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an 13. 2022

칼단발에 튀어나온 머리카락 한올 어찌해야 하오리까

출퇴근길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 두 번째 이야기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출퇴근길 가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다가 문득 글로 풀어내고 싶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뒷모습이 저에게 걸어오는 말! 즐겨주세요




부평역. 단 몇 분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전철안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급행을 타려는 사람들이 줄에 줄을 서는 곳. 누가 줄을 서라고 한 적은 없으나 애매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반듯한 줄을 바라본다. 먼저 줄 선 사람이 먼저 들어가 먼저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인 대한민국 전철 속 질서. 전철에서 줄을 서거나 자리에 앉는 것에 관해 명문화된 규칙은 분명 없을 텐데 스스로 알아서 너무나 엄격하게 적용하고 지켜가는 규칙을 바라보며 나는 또 감탄하다.



그렇게 자로 잰 듯 줄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바로 내 앞에 선 사람에게 시선이 옮겨갔다. 자로 잰 듯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숨 막히는데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자로 잰듯한 어깨 위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 칼로 잘라낸 듯 반듯한 단발머리선 사이로 머리카락 한가닥이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 이건 매우 곤란한데... 큰일 났다... 아... 어쩌지...’ 뭔가 완벽함을 해치는 저 삐죽이 튀어나온 머리카락 한가닥. 저것을 없앰으로써 완벽한 질서를 구현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몰려왔다. 저 한가닥 빠지다 만 머리카락. 살짝 집어서 내던지면 저 사람은 내 도움으로 인해 머리카락 선이 완벽해질 것이고 동시에 내 마음속 평화도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한가닥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결국 이상한 오지랖과 되지도 않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그날 내 인생 흑역사 리스트 한 가지가 가볍게 추가되었다. 나는 앞사람의 생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뽑아버렸고 앞사람은 뒤통수를 잡으며 아주 빠른 속도로 180도 회전하여 나를 바라보았고 그때 그 사람 눈빛을 굳이 언어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 씨발. 뭐야? 뒤에 서 있다가 왜 갑자기 남의 머리카락을 뽑아. 너 미친 거 아니야? 경찰서에 정신 이상한 사람 있다고 신고해야 하나?”



나는 바로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매우 빠른 속도로 2~3번 반복했다. 그리고 혹시나 자리가 2~3자리 정도 비어있다면 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던 내 줄을 지키지 못하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왠지 그 사람이 나를 계속 째려보는 것 같아 그 사람 시야에서 벗어나는 곳까지 잰걸음으로 걸어가 자리 잡을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 맨 뒷자리에 다시 줄을 섰다.



그리고 그 일 이후 나는 전철에서 어깨끈이 꼬인 가방을 보거나 코트나 니트 등짝에 붙은 머리카락을 보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이 주체할 수 없는 충동 때문에 더 이상 흑역사 리스트를 추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전철에서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순식간에 잃게 하는 그런 쓸모없는 행동 따위는 지옥철 출퇴근 시간을 감당해야 하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사람들 뒷모습 따위는 쳐다보지 말고 핸드폰이나 쳐다보다 얼른 내가 가야만 하는 그곳에 도착하자!



작가의 이전글 빠다코코낫과 희망 한조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