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이별의 감상
기왕이면 잘 살아줘.
먼 훗날 옛 사랑이 초라해지면 그건 더 싫어.
추억들이 떠오르면 그 때만 잘 견디면 돼.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우릴 보면 알 수 있잖아.
나를 떠나지 마
나를 버리지 마 너뿐인걸
내겐 너 하나가
내게는 유일했던 휴식 내 모두였던 너를
보내기엔 아무 준비 안된 나를 제발 버리지 마
.
.
.
여기 이별을 맞이한 두 사람이 있다.
한 쪽은 칼같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나
다른 한 쪽은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울부짖기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랑은 같이 했을 텐데, 어떻게 결말은 이렇게나 다를까.
2011년 5월. 월간 윤종신 <두 이별>이 세상에 나왔다.
무려 8분이 넘는 곡이지만 듣다보면 눈 앞에 익숙하고도 잔혹한 이별 풍경이 떠올라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필자는 이 곡을 거의 8년째 듣고 있다. 두고두고 들어도 늘 새롭고 때 타지 않기에.
일 절은 가수 이정이, 이 절은 윤종신이 노래하는데
일 절에서 이정은 이별 상대에게 꽤나 담담한 태도로 일관한다.
기왕이면 잘 살으라면서, 혹시 내가 떠올라도 안부조차 물을 수 없게 멀리 가 버리란다. 추억도 다 기억일 뿐이니 힘들어도 그 때만 잘 견디면 된단다. 그러면 나중엔 각자 다른 사람 만나서 잘 먹고 잘 살게 돼, 그 때엔 이따위 추억 묻어둔지도 모를 거라고.
아, 독하다. 독해.
실제로 이별 상황에 이런 말을 들으면 내 입에선 어떤 말이 튀어 나올까?
아마도... "너 나 사랑하긴 했니?" 가 아닐까.
저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창백한 대사는
도저히 연인의 목구멍에서 나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완벽하게 정돈된 듯한 음성.
이 곡에서 이정의 음성이 그러하다.
바람처럼 차갑고, 정리된 책들처럼 가지런하다. 그래서 그 모서리들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붙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단칼이다. 반면 이 절은...
어떻게 보내줄까. 너무 사랑했다고, '부디 행복해 줘.'
고개 떨굴까? 우리 이별...
원하는 대로 해줄게. 혹시 꿈꿔왔던 이별이 있니.
응?
차이는 마당에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뚜디리는(?)소리야.
착한 거야 맹한 거야. 참. 제정신이 아니겠구나.
저러다가도 또 상대에게 떠나지 말라며 애원을 한다.
애원할 땐 언제고 갑자기
'그래 네 말이 맞아. 헤어질 때가 돼서 헤어지는 거지. 찌질한 이 남잘 버려..!' 라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듯 하다가,
금세 다시 붙잡고 애원하고...
부정-원망,자학-체념-붙잡기 테크를 인피니트로 타는
이별 뒤 전형적인 이상증세를 계속해 보여준다.
어때 참 멋 없지.
있던 정마저 떠나지?
붙잡고 매달리는 가련한 사랑, 떠나. 떠나...
일 절에 비하면 매우 흐트러지고 이랬다 저랬다인
난장판에 가까운 이 절은 복잡하게 엉킨 감정선을 윤종신 특유의 창법으로 잘 풀어냈다.
개인적으로 나는 2절이 더 좋다.
더 와닿고 마음이 쓰인다.
보통 이별을 '당한'쪽이라면 이런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지난 사랑에 찌질했던 경험 하나씩 감춰두고 살고있지 않은가?
찌질이라는 게, 그 단어를 갖다 붙여서 없어 보이는 거지. 사실는 굉장히 진솔하고 인간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정든 사이에 말로써 헤어지쟀다고 어떻게 정말 단번에 마음까지 끊어낼 수 있겠는가. 다 저렇게 울고 매달리고 지지고 볶고 하는 거지.
좀 더 새로운 시각에서 이 곡을 살펴보면
사실 일,이절의 화자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헤어짐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헤어짐 뒤의 감정은 일련의 서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해방감에 속이 후련하고
이별이 뭐 대수냐 차라리 잘됐다 하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무너져 바닥을 긴다.
전에 나눈 메시지들을 정독하거나 술에 취해 통화버튼을 누를지도, 집 앞에 찾아가 매달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보편적인 이별의 전철 아니던가.
누군가를 사랑했노라면
그리고 그와 이별하게 된다면
어쩔 수없이 겪게되는 아이러니를 일절과 이절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명곡은 시간이 지나 바랠 수록 더 귀하고 좋다고 했던가.
누구든 이별에 한 번쯤 아파본 사람이라면 8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곡을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