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기록_29살
벌써 2년이나 지난 시점에 29살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 건 내가 게을러서이기도 하지만 그냥 항상 그렇듯 하고 싶어 져서이다. 글 쓰는 습관과 연습이 필요한 시점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29살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2년이나 지난 일이기에 기억이 벌써 듬성듬성 하지만 그 당시의 일기와 사진을 참고해 서툴게, 그리고 천천히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순례길 100km(정확히는 115km) 루트는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사리아로 이동한 뒤 거기서부터 산티아고를 향해 걸으면 되는데, 보통 5일에서 길면 10일 정도 소요된다. 순례길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충족되는 루트라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직장인이나 트래킹 초보들이 많이 선택하는 루트이다.
내가 이 루트를 선택한 이유는 트래킹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초보에다가 순례길 이후 도시 여행도 계획했기 때문에 비교적 짧게 걷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쉬운 결정이지만 이 거리를 걸었기에 느낀 점도 많았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DAY0. 마드리드 -----> 사리아
마드리드에서 사리아까지는 기차를 타고 약 5시간이 걸린다.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탄 사리아행 기차가 마드리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고 있을 무렵,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나 싶더니 창문이 금세 빗방울로 가득 찼다. 내리는 비로 창문 밖 시야가 흐릿해진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어느 한 역에 기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전 역에서 나오지 않았던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곧 직원들이 직접 객실에 와서 무언가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영어도 못하는 나에게 스페니쉬로만 안내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이었다. 영어권 외국인들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지 직접 직원분에게 가 핸드폰 번역기를 들이밀며 안내되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몇몇 손님들은 짐을 챙겨 내릴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후부터 자기 딸이 방탄소년단 팬이라며 계속해서 말을 걸던 옆자리 스페인 아저씨가 친절히도 이 기차에 문제가 생겨 버스로 환승했다가 다시 열차를 타야 한다고 번역기를 써가며 알려주었다. 본인이 사리아 바로 전역까지 가니 자기만 따라오라 했다. 이 친절한 아저씨는 버스로 환승하고 다시 기차를 탈 때까지도 내 옆에 붙어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정말 감사한 분이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해프닝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사리아역에 도착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게 개어 화창하게 변해 있었는데, 맑아진 날씨와는 반대로 생각보다 낯선 사리아 풍경에 겁을 먹은 나는 불안감으로 잔뜩 흐려졌다. 묵게 된 알베르게에 동양인은 나뿐이고, 나 외에는 모두 영어권 외국인들만 있는듯 했다. 해외여행으로는 항상 가까운 아시아권 나라만 갔던 터라 동양인이 한 명도 없는 풍경이 너무 낯설었다. 들려오는 언어도 낯설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풍경들과 낯선 언어 그리고 낯섬이 주는 불안감.
이게 내가 순례길에서 받은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