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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Apr 03. 2022

다큐멘터리적 실천 : '현-재'에서의 현실 재해석

과거,현재,미래(미지)의 얽힘 , <진실의 색>을 읽고

지금 보이는 것이 진실 그대로가 아니라면, 현실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에겐 지금의 것과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과거를 참고할 수는 있겠다만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것, "미래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비판적 간격을 재획득할 수 있다."(진실의 색, 28쪽)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징후로서 남은 것들 말이다.


다큐멘터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책무는 그 징후와 무관하지 않다. 현실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진실의 경쟁에 뛰어드는 게 다큐멘터리스트의 일이라면, 그는 현실 이미지가 말하려는 징후를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징후를 전제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스트의 관점엔 사실(있는 그대로의 것)과 현실의 차이가 없다. 잠재적, 징후적, 비판적 그리고 유토피아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관점은 '사실적 재현'에 얽매인 채 현실을 직조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현재로 옮기는 것이다. 매일 '현재'가 업데이트되는 뉴스가 미래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날마다 중요시되는, 중요하다는 보편의 가치관에 따라 걸러진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기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을 JTBC 뉴스룸 같은 곳에서 그려내기란 어렵다. 현실을 재해석할 여유가 없어 늘 있는 그대로의 현재만이 반복 재현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아마 언젠가는 도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만이 진실로 다큐멘터리적"(진실의 색, 28쪽)이라 할 수 있다. 징후적 태도가 다큐멘터리스트의 '책무'인 이유다.


여기서 미래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가만히 있어도 도래하는 것'(미래)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미지)은 다르다. 벤야민이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진보나 미래는 '가만히 있어도 도래하는 것'에 가깝다. 무사유의 급류에 떠밀려 미래가 현재로 이름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인 진보 말이다. 한편 후자의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다큐멘터리스트의 관심사다. 그래야 한다. 그 미지의 것을 포착해 현재에 재현하려는 징후적 태도는 비판적 다큐멘터리즘이 진실을 추구할 때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적  '현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 "지금 수중에 있는 것"과 달라야 한다. 현실을 말하되, 반복되는 현재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다큐멘터리스트는 재난을 목격하고 계속 거기에 머무르려 한다. 어떤 것을 쉽사리 '과거'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수치화된 시간에 의존해 긋지 않고 '현재'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스트가 미지와 연루시키려는 현재는 과거를 포함시켜 재배치한 '현-재'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간격을 얻어내려면 공간이 아닌 시간의 관점에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현-재'는 그 사유의 결과이다. 징후적 태도는 '현재'의 지배 권력에 편입되기보다, '현-재' 속에서 잠재하는 미지를 만나려는 집착으로 재정의될 수 있겠다. 이는 "어떤 결핍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미래로 환희에 차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위로 추락하는, 끊임없이 늘어가는 잔해 더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진실의 색, 73쪽) 것이다. 


과거,현재,미지가 얽혀 있는 '현-재'에서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다큐멘터리적 실천'이라 부르려 한다. 이는 히토 슈타이얼이 <진실의 색>에서 말한 '비판적 간격을 재획득할 수 있는 미래의 관점'과 닮았다. 다큐멘터리적 실천은 '현-재'의 관점을 유지하여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려는 저항이자 지금의 현실에 구멍을 내려는 움직임이다. 현실은 이 다큐멘터리적 실천, 즉 집착적인 얽힘이 만들어낸 균열을 통해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가장 먼저 울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일"(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48쪽)이 시인의 책무 중 하나라면 다큐멘터리스트에겐 ‘가장 늦게 망각하는' 책임을 지녔다 할 수 있겠다. 둘 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지를 꿈꾸되 폭풍이 몰아가는 무사유의 미래엔 등지고 있는 느림보들이다.




***쓰고 나니 책 오독한 느낌...그리고 전달을 위해선 더 표현을 다듬어야겠지...우선 생각부터 정리를 다시...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새로운 천사라는 제목의 쿨레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는 자신이 응시하고 있던 어떤 것을 막 떠나려는 듯한 한 천사가 그려져 있다. 눈은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고,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는 얼굴을 과거로 향하고 있다. 우리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잔해를 쌓아 올리며 자신의 발 앞에 내던져지는 단 하나의 재난을 목격한다. 천사는 거기 머물면서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고 싶다. 그러나 낙원으로부터 폭풍이 불어와 그 날개에 걸렸고, 그 바람이 너무 강해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 없다. 폭풍은 천사가 등지고 있는 미래로 그를 계속 몰아가고, 그 앞의 잔해 더미는 하늘 높이 쌓인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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