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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돌고래씨 Jan 19. 2022

우리 삶이 그림책이 된다면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을 생각하며

The Important Thing About Margaret Wise Brown    

 

   우리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있다면, 그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은 어떠할까?


나의 시작도 마지막도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닐 텐데, 간신히 기억하거나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 겨우 스쳐 지나가거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일들, 먼지처럼 잘고 바위처럼 묵직한 기억을 어떻게   권에 담아내고, 기꺼이 만족하는 마침표를 찍을  있을지 고민해본다.


  작가  오스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겨울 일기]  사람의 인생을 담아냈다고 하기에는  가벼운 두께의 책이다. 누군가의 삶이 이렇게 가벼운 두께로 쓰일  있을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작 진짜 중요한 것들은 모두  안에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의 순간들이 이토록 담백하게 기억되고 정화되어 마침내 기록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부모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운   여자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백을 쏟아낸다. 나약하고 외로웠던 시간들을 마주하고 살아내거나 버텨온 시간들을 다시 펼쳐본다.  낯선 누군가의 삶이 완전한 타자인 나의 시간과 겹쳐지면서 그가 되어 살아보는 착각에 빠지고,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삶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림책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에 대한 중요한 사실] 20세기의 그림책 작가였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을 기리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바넷이 그녀의 삶과 작품들에 대해 그림책 마흔  페이지에 담은 그림책이다. 보통의 그림책들은 34페이지를 기준으로 조금 적거나 또는  많은 글과 그림들이 펼쳐진다. 책의 내용이 중요하지 페이지 장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생각하던 순간,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인다.



  이 그림책만큼은 마흔 두 페이지에 그녀의 삶을 담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마흔 두 해의 그녀의 삶을 마흔 두 페이지에 담아내었다는 시도만으로도 한 페이지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다. 그림책 속에는 자유분방했고 동물을 사랑했던 유년기의 마거릿과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선명하고 강렬하게 펼쳐진다. 발가벗은 채로 차가운 물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첫 책의 고료를 전부 털어 한가득 꽃을 사고, 그 꽃으로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친구들과 파티를 한다.  초대도 인정도 받지 못한 파티장에서는 입구 앞 돌계단에 앉아 편집자와 단 둘의 티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원색의 도형같이 분명하고 뚜렷한 색과 모양으로 누군가의 삶이 펄떡이며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완전하게 존재한다.


  나의 일기를 누군가 심드렁하게 또는 열심히 지켜봐 주던 어린 시절에도, 멀고 먼 여행지에서도, 무언가를 쓰고 싶은 지금에도 일기 쓰기에는 도통 취미가 붙질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짧은 책 한 권 또는 그림책의 페이지에 맞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다.


  계단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겁내지 않았던 아이, 자전거 바퀴 사이로 다리가 말려들어가던 순간, 빗속에서 물총 싸움을 하던 시원한 오후, 쥐불놀이 깡통 속에서 벌건 솔방울이 와르르 어깨 위로 쏟아지던 날, 처음으로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지만 삼초만에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갔던 영광스럽고도 아찔했던 기억, 처음이라 빨갛게 설레거나 비겁하게 물러섰던 날들도,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이미 가버린 누군가의 뒷모습을 허공에서 더듬어냈던,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없는 기억들.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나와 마주 앉아하고 싶은 대화. 어쩌면 책과 타인을 비롯해 밖으로 향하던 시간만큼, 내 안의 시간을 불러내고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늦어버린 시간에 대한 연체료를 지불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겨울 일기]를 써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이 겨울이 생각만큼 길지도 춥지도 않을 수 있겠다.

겨울을 무사히 지나 봄을 맞을 용기가 날 수도 있겠다.  

봄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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