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다시 대학 갈 준비를 하다
5, 4, 3, 2, 1... 해피 뉴 이어!
하룻밤 사이에 나는 난데없는 서른을 맞았다.
보통 나이 앞자리가 바뀌면 감회가 새롭다던데, 뭘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게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탓에 떡국을 먹어도, 남들이 계란 한 판이라 놀려도 별 감흥이 없었다.
2021년은 꾸미기 좋아하던 스물아홉의 내가 그간의 겉치레를 다 벗어던지고 운동복 4개를 번갈아 입은 채
학원과 집 그리고 스카(스터디 카페)를 전전하며
영어와 긴긴 싸움을 벌이던 해였다.
2020년 서울시 소속 공무원이었던 나는 꿈을 위해 면직을 결정하고
영어 교육자의 꿈을 새로 키우며 나아가던 중이었다.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쌓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전에 아무래도 전공자 라벨을 달고 싶었기에 대학원 진학을 몇 달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내 불안을 완벽히 제거해줄 수단은 아니었다.
나는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고, 학부 전공이 영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요즘 세상엔 스펙보다 실력이라지만 완벽주의 성향의 내겐 찜찜한 구석은 웬만하면 1mm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편입학을 결심하자 악의 뿌리를 뽑은 듯 속이 편안해졌다.
물론 걱정도 됐었다. 10대 때 겪은 입시 트라우마의 잔재가 아직 저 깊은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편입학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주변에 전하자 응원과 걱정이 동시에 들려왔다.
편입 영어가 그렇게 어렵다던데. 뭐 이런 말들이 들렸던 것 같다.
솔직히 별로 신경 안 썼다. 난 영어 잘하니까.(정확히 말하면, 잘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껄껄))
4월이 되자 제일 유명한 편입 학원에 등록했다. 레벨 테스트 필요 없이 나의 공무원 시험 합격 이력과 950점이 넘는 토익 점수를 내밀자 학원비 할인과 함께 최상위권 반으로 배정받았다.
우쭐한 시작이었다.
최상위권 반은 새벽반이라 이른 오전부터 수업이 시작되고 아침 조례 때는 Daily Test를 본 뒤
수업이 끝나면 종례가 있었다. 마치 고등학생 때로 회귀한 것 같았다.
수업은 문법/어휘/논리/독해 이렇게 4과목으로 이루어져 진행됐고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과목별로 달랐다.
나는 수학처럼 명쾌하게 풀 수 있는 문법을 가장 좋아했는데, 편입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생각보다 문법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나름 지엽적으로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편입 영어에서 물어보는 문법은 차원이 좀 달랐다. 관사의 유/무나 정관사/부정관사의 차이를 묻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문법 문제를 contextual(문맥)에 따라 풀어야 하는 문제까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지엽적이었다.
어휘 수준은 원어민 친구가 어이없어할 정도로 극악이었다.
보통 편입 영어를 공부할 때 어휘를 3만 개 정도 외운다고 하던데, 그 3만 개 중에는 의학용어부터 법률전문용어, 철학용어 ex) ontology(존재론), epistemology(인식론)까지 다양하다.
특히 날 괴롭히던 과목은 논리였는데, 단문 논리 아니면 장문 논리로 이루어진 이 문제는 문맥상 빈칸에 들어갈 말이나 문장을 고르는 거였다. 단순히 말 되는 거 찍으면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앞 뒤 근거를 명확히 잡거나 키워드가 되는 형용사/부사 등을 캐치해서 정확도를 가지고 풀어내야 하는 과목이었다.
독해는 뭐, 한글 해석본이 더 어려운 지문들도 많고 긴 지문을 정통 해석해서는 절대 시간 안에 못 푸는 그런 수준이었다. 뭔가 기술적으로 푸는 게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나는 이걸 너무 쉽게 봤었다. 영어가 영어지 뭐, 하면 되겠지. 뭐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하루에 최소 5시간 이상 투자하지 않으면 어떻게 고꾸라질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중간에 좋은 오퍼가 들어와 일을 병행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페이스 유지해가며 공부해왔던 것 같다.
12월이 되자 긴장이 고조되었다. 전투가 시작되는 달이었기에.
첫 시험 숙대, 이대를 기점으로 내가 지원한 학교들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1월 중순을 지나고 있는 지금, 지원한 학교들의 시험은 모두 끝났고, 원하는 학교 6군데에 1차 합격을 받아 놓은 상황이다. 특히 한양대는 기대했던 학교가 아니었는데 합격하게 되어 공부한 보람을 느꼈다.
최종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내 노력을 인정받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다.
외대를 마지막으로 모든 시험을 마치고 열흘을 내리 놀았다.
후련한 기분은 잠깐이었고 그냥 어색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동안 보고 싶던 넷플릭스 시리즈나 줄곧 봤다.
그러다 잠에 드려하니, 내가 참 웃기고 대견하다 싶어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앉았다.
나이 서른.
'보통은' 길이 정해지고 안정되는 나이인 것 같다.
내 주변은 하나 둘 결혼을 한다. (아니면 준비하고 있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 심지어 후배들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속은 모르지만 어딘가 안락해 보인다.
나 또한 그들과 같았다. 중간에 우회로를 탄 것만 빼고.
가끔 분에 넘치는 걱정을 한다. 이게 진심 걱정인지 아니면 평범해 보이고 싶어서 걍 읊조리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뭐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건 그녀의 콧김이다. 코웃음에 의한.
난 혼자 살 위인은 못 된단다. 그건 동감이다.
하지만 때는 모르겠다. 꿈 이루겠다고 서른에 대학 가는 애가 그런 걸 어찌 알겠나
그래도 확실한 건
나는 도전하는 애이고, 주류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 겁먹지 않을 수 있는 대범한 애라는 거다.
솔직히 별로 안 무섭다. 안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 없다.
그냥 바라던 학교에 가서, 3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서 최선을 다하고
졸업 후에는 또다시 최선을 다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뿐이다.
정말 단순 그 자체다. 가끔 영화 같은 거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내가 몸만 좀 받쳐줬다면 군인 같은 거 해도 잘했을 것 같다. 목표 설정해서 입력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것만 하는 그런 거.
어쨌든 2022년의 초입에 들어서 스치는 생각은
'아, 나 잘했다.'이다.
최소한 할머니 돼서 후회할 일 한 가지는 줄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내 주변, 내 가족 모든 사람들 동물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