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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현실은 애매하고 미묘하다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9월 27일(오후 6시 51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화제가 된 사례들은 대체로 언어·육체 폭력을 동반한 경우다. 다만, 대한민국 직장 내에선 ‘괴롭힘인지 아닌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애매하고 미묘한 사례들은 대부분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묻히기 때문에 폭언·폭행을 동반한 사례보다 실상은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9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직장 상사로부터 폭언·폭행 등 괴롭힘을 당하다 생을 마감한 고(故) 전영진씨 사건을 두고 업무상 재해 심의 결과 산업재해로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이 사실은 지난 22일 유족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영진씨는 2021년 8월 취직한 직장에서 만난 상사 A(41)로부터 “진짜 확 죽여 벌라. 내일 아침부터 함 맞아보자”, “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12대야”, “니네 애미애비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등 폭언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A는 영진씨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는 등 4차례 폭행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언론이나 유족 등을 통해 세간에 드러나는 사례들은 대부분 폭언·폭행 등이 포함된 과격한 사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직장 내 괴롭힘 대부분이 매우 애매한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아, 대다수 피해자들은 확고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폭언·폭행 등 과격한 사례는 그 괴롭힘 정도가 누가 봐도 명확한 만큼, 피해자가 노동청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그나마 일부 있다. 하지만, 괴롭힘이 사내 시스템적으로 관습처럼 굳어져 괴롭힘인지 아닌지 미묘하면서도 헷갈리게 일어나는 경우엔 대부분 구제받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30대 F씨(男)가 당한 사내 괴롭힘도 그런 사례다. 사원인 F씨는 이직한 직장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직면해야 했다. 팀장 J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 괴롭힘은 애매한 선을 지키면서도 매우 교활했다. 무엇보다 윗선에선 그러한 괴롭힘 방법을 시스템화하여 은근히 전통처럼 후배들에 물려줘왔다.   

  

그 방법이라 함은 마치 고대 원형 투기장인 콜로세움을 연상케 했다.     

가령, F씨가 작업물을 제출하면 팀장 J는 무조건 반려(返戾)를 했는데, 문제는 그 반려 과정을 모든 전 직원들이 인트라넷을 통해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F씨는 그저 본인이 아직 일에 적응하지 못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 꼼꼼히 일을 했고 더 완벽한 결과물을 제출하려 했다. 하지만, 팀장 J의 거부는 계속됐다. 원래 제출물 거부 후엔, 팀장이 따로 불러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지적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하지만 F씨에겐 그러한 가르침도 거의 없었다. 마치 ‘반대를 위한 반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과정에서 사회생활 눈치에 민감한 여성 직원들이 F씨가 당하고 있는 게 ‘직장 내 괴롭힘’에 가깝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분명 다른 사람과 수준 차이가 없었던 F씨 작업물만 거부당하는 건, 원인이 결과물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생활 고단수들의 직감이었다. 뒤 이어 아주 둔감한 남자 동료들조차 그 행위가 ‘권위를 이용한 괴롭힘’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게 괴롭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앞서 밝혔듯 마치 ‘콜로세움’ 같은 제출 시스템에 있었다. 팀원이 제출한 작업물을 팀장이 반려하면, 그 사실이 매우 투명하게 전 직원들에게 공유되는 식이다. 만일 대부분 작업물이 쉽게 통과되는데 특정 누군가만 계속 거부되는 상황이 일어나면, 구성원들은 이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고 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내문화도 있었다. 투기장 주변으로 둥글게 관람석이 마련된 콜로세움처럼, 타깃이 된 특정인이 거부되는 과정을 주변 직원들은 마치 관람석에 앉은 것처럼 구경하는 셈이다. 

     

특정 누군가만 반려되면 주변에선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계속 제출물이 반려되는 팀원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출물 내용 외에 무언가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다거나 그저 타깃이 돼 괴롭힘을 당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려가 매우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그 팀원이 ‘일을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피해자가 사내에서 정치력이 약한 신입일수록 그 타깃이 될 가능성이 올라간다. 결국 이를 당하는 피해자 입장에선 반려 상황이 계속되면 극심한 이미지 타격과 함께,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이 가해지는 셈이다. 

    

“내 작업물만 이상한가?!”, “내가 뭘 잘못 썼나?!”와 같은 불필요한 자기 검열이 심해지고, 특히 주변에선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압박감이 심해진다. 그러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자긍심’에 심각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체면을 중시한다. 자기 체면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깎이는 상황을 누구나 매우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런 점에서 직원 모두에 공개된 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그 상사의 괴롭힘은 매우 교활하면서도 잔인했다. 더 놀라운 건, 그러한 괴롭힘 방식이 그 회사에선 대대로 행해져 온 ‘시스템’의 일종이란 사실이다. 그 회사 상사들은 부하들을 조련하기 위해 마치 ‘콜로세움’ 같은 그 시스템을 활용해 팀원을 괴롭혀 왔다. 

    

결국 팀장 J는 그저 부하직원 F씨를 조련하는 중이었을 뿐이다. 체격이 크고 일을 잘해 빨리 성과를 내는 타입인 F씨가 주변 선배나 회사 자체를 우습게 보지 않도록, 윗선에선 “그를 조금 압박하라” 식의 지시가 내려졌을 수 있다. 혹은 팀장 J 선에서 자체적으로, ‘빨리 성과를 내고 주목받아 왠지 상사를 잡아먹는 것 같은’ F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등 이유로 그의 업무 작업물까지 후려치고 싶은 미묘한 심리가 생겼을 수 있다.   

  

F씨가 팀장 J에게 실수한 건 없었을까. 불행히도 없지 않았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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