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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krsnrn Oct 11. 2020

어떤 새로움

불안으로부터의 건강

인생은 혼자사는 것이라고 어렸을적부터 엄마에게 친구와 다툰일을 이야기하면 엄마가 꼭 해줬던 말이다. 스물다섯에 4년의 대학생활과 1년의 휴학, 그리고 다시 마지막 1년을 대학에서 보내면서,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니라 내가 본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단지 나는 그동안 엄마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을 보았다. 조 마치가 작은아씨들이라는 소설을 적어내려갈 때, 손목의 뻐근함과 다급함을. 잠도 자지 않을 정도로 밀려오는 글자들을 감당해내는 그 모습을 나는 알았다. 이 상황에서까지 그와 나를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의 새발의 피정도라도 나는 그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열려있는 문이 있는 2평짜리 방에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열려있는 문으로는 엄마가 들어와 오늘 한 머리에 대해 넌지시 말을 트고 나는 그것에 상냥히 대답해주지 못한다. 엄마는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로 나의 마음을 미뤄볼 수 있지만 엄마는 나의 마음을 모른다. 내가 마음이 답답할 때 글을 쓴다는 것도. 지금이 그 때라는 것도.

  물론 그것을 모르는 것은 엄마 탓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지도 않았고, 글쓰는 기쁨이 아닌 그리는 기쁨으로 10대의 마지막, 20대의 초입을 살았다.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아닌지는 나밖에 모르지만 엄마는 그것이 기쁨이었길 바랄것이다.) 22살까지만 해도 나는 슬프면 그저 울었고 화가 나도 울었고 기뻐도 울었다. 글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더라. 기억은 안나지만 분명 22살 23살 언저리부터였을거다. 나는 그 글들을 내 주변의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내 눈에는 글이지만 다른 눈에는 그저 일기, 감정기복이 드러난 텍스트조각으로 비춰져 나의 환상을 깨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조 마치도 프리드리히로부터 "솔직한" 크리틱을 받는다. 그 상황을 보며 나 역시 크리틱밖에 하지 않는 삶이 될까 상상했다. 그리고 곧 크리틱마저도 없는 그 영역밖의 삶을 사는 데까지 상상했고 두려웠다.

  나는 내 상황을 탓하는데 익숙하다. 그것이 가장 가까워 가장 쉽게 닿는 버튼처럼 손은 그쪽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뻗는다. 나는 . 나는 스승이라 부를만한. 그들의 가르침에 감사의 말을 전할만한 스승이 없다. 나는 그렇게 올바르고 말을 잘듣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말만 듣고싶어하는 편식쟁이였다. 솔직한 크리틱이 남기는 건 무너지는 마음이다. 다시 중심을 잡기까지의 시간은 미지수고. 아니 사실 하루면 충분하기도 한데, 그것이 잠깐 괜찮은 건지 어쩐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름대로의 '다시 중심을 잡은 모습'이 더 '나은' 모습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건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럴때 탓하라고 신이 있는건가 싶다. 물론 기도도 함께 드릴게요.


오늘은 마음이 뒤숭숭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싶지 않다. 안괜찮으니까 이런 글을 쓴다. 대학은 왜다닌걸까? 무엇을 배운걸까? 누군가의 제자이었던적이 있나? 나는 누군가의 제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그럴 자격이 있나? 돈주고 학위만 산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무엇이 남은거더라. 생각이 안난다. 아 맞다, 인생은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덩그러니 외딴곳에 놓여진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나는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또 다른 불안감이다. 내가 그 어떤 것도 만들지 못하겠다 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 그 어떤 시선도 받지 못할까봐 일어나는 불안감이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어떤 시선이 올것이라고 보장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시선을 다른 누군가에게 뺏길까봐 드는 불안감이다. 나는 소리내어 외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자신도 없다. 울음을 참지 못하더라도 소리를 내어야겠지만 왜 우느냐고 주는 작은 핀잔에도 나는 오래 버틸 자신이 없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애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나의 욕심에 대한 벌이 아닐거라고.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욕망 욕구였던거라고 대답받고싶다.


나는 어떤 새로움인가. '이런 류의 글은 차고 넘쳤겠지'라고 불안에 시달린다. 한순간 불태울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 글들이라면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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