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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승무원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

고객 서비스직 섭렵하기

-바리스타-


한국으로 돌아오니, 방황이 더욱 심해졌다. 마음을 잡지 못해,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시피 하였다. 그렇게 안빈낙도(安貧樂道)인 척 살다가 생활고에 시달릴 무렵, 동네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때마침,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친구가 좋은 자리를 제안했지만 서울로 다시 가서 방을 구할 것을 생각하니 까마득해진다. 그래도 비교적 좋은 조건이라 고민하던 차, 이번에는 동생이 붙들며 바리스타 자리 모집이 떴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다시 안전한 고향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 덕에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우유 스티밍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는 거품의 두께가 다르다. 동일한 샷에 카푸치노는 우유 거품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에 카페라테보다 부드럽고 커피맛이 훨씬 진하다. 일인체제로 돌리는 카페라서 마음 편하게 일했다. 손님이 갑자기 몰릴 때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할만했다. 마음껏 커피를 뽑아먹을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오전으로 들어갔다. 오전은 훨씬 쾌적했다. 아침의 햇살을 보면서 출근하고 마감 때의 시간재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아니, 처음부터 손님이 별로 없었다. 애꿎은 창문만 매일같이 닦고 또 닦았다. 결국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미 채용될 때도 사장님은 가게 문을 닫을 잠정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니면 그때 저울질 중이었거나... 그렇게 즐겨했던 커피집 아르바이트는 아쉽게도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


다시 '사람인'을 뒤지기 시작한다. 눈에 들어온 것은 비즈니스호텔 프런트데스크 클락 모집이었다. 때마침, 조건이 맞다. 아, 나이제한이 살짝 걸린다. 모르겠다. 그냥 지원서를 제출해 본다. 다음날 바로 연락이 오고 면접일정을 잡았다. 면접연습은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해 왔다. 이 자리야 말로, 승무원이 되기 직전에 많이들 경력을 쌓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면접 질문은 모두 이때까지 준비했던 승무원 인터뷰 범위 안에 들어있었다. "1. 당신에 대해서 소개해 보라! 2. 당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3.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4. 만약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대략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면접 시간은 30분 이상 꽤 길었던 것 같다. 이미 수없이 많은 작문과 수정을 반복하며 입으로 내뱉었던 영문인터뷰를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대답하는 텀이 조금 느려졌겠지만 이 또한 더욱 신중해 보이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날 면접을 보고 이틀 후에 합격전화를 받았다. 의기양양해진다. 드디어 호텔리어가 되었다. 한 계단만 더 오르면 승무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카타르 워크인과 아디오스-


기세를 몰아 이번에도 케세이 퍼시픽이 잊지 않고 불러 주었다. 이전과는 면접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서류전형을 마치고 온라인으로 1차 면접을 보았다. 집에서 홈페이지에 접속해 카메라를 켜고 나오는 질문에 대해 30초 준비하고 1분가량 대답하던 방식이었다. 메이크업과 상의를 갖춰 입고, 하의는 집에서 입는 편안한 바지였다. 원래 온라인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면접질문은 흡사 토익스피킹과 비슷하였다. 긴장된 입술이 파르르 떨릴 때쯤, 면접영상 녹화가 끝났다. 왠지 합격일 거라는 낙관론이 고개를 든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게 최종면접 초대장을 받는다. 다시  면접을 위해서울로 올라갔다. 최종면접이라지만 꽤 많은 면접자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백 명가량이 초대장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식 밀크티와 커피 및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기념품도 두세 개가량 받았다. 주최 측에서 꽤 많은 준비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대일 면접이었다. 큰 방에서 띄엄띄엄 앉은 몇몇 팀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다리며 손짓하응면접관이 보인다. 단 둘이 의자에 앉아서 30분가량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무엇보다도 말이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났다. 긴장에 긴장을 더하다 보니 나중에는 "discuss"라는 단어를 못 알아들어서 몇 번을 되묻다가 결국 종이에 적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적어주었다. 허... 왜 그랬을까? 작은 해프닝? 후에 그녀는 신속하게 인터뷰를 종료했다. 나중에 후기를 보니, 40분 혹은 1시간가량 인터뷰를 했다는 후기가 꽤 있었다. 아무래도 탈락인 듯하다. 처음으로 승무원의 세계로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던 케세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아쉬워할 시간이 없었다. 그 해는 워크인 면접이 많았다. 이번에는 고향에서 워크인 면접을 여는 카타르항공에 도전하기로 한다. 면접이 열리는 호텔이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지하철 역에서 택시를 잡아서 간다. 택시기사 님이 예쁘다고 칭찬을 하신다. 그 말이 왠지 격려처럼 다가와 감이 좋다. 드디어 스몰톡-이라 말하고 1차 면접이라 읽는다-면접을 위해 지원자들 뒤에 줄을 선다. 앞뒤로 지원자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아침에 재봤던 암리치 212cm 도 괜찮았다. 차례가 오고, 금발머리에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면접관과 날씨로 스몰톡을 시작한다.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것처럼, 그녀도 나에게 호감을 가진 듯하다. 두 세 마디를 더 주고받더니, 그녀가 저기 가서 암리치를 재 보라고 한다. 순간 어떤 섬광 같은 게 머릿속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이건 암리치가 통과되면 1차 면접을 통과한다는 뜻이다. 이전 무수한 워크인 면접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얘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팔을 쭉 뻗어보는 순간, 카펫으로 된 바닥은 유난히 푹신해서 발이 풀숲에 묻히는 기분이다. 팔을 더 뻗어보려 하지만 고지는 한 참 저 위에 있다. 경직된 몸은 더더욱 늘어날 생각을 안 한다. 복기해 보니 당시 발 뒤꿈치를 들었는지도 확실치가 않다. 그렇게 벽 앞에서 전의를 잃고, 두세 번 뻗다가 다시 면접관에게로 돌아간다. 살짝 당황한 듯한 그녀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너에게서 참 좋은 인상을 받았고 네가 마음에 들어서 더 진행을 하고 싶지만, 암리치는 안정상 규정이기 때문에 더 진행할 수가 없어. 미안해"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면접장을 걸어 나왔다. 중동 항공사는 현장 암리치가 체감 215~216cm라는 카더라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정한 기준에 통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면접장을 내려오는 길에서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삼십을 훌쩍 넘긴 지금 그나마 채용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중동항공사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에 어느 정도 관대한 만큼 신장에 있어서는 좀 더 엄격하다. 그렇다면 노려볼 수 있는 곳은 싱가포르, 홍콩, 베트남 혹은 유럽 항공사인데 그들은 20대를 선호한다. 그렇다. 아시아권은 물론 유럽항공사도 나이에 엄격하다. 길고 긴 길을 돌다 보니 이젠 좀 지쳤다.


홀가분했다.

해볼만큼 해봤으니 이제는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포기를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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