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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krsnrn Apr 11. 2021

5,760분치 편지

미생물의 이야기와 오리 한쌍의 이야기와 당신에게 전해야 할말이 너무나도 많아요 빠른 속도로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적어내려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물결이 빛나는 이유는 바람이 불어서도 아니고 물이 있기때문도 아니고 해가 있어서도 아니에요. 바람이 중력이 끌어당기는 물들을 지나쳐흐르고 바람보다 더 위에 햇빛이 느린 속도로 하늘을 거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물 위에 더 많은 햇빛들이 떨어져요 빛나는 비가 강가의 물위에 떨어져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맑은하늘의 은하수만큼 수많은 빛들이 떨어져 내립니다.


한때는 그저 지나가는 열병이라고 생각했던 우울이 한달에 한번씩은 꼭찾아오는 일상이 되었고 그것이 호르몬의 이유든 그렇지않든 나는 우울을 느끼다 느끼지않는 참으로 변덕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곳곳에 도래하고 있는 세상을 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이나 나를 괜찮게 만드는 것들도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내 시야가 닿는 곳에 있는 이 풍경이 감사했습니다. 이 풍경이 어떻게 제 반경에 허락된것일까요 


깨달음과 감사함을 느끼고나니 이어 며칠전 밤에 친구와 전화로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던것도. 그런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던것에도 감사해졌습니다 


그 사이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멍하니 그 누구의 의도와도 상관없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바람이 만드는 물결소리를 듣고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나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의도와도 상관없다는 것이 나를 편하게 합니다 물론환경파괴는 인간이 만들고 있지만요


허벅지가 뜨거워질때 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몇분인제 몇시인지 편하게 정해놓은 시간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나의 시계는 허벅지가 뜨거워질 때 즈음에 맞춰졌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던건 물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물결의 소리가 닿는 곳에 바람이 흐르던 곳에 제 몸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내 엉덩이가 앉고있던 땅과 그 앞의 물 내 시야가 닿는 곳에 작은 미생물들이 보였습니다


재밌지 않나요? 미생물이라는 이름은 누가봐도 사람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미세할만큼 작다는 것은 사람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니까요. 인간도. 인간이 지은 미생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물도 아닌. 다른 생물이 부르는 우리의 이름은 뭘까요?



아직 당신에게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연이어 썼던 글들에 만족을 느끼고 이어 따라온 부담감은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글은 쓰면 쓸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문득 반성하며 깨달았습니다. 하고싶은 말이 정리되지 않으면 당신에게 닿지 않을지가 가장 걱정이었던 부분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제자리에 앉아 차분히 글을 쓰는 것이 내 하루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자리에 앉아있다보니 이 주변을 하나 둘 거쳐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돌덩이가 물에 퍼지는 우스운 소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간지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두 아이를 위해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날까 합니다 


안녕! 



ps. 이번에도 종종 말의 끝에 마침표를 찍는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몇 문장은 눈치를 챘지만 마침표가 찍어버릴 생각의 끝이 두려워 무시하고 아래로 아래로 글자를 이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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