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창한 나이 20대, 멋들어지게 꾸미고 싶은 게 청춘의 마음 아닐까. 대학생 때도 매일매일 내일 뭐 입지 고민하는 것이 하루 일상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가끔씩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쇼핑하러 가기도 했다. 한정된 용돈으로 값비싼 옷을 구매하거나 자주 옷을 사기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옷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다. 그런데, 오히려 직장인이 되어 옷에 관심이 뚝 끊겼다. 월급도 받아 더 이상 눈치 볼 상황이 아님에도 옷을 굳이 구매하고 싶지 않아 졌다. 바로 마트 조끼 때문이다.
마트 조끼는 마법의 옷
우스갯소리로 우리끼리 마트 조끼는 마법의 조끼라 부른다. 조끼를 입으면 마법처럼 무슨 옷을 입어도 폼(?)이 안 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싼 브랜드 옷을 입어도, 샤랄라한 블라우스를 입어도 조끼를 위에 걸치면 일반 작업복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예쁜 옷을 살 필요가 없어진다. 편하고 또 편한 옷, 예를 들면 1+1으로 만원 정도 하는 맨투맨을 입어도 전혀 문제없다. 점점 쇼핑은 멀리하게 되고, 당연하게도 다음날 뭐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사라졌다. 가끔씩 다른 약속 있는 날이면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맨투맨과 청바지만 입으니 패션센스가 생길 일이 없다. 결국 대학생 때 입던 옷만 주구장창 입고 나간다. 내가 생각한 20대, 직장인 모습과 멀어지는 것 같아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마트 조끼는 필수
사실 마트 조끼는 업무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다. 일단 상품을 진열할 때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보호해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박스의 상품들이 들어오는데 이 박스들이 깨끗할 리 만무하다. 해당 박스들을 옮기고 뜯고 진열하는데 수많은 먼지가 휘날린다. 팔을 걷고, 마트 조끼를 방패로 물건을 진열하면 옷이 망가지는 걱정은 덜 수 있다. 또한 조끼는 고객과의 무언의 약속이기도 하다. 일단 마트 조끼를 입고 있으면 멀리서 누가 봐도 마트 직원이다. 고객이 특정 상품을 찾을 때 손쉽게 직원을 찾아 문의할 수 있다. 마트 직원 또한 조끼를 입고 있는 한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고, 항상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다. 마지막으로 조끼는 교복과 같은 장점을 가진 존재다. 사실 조끼에 적응하면 이보다도 편할 수 없다. 매일 옷 고민을 덜어 회사 가는 준비 시간 또한 줄일 수 있다.
초반엔 마트 조끼가 너무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뭔가 투박한 조끼의 색상이 마음에 안 들었다. 직장인이 되어 꾸미는 것에 있어 더욱 퇴보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점점 업무에 애정을 갖게 되며, 조끼에 갖는 불만은 사실 귀여운 투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열을 하고, 포스를 치는데 값비싸고 예쁜 옷이 웬 말일까. 출근을 해 락카에서 조끼를 걸치는 과정은 마치 마인드 컨트롤의 한 과정 같다. 나는 이 조끼를 입고 오늘 업무를 시작하며, 한 번 힘차게 일해보자 마음을 먹게 된달까. 조끼를 입는 동안에는 누가 봐도 마트 직원이기 때문에 행동에도 책임 의식을 갖게 되고 말이다. 이제는 마트 조끼가 싫지만은 않다. 내 업무에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비록 예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