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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케세이퍼시픽, 그리고 승무원 학원

캐세이퍼시픽 면접과 광(속) 탈(락)




며칠 동안의 준비 기간이 지나고 면접 당일이 되었다. 짧지만 나름 알찬 준비기간이었다. 승무원 영어면접 책을 구입해서 영어인터뷰를 준비하고 일명 '모나미(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가 모나미 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라고 불리는 면접 의상을 정성스레 준비했다. 아침 일찍 긴장하며 준비했지만, 그날도 어김없는 *지각 병*은 진행 중이었다. 시간을 보니, 상공회의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기에는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면접 날에는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겠다는 자기 합리화에 이르자, 당당하게 택시를 타고 서울 시내를 가로지른다. 궁지에 몰려서 한 선택의 결과는 완벽하게 '꽝'이다. 그렇다. 출근 시간과 엇비슷하게 겹친 서울 도로는 말 그대로 밀린다. 면접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약속 시간이 삼십 분가량 흐른 뒤였다. 다행해 여차여차 등록은 마치고, 면접장에 들어가니 이미 면접생들로 가득하다. 암 리치를 잰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한 팔을 쭉 뻗어서 208cm를 넘기면 통과인데, 맙소사... 잘 닿질 않는다. 당황스럽다. 주위의 지원자들이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첫 번째 광속 탈락이었다. 




말도 안 되는 준비였다. 어떻게 암 리치를 한 번 뻗어서 재 볼 생각조차 못 했다. 집에 와서 벽에 208cm를 긋고 연습해서 뻗어보니 무리 없이 되는 높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암 리치를 맞추기 위해 발레까지 배우는 준비생들도 있다고 한다. 나도 발레를 배웠어야 했나... 어떻게 입 한번 못 떼 보고 끝난 면접, 그 설욕을 딛기 위해 승무원 학원에 등록하기로 결심한다. 




가장 유명한 학원을 찾아서 직장인 주말반을 등록한다.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카드로 긁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껏 나를 위해 이렇게 큰 투자를 한 적이 있었나? 평생 회원제라니 더욱 솔깃하다. 하지만 '일 년만 바짝 하고 이 바닥을 뜨리라!' 그렇게 결심한다. 승무원 학원은 신세계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실습수업이다. 전문 강사에게 승무원 메이크업을 배우고 걸음걸이와 인사법을 배운다. 동그랗게 말아서 단정하게 하는 승무원 머리를 하는 방법도 배운다. 예법과 매너에 관한 모든 수업은 일 년 차에 모두 배웠다. 일 년 차라는 것은 그렇다. 2년 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3년 가까이 승무원 학원에 다녔다. 




3년 차가 되어가니, 주말반 수업은 학교생활을 방불케 한다. 이동이 잦지만 계속 마주하는 준비생들과는 무언의 동지애가 피어나고 몇몇 가까운 사람들도 생긴다. 이제 학원 관계자나 강사님들도 우리들을 고인 물 혹은 밀려있는 똥차처럼 보는 건 아닐까 괜스레 자격지심이 생긴다. 그동안 학원에서 주최하는 항공사 면접은 물론 외부에서 있는 면접을 수없이  큰 소득이 없다. 워크인 면접(면접장에 이력서 들고 가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면접)은 아쉽게도 스몰톡에서 그 이상을 나아가질 못한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되려 외국에서 보는 게 승률이 높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누구는 말레이시아 워크인 면접에서 합격했다더라", 이런 카더라는 듣다 보니 어느새 홍콩행 비행기표를 발권하고 있다. 당시 학원에서도 몇몇이 홍콩에서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워크인 면접을 위해 비행기표를 끊었다. 결과는 덕분에 신나게 홍콩 여행을 하고 왔다. 첫날에 광속 탈락을 한 덕분에 나머지 5일을 맘 편히 즐기고 왔다. 홍콩은 서울보다 빽빽하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지만, 밤거리는 우수에 젖어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지금도 홍콩을 생각하면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선명한 별이 떠오르는 도시,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연상된다. 




그렇게 홍콩에서 환기하고 나니 승무원에 대한 열정이 더 강하게 불타오른다. 밥 먹듯이 외국을 드나들고 싶다. 그것은 내 삶에 너무 큰 활력이자 동력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내가 너무나도 하고 싶은 꿈이었다. 다행히 그 꿈을 함께 좇아갈 친구들이 생겼다. 승무원 스터디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먼저 와서 스터디 제안을 한 친구는 한눈에 보기에도 (승무원이) 될성부른 나무였다. 나는 그 동아줄을 간절한 마음으로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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