 하지만 대개 '해석'의 과정에서 더 큰 문제로 확대된다.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 모두 GM과 맥도날드를 겨냥했지만 노동, 건강이라는 거시적 주제의 테두리 안에 있다. 지난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공개돼 개봉까지 한 <내언니전지현과 나>(박윤진, 2020)도 마찬가지다.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왜 할까란 질문에서 시작한 다큐는 게임에 관한 이야기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매크로로 획일화된 캐릭터 육성 방법에서 사회가 원하는 시선에 맞춰 육성되는 청년을 포착한다. 관객은 소위 '망겜'을 하는 일랜시아 유저를 통해 청년 세대에 기저한 무기력함까지 엿볼 수 있다. 꼭 다큐가 아니더라도 병폐를 지적하는 콘텐츠라면 대개 그 문제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정인이 사건'을 다루는 사설만 봐도 '아동 학대 관련 수사나 대처 미흡'을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경찰 수사권'이라는 거대 문제까지 건드린다.


  <소셜 딜레마>도 구글과 페이스북 비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다큐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에게 온갖 책임을 전가하며 그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감상되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 생긴 딜레마에 관한 문제의식 제고가 주요 목적이다. 마지막에 타이틀 THE SOCIAL DILLEMA에서 THE가 OUR로 바뀌는 것은 '소셜'이 '소셜 미디어'의 소셜임과 동시에 '사회의/사회적인/사교의' 등의 뜻을 지닌 SOCIAL 그 단어 자체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저격은 거들 뿐이다. 인터뷰 중에 나온 말이 이 영화의 기획 의도라 볼 수 있겠다. '매트릭스를 인지해야 매트릭스에서 나올 수 있다.' (다만 이 말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매트릭스'의 주인 격인 소셜 미디어 업체를 거대 악당처럼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구성상의 아쉬움

: 연역적 접근의 한계를 드라마와 감성으로 채운 다큐


 

 해당 다큐는 구글을 비롯해 IT업계에 실제 근무했던 사람들의 인터뷰 위주로 구성된다. 당사자의 증언이다보니 정확한 자료나 수치 등의 근거가 조금 없어도 신빙성 있게 들린다. 그 인터뷰에 근거한 다큐드라마도 삽입돼있다보니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연상되도록 알고리즘을 의인화해서 표현해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도 도왔다. (물론 이 부분으로 인해 '악의적'이라는 비판의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 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다는 비판은 피해갈 수 없다. 조금 깊게 파고든 실제 사례가 몇 개라도 나와줬어야 한다. 뉴스에서 헤드라인만 소개되듯 <평평한 지구 음모론>, <피자게이트 음모론> 등이 스쳐 지나간 건 좀 아쉬웠다.(이용자가 모두 미국인인 건 아니라고!) 물론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맥락이다보니 귀납적으로 접근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긴 했다.

 ▲ 또한 중간중간 격언을 화면에 띄워 권위에 의존한 전개를 시도할 때도 윽하며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말하는 다큐에서 지나치게 감성적 반응을 의도한 듯하여 썩 좋아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와 원인 등에 대한 공감은 격언이 아닌 근거와 분석이 뒤따랐어야 했다.


DIRCECTOR : Do you think we can gonna get there?
Tristan Harris : We have to

* 주요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전(前)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다.


https://www.ted.com/talks/tristan_harris_how_a_handful_of_tech_companies_control_billions_of_minds_every_day?languag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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