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워크인 면접을 순방하다.
-회색과 낭만의 도시-
이제 가을이 한창인 독일은 제법 쌀쌀했다. 아직 하늘은 맑아 보였지만, 오후 3시만 넘기면 하늘에는 회색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인민박은 3인 실을 예약했다. 제각기 사연과 목표를 가지고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친구들이 한 방에 모였다가 흩어지곤 했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낯선 곳에서 동일한 비자를 소지하고 같은 방에서 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가 오간다. 서로가 서로를 애틋해하며 격려한다.
민박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매일 새벽 6시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김없이 생존본능이 발동되었다. 평소에 지긋지긋하게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게으름씨는 발붙일 곳이 없다. 아침을 먹고 방에 올라와서 노트북을 켜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다행히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소지한 자-들은 구직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고용주 입장에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공고문에 단 한 글자라도 공통점이 있으면 모두 지원해 본다. 몇몇 곳에서 연락이 오고 면접을 본다. 다행해, 귀국행 비행기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독일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민박집 사장님께 예정보다 일찍 나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린다. 일하는 조건을 들어보시더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말씀해 주신다. 안심이 된다. 이미 7일을 예약했지만 2일 치의 환불금액을 거의 돌려주셨다.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 챙겨 온 고춧가루 한 봉지를 드리며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섰다. 민박집에 숙박한 지 5일 만이었다. 지나고 보니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무사히 넘어온 것은 스쳐가는 이들의 온정 덕분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따뜻한 온기를 남긴다.
-유럽에서 만난 에미레이트-
일하는 중간에 휴가를 내어 워크인 면접을 보러 갔다. 첫 번째 장소는 함부르크였다. 당시, 한국에서 일 년에 한 두어 번 열리던 에미레이트 워크인 면접은 유럽을 순회하며 매주 열리다시피 했다. 정말 시간과 돈만 있다면 매주 참석할 수 있을만한 스케줄이었다. 함부르크 면접장에서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도 평범한 스몰톡(Small Talk)- 이력서를 제출하며 면접관들과 첫인사를 나눈다. 보통 짧은 날씨 인사로 시작하고 이력서에 대해 얘기를 나누지만 사실상 1차 면접이다-과 눈물의 광속탈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기억에 남는 건 함께 광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매우 우울해하던 인도에서 온 한 친구-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이다. 그녀는 매우 힘겨워했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면접이 열렸다. 메세역에서 내려 면접장 방향으로 걷다 보니, 여기저기 면접생들이 보인다.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반갑다. 그도 그럴 것이 토요일 아침부터 단정한 머리에 정장을 입고 그 주변을 바쁘게 걸어갈만한 사람들은 뻔했다. 그렇게 한 두어 명 인사를 하면서 길동무가 되더니, 어느새 정장을 입은 큰 무리를 이뤄서 걷는다. 모두 긴장했고,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당혹스럽다. 걸음걸이가 너무 빠르다. 거대한 무리가 일제히 빠른 보폭을 맞춰서 걷다 보니 갑자기 머리 앞이 빙빙 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른다. 조용히 그들이 안 보이는 곳까지 먼저 가기를 기다려 보지만, 역시 친절한 친구들이다. 모두 멈춰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본다. 잠깐 어지러워서 그러니 먼저 가라고 하지만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한다.
제발, 제발 먼저 가줘, 괜찮으니 제발!"
걸음을 떼면서도 몇몇은 계속 뒤를 돌아보며 걱정해 준다. 그때 길동무들 중에 몇 명이 붙었을지, 대부분 붙었을지 혹은 모두 떨어졌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 처음 마주하는 얼굴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챙기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동고동락의 감정을 나눴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 (승무원이) 될 성 부른 나무들이었다.
한국인들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부지런하다. 면접장이 어느 지역에 있든지 한국에서 온 면접생은 반드시 있다. 사실 여럿 있었다. 잠깐 마주하는 이들이지만 그 자리에서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생사를 오가는 우리 모두는 그 누구보다 진솔하다. 그날도 광탈을 하고 허무한 마음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을 무렵, 옆을 보니 한국에서 온 어떤 면접생이 울고 있다. 어쭙잖은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는 아마 이 면접을 위해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독일의 여러 도시의 면접일정을 쫓아다니고 심지어 인근국가까지 다녔다. 어느 날은 면접장 강당에서 틀어주는 회사 홍보영상을 보면서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미 수십 번 본영상이다. 어떤 면접장에서는 면접관이 이번에 떨어진 면접생들은 다음 주에 있을 다른 도시에 있는 면접에 오지 말라고 주문한다. 본인들이 그곳에 갈 것이니 어차피 다시 와도 이름을 확인하고 떨어트릴 것이라 경고한다. 그 말을 잘 새겨듣고 다음 주에 있는 면접은 불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갈 걸 그랬다. 면접관들도 이미 한 번 떨어트린 면접생을 또 마주하는 수고로움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일일이 그걸 확인하겠나? 그리고 지난주에는 별로였지만 그다음에 봤을 땐 괜찮을는지 누가 알까? 수많은 면접 중에서 광탈에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딱 그까지였다. 이미 너무 많은 광탈의 고배를 마셔서였을까? 아니면 어차피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까? 합격과 불합격의 명확한 기준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영어를 그다지 못 해도 외모가 특출 나면 붙기도 하고, 누군가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도 떨어지기도 한다. 랜덤 같은 합불의 고비에서 일희일비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면접을 봤다.
10개월 남짓 남아있던 비자가 끝나고 다시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유럽에서의 그 수많은 면접장에서 단 한 번도 면접관과 스몰톡 이상을 나아가지 못했다. 원 없이 면접을 봤으니 된 것인가... 별다른 생각이 잘 안 떠 오른다. 한 가지 생각은 독일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유럽 워크인 투어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고 진정한 방황이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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