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사이다 Sep 23. 2022

받아쓰기 시험

초등학교 2학년은 매주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첫째 아이 때는 따로 연습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우리 둘째는 학교에서 시험이 있다면 집에서 미리 연습하고 간다.

그렇게 연습하고 가야지 또래 아이들 비슷한 점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혹 너무 시험을 못 봐서 좌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집에서 공부를 한다.

매주 목요일 받아쓰기 시험이 있는 날이다.

전주 주말부터 하루에 5개 문장씩 쓰기 연습을 하고 시험 전날에는 시험 보는 모든 문장을 쓰고 틀린 것을 고쳐쓰기를 연습한다.

1학년 때는 이 시간이 매우 길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2학년이 올라오고 나서 학교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이 아이에게 좋은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2학기가 되었고, 여느 때처럼 똑같이 집에서 같이 공부를 하는데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반 에반으로 줄었다.

이 아이가 그동안 성장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아이같이 느린 아이는 학교에서 보는 받아쓰기, 단원평가, 숙제들을 하는 데에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다 보니 아이가 자라나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지난 학기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드디어 어제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사실 나는 속으로 기대를 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아들이 시험을 잘 봤을 것 같았다.

집에서 공부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고 실수하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잘 봤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받아쓰기 공책을 열어보니 30점이었다.

우리 아들이 내 눈치를 보며 엄마 속상하냐고 물어본다.

나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아이에게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해줬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본인도 기대했을 텐데 더 속상했을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했는데 결과는 항상 좋지 않은 우리 아들이 혹시 좌절감을 맛보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시험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띄어쓰기에서 틀리거나 집에서는 한 번도 틀리지 않던 글씨에 실수를 했다.

30점이라는 점수보다, 어디서 무엇을 틀렸는지를 보니 예전보다는 많이 성장한 게 분명하다.

똑같은 30점이어도 예전에는 대부분 글씨를 엉망으로 썼고, 이번에는 띄어쓰기나 문장부호의 실수 등 헷갈리는 단어 한두 개의 실수가 있었다.

우리 아들의 노력에 더 칭찬해줬다.

''시험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점수는 예전과 비슷하지만 그 안에 틀린 거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데. 이번에는 많이 알고 있는 게 보여 엄마가 기뻐''

라고 말해줬다. 이 점수 하나로 너의 노력을 말해줄 수는 없는 거니까.

비록 1학기랑 점수는 다르지 않지만 너의 성장을 엄마는 함께 공부하면서 봤으니까.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아들도 노력한 만큼의 성공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본인도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1학년 때와 지금이 다르듯 한해 한해 자라날 너의 모습을 기대한다.

하나님이 우리 아들에게 비록 난독증이라는 어려움을 주셨지만,

또 다른 큰 은사를 주신 줄 믿는다.

그것이 아직 공교육 시스템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날개 달고 너의 재능이 훨훨 나는 날이 있을 줄 믿는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