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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회색빛 독일 공항

독일 워크인 면접을 공략하라!

승무원 스터디


스터디 모임은 내가 들어가면서 4명이 되었다. 카페 스터디룸을 빌려서 주 2, 3회 모였다. 스터디 장이 워낙 열정적이었기에, 매일 해야 할 것들로 넘쳐났다. 모이면 두 명씩 짝을 지어, 미리 외워온 "입트영"으로 입을 푼 다음, 작성해 온 예상 인터뷰 답변을 토대로 가상인터뷰가 진행된다. 나만의 얇은 영어인터뷰 책은 이때 모두 완성되었다. 2명은 면접관이 되고, 2명은 면접자가 되어 면접을 본다. 모든 과정을 역할을 바꾸어 동일하게 한번 더 진행한다. 걸음걸이, 자세, 표정, 목소리, 인터뷰 답변 등 미세한 부분까지 서로 피드백을 해준다. 카메라를 맡은 친구(면접관 중 한 명)는 이 과정을 모두 촬영하고 밴드에 공유한다. 스터디가 없는 날에도 매일각자 하나씩 질문을 골라서 인터뷰 영상을 찍어 밴드에 업로드한다. 그렇게 시작된 스터디는 중간에 불협화음이 있었다. 당시, 스터디 장이 결국 나가게 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그녀의 탈퇴 이후에도 그 스터디는 여러 멤버들이 스쳐가면서 꽤 오래 진행되었다. 나중에 스터디 장은 결국 승무원이 되는 데 성공한다. 역시 그녀는 (승무원이) 될 성 부른 나무였다. 


꿈에 그리던 유럽, 그리고 독일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는 우연한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승무원 학원에서 친해진 언니였다. 때마침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언니랑 대화하다가 알게 되었다. 평생 '워킹홀리데이'라는 카드는 나라를 불문하고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만 30세 이하라면 이미 다녀온 나라를 제외하곤 어디든 신청할 수 있단다. 당시 만 30세까지 약 일 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미 다녀온 호주, 비자 신청이 비교다소 까다로운 캐나다와 영국을 제외한다. 유럽, 그중에서도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비교적 쉽게 발급되는 독일을 선택하기로 한다.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중동항공사 워크인 면접이 자주 열리던 때였다.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용이한 위치에 있다. 비자신청에 필요한 절차를 마친 뒤 독일대산관 방문 예약 일정이 잡혔다. 당시, 독일비자는 서울 대사관에서 방문신청만 가능했다.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서 대사관으로 향한다. 대사관에서 심사가 좀 엄격하다는 얘기가 있어, 괜히 긴장된다. 비로소 마주한 대사관 직원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영어 할 수 있지요? 여기다가 왜 독일에 가야 하는지, 그곳에서의 계획은 무엇인지 적어서 제출하세요." 그녀에게 받아 든 새하얀 A4 용지를 바라본다. 잠깐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원래 이런 절차가 있었나, 나이가 곧 30이 되니 좀 깐깐하게 보는 건가... 그런데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하나? 아, 왠지 너무 솔직해지면 안 될 것 같다. 제일 안전한 거, 그렇다. 이미 영문인터뷰 얇은 책 한 권을 썼는데, 자신 있다. 방향이 정해지고 나니, 10분 만에 휙 써내려 갔다. 요지는 고등학생 때부터 독일어를 제2 외국어로 공부해 왔다. 독일에 대해서 항상 호기심이 있었고, 이번에 가서 그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독일어를 향상하고 싶다. 이런 내용이었다. 약 한 달 후에 기세등등한 독일비자가 도장으로 꽝 찍힌 여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독일 비자가 나왔지만 쉽사리 한국을 뜨지 못했다. 이미 비자 날짜는 시작되었는데, 엄마가 추석만 보내고 가라고 하시는데 뿌리칠 수가 없다. 사실, 두려웠다. 대사관에서는 그럴듯하게 썼지만 사실 아는 독일어는 아, 베, 체, 대(A, B, C, D)가 전부이다. 생각보다 돈도 정말 얼마 모으지 못했다. 그럼에도 뭔가 알 수 없는 추진력으로 하나하나 준비한다. 독일 지도를 띄워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해본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산다는 지역이 있단다. 그래 여기다. 여기에서 아무래도 일을 구하기 제일 수월하겠지? 그렇게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일단 가서 지낼 한인민박도 일주일 예약한다. 집에도 급한 필요가 있어 백만 원을 냈다. 그러고 나니, 정말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들과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마음 한편이 쇠로 된 추를 올려놓은 듯 무겁다. 스스로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일단 가서 일주일 동안 지낼 곳이 있으니, 그동안 일을 구해보자! 그리고 만약 일주일 안에 일을 못 구한다면 만능 신용카드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서 돌아오자! 그러면 일단 독일 땅 한번 구경해 본 셈은 되겠지! 그렇게 다시 생존가능성을 저울질하며, 미지의 세계로 가는 출발을 한다. 회색빛 마음을 안고 도착한 독일의 새벽공항은 나의 맘을 수채화로 칠한 듯 역시 회색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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