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려면 강해져야 해요
내가 생각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딘가 결핍된 캐릭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인데 특히 타인과 관계맺기에서 장벽에 가로막힌다는 것이 눈에 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 혹은 '벼랑 위의 포뇨'의 포뇨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모노노케 히메'에서 산은 환경적 요인 때문에 다른 사람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하울은 조금 특별한 케이스인 것 같다. 잘생긴 외모는 쉽게 호감을 살 수 있고 언제든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강력한 마법까지 가진 그는 정말 완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겁쟁이에다 나서지 못하고 숨어 지내며 관계맺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근원적 조건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포뇨가 물고기에서 인간의 형상을 얻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스케라는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울은 왜 겁쟁이가 되었는가? 작중 설리만에 의하면 그가 마법을 오롯이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사용하였고 점차 마음을 잃어간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기심이 그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울과 비슷하게 소피에게 저주를 건 황야의 마녀도 모든 힘을 잃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데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는 행위는 꼭 대가가 뒤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소피는 대단한 인물이다. 가까운 상대부터 심지어 잘 모르는 누군가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진심을 다해 타인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겁쟁이였던 하울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된 것도 소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마음의 무게는 무겁고 이를 지키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하울의 심장을 갖고 싶냐는 물음에 단박에 대답할 수 있었던 소피는 자신과 하울 사이에 마음의 무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소피와 하울에게 알맞는 표현인 것 같다. 두 사람을 통해 사랑이 갖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