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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Feb 03. 2023

자녀를 귀한 손님처럼

잔소리를 참는 일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개학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첫째 아이가 개학식날 학교에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다.

첫째 아이 방학 숙제 중 하나가 매일 책을 읽고 독서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다른 학년들과 비교하면 숙제가 많기는 하다. 우리 둘째의 경우만 하더라도 책은 매일 읽어도 독서록은 주 1회 쓰는 것이 보통이다.

첫째 아이 선생님께서는 독서록 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매일 쓰는 숙제를 내셨다.

나는 당연히 매일 숙제를 했는 줄 알았다. 내가 중간에 물어봤을 때도 매일 숙제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첫째 날 학교 다녀오고 나서 첫째 아이가 한 번도 독서록을 쓰지 않은 것을 알았다.

학교 다녀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밀린 독서록을 쓰고 있었다. 한두 편도 아니고 30편 가까이 독서록이 밀려있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방학숙제를 밀릴 수도 있지만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과,

밀렸어도 보통 개학 전날까지는 부랴부랴 끝내기 마련인데 전날까지도 하지 않다가 개학하고 나서 한다는 것,

방학중에 엄마에게 숙제 매일하고 있다고 거짓말한 사실까지 복합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

더구나 평소 모범생이던 첫째 아이의 모습에 놀란 것도 사실이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귀찮아서 안 했다는 거다.

숙제를 안 하고 학교를 가면 혼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춘기인가......,

너무 화가 났지만 말을 아꼈다.

결국 그 많은 독서록은 다하지 못했고,

개학 후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밀린 독서록을 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께는 깜박하고 숙제를 안 가지고 왔다고 했다고 한다.

내가 말을 아꼈지만 아마 내 표정에서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오늘과 같은 경우 화가 목 끝까지 가득 찼다.

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는 대범함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계속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첫째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다.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안 그래도 예민한 아이인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어젯밤도 숙제를 다 못하고 잤다. 오늘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한다는데 나도 모르겠다.

부모가 자녀를 매일 감시할 수도 없고,

나는 첫째가 이제를 혼자 숙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검사하지 않고 중간중간 잘하고 있는지 묻기만 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이었는지

많은 생각이 드는 요 며칠이었다.

모범생이지만 예민한 첫째는 첫째대로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느린 아이인 둘째는 둘째대로

서로 다르 방법으로 부모를 힘들게 할 때가 있고,

다른 모습으로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에 잘 날이 없다고 우리 세 남매를 키울 때 그렇게 말하셨나 보다.

누가 보면 방학숙제 한번 밀린 것에 유난이라 하겠지만

첫째는 여러모로 첫째라 엄마가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어찌할 바를 보르는 경우들이 생기게 된다.

오늘도 일어나면 잔소리를 하지 말자.

한번 더 다짐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더 내려놓자.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자녀를 우리 집에 찾아온 귀한 손님처럼 대해라.

귀한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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