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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에 의연한 사람이 성장한다

[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6월 14일(오후 6시 11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사진=픽사베이)

[신흥자경소] 격투 관련 체육관에 20대 남성 A가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는 초보였지만, 정말 열심히 다녔다. 매우 열정적이었다. 일주일에 2번 나오기도 힘든 종목임에도, 체육관이 문을 여는 날마다 나왔다. 2~3개월이 흘렀는데도, 꾸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알고 보니, 매일 반복되는 기본기 훈련에 불만을 가진 듯했다. 2~3년 차 이상 수련자들도 체육관에 나오는 날이면 단순한 기본 연습을 1시간 이상 거친다. 그걸 본 A는 미래에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외적 명분을 넘어, 실제 사유는 따로 있었다. A는 ‘스파링’을 두려워했다. 

     

누구나 체육관을 오래 다니려면, 어느 정도는 스파링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스파링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체육관을 그만둔다. 1달, 길어야 2~3달 안에 전부 그만둔다. 이는 복싱, 레슬링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몇 년을 넘기는 사람은 소수다. 대체로 스파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해 더 역동적인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된다. 무엇보다 초보일수록, 스파링을 일종의 ‘싸움’이나 ‘승부’로 보는 경향이 있다.

      

A도 그랬다. ‘승패가 없는 훈련 과정’ 일 뿐인 스파링의 본질을 이해 못 했다. 스파링에서 지는 걸 ‘자존심’과 ‘체면’을 구기는 것으로 여겼다. 더구나 기본연습 때조차도 마치 승부를 하듯 달려들어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일쑤였다. 애초에 기본 훈련 말고 더 다양한 걸 배우고 싶다던 그의 욕구는, 자유 대련인 스파링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스파링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 ‘진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운동을 관뒀다. 

     

같은 시기 시작한 50대 B는 달랐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나오거나, 생업 사정상 한 번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A보다 꾸준히 오래 다녔고, A가 거부한 스파링도 안전한 선에서 계속해나갔다. 2년 가까이 다닌 그는 이제 상당한 실력자인 체육관 ‘고인물(생체 고수)’과 스파링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실력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B는 스파링을 연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A였다면 불쾌하거나 패배감을 느꼈을 그런 상황에서도 B는 초연했다. 늘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고인물들에게 덤벼들었다. B가 과연 전혀 패배감을 못 느끼는 인물이라서 그랬을까. 그도 무력감이나 패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 강해지고 발전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B는 A보다 훨씬 강해졌다. B는 A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완력이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아예 다른 경지로 넘어섰다. 

     

그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패배’를 과정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이를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패배에 의연한 사람이 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설사 훈련과정일 뿐인 ‘스파링’에서조차 패배하는 듯한 상황에 닥치면 불쾌해하거나 분하게 느낀다. 이는 인생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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