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10월 04일(오후 7시 47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1. 2000년대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A씨는 내신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해 왔다. 1학년 때는 성적이 반에서 10등 내외였지만, 2학년 땐 반에서 2~3등, 3학년 땐 반 1등으로 올랐다. 주변 선생들은 A를 눈여겨봤다. A처럼 학년별로 점수가 큰 폭으로 오르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A의 전국 단위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저조했다. 당시는 내신보다 수능점수가 입시에서 훨씬 중요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주변 선생들 중 일부는 A를 보고 비웃기 시작했다. 1학년 때 내신이 좋지 않아 수시로 좋은 대학교를 가긴 어렵고 결국 수능 일반전형으로 가야 하는데, A의 수능 모의고사 성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진학이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수능은 갑자기 공부한다고 해서 점수가 쉽게 오르는 시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A가 속한 고등학교는 전국 수준에서 보자면, 수능 성적이 일반고 중에선 거의 최하 레벨 수준이었다. 아무리 내신이 좋은 학생도 전국 단위 경쟁에선 처참히 발리는 게 매우 당연한 고교였던 것이다. 이 점을 경험상 매우 잘 알고 있는 그 학교 선생 중 일부는 A를 보고 낄낄대며 조소(嘲笑)했던 것이었다.
당시 공립학교 교사는 ‘안정성’이란 장점 덕에 ‘가늘고 길게,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무사하게,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인생 구호를 지닌 이들이 진입하기 좋은 직종이었다. 진취적, 남성성, 도전, 모험, 하이리스크-하이리턴 등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A를 다독이거나 품지 못하고 비웃고 낄낄 대는 선생들이 보여준 모습이 차마 이해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한 소인배(小人輩)들 때문에 훌륭한 교사마저 그 세계에 있다 보면 타락하거나 소외되거나 이탈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A가 고3이던 시기 시행된 수능시험은 평소보다 지문이 짧게 출제됐다. 모의고사에서 언어·수리·외국어 성적이 각각 4~6등급 정도였던 A는 그해 실전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를 각각 1~2 등급 찍는 쾌거를 이뤄낸다. 단, 사회탐구 4과목 성적은 기존 실력대로 대체로 4~5등급대였다. 그래도, 모든 과목을 합쳐보면 이전 모의고사에 비해선 큰 폭으로 점수가 오른 게 분명했다. 당시 난독증에 시달리던 A가 수능 지문이 짧아져 크게 부담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A가 재학 중이던 학교는 전국 모의고사를 치를 때 선생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시험 중에도 학생들이 떠들고 노는 소위 ‘막장고’였다. A의 수능 점수 상승은 관리감독이 철저한 실전 수능의 환경 측면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복합적 이유를 알 리 없는 선생들은 A의 수능 결과만 보고 화들짝 놀랐다.
도저히 자기들 상식으론 이해되기 어려운 점수 상승 앞에 그들은 결국 ‘그 새끼(A)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거였구먼’, ‘우리가 조소하고 업신여겨서 점수가 오른 건가’ 등 나름의 상황파악을 하게 된다. 거기엔 ‘우리들(선생들)이 모의고사 현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그땐 실력발휘가 안 되었던 건가’라는 결론은 전혀 없었다. 그러한 상황파악을 기반으로, 나름 선생들 입장에선 A가 괘씸하다고 여기는 부류도 나타났다. 주목하고 기대해 왔던 자신들을 A가 속였다는 심리였다.
무엇보다 그 학교는 전교조가 장악한 학교였기에 ‘참 교육’을 명분으로 어떠한 입시 상담이나 수능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랬던 만큼, A는 집안사정상 학원도 다니지 못하면서 그저 혼자서 열심히 문제집을 풀며 대입을 준비해야 했다. 선생들은 사실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거다. A는 진학 상담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선생들은 단지 자기들이 기대하고 지켜봤었다는 이유로, 자기들 나름대로의 상식 안에서 매우 졸렬하고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A를 이상하게 꼬아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A가 재수를 택했다는 사실을 들은 선생들은 더욱 화들짝 놀라게 된다. 내신과 수능성적이 계속 상승하던 A였기에 재수를 하면 점수가 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던 참에, 선생들은 결국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괴상한 짓거리를 하게 된다.
작당모의를 통해 A에게 나름 엄벌 아닌 엄벌을 처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졸렬하고 유치한 처사였다. 학교 측은 졸업식 때 전교 내신 성적 10등 안으로 드는 학생을 위주로 여러 명목을 내세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이름을 호명하고 단상 앞으로 불러 시상해 왔는데, A에게만 일부러 초라하게 대우했다. 이를테면 다른 학생들에겐 두꺼운 케이스와 함께 상장을 전달했는데 A에겐 달랑 종이 상장 하나만 주는 식이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한 셈이 되므로 A로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황당한 일이었다. 특히 그 엄벌들은 A의 고1 때 담임이었던 해당지역 전교조 지부회장쯤 되는 선생이 주도했다. 그러한 추태를 일삼으려면 학생에게 직접 시상하는 교장을 설득시켜야 했는데, 선생들이 그때 댔던 명분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A는 자극시키면 점수가 오르는 부류니, 일부러 하대해서 자극시키자..’
하지만 실상 A는 선생들과는 관련 없이 그저 혼자서 열심히 수능점수를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더구나 수능 점수 급등은 그저 난독증인 상황에서 그해 수능 지문이 매우 짧게 나와서 어쩌다 얻어걸린 일시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자의식 과잉’, ‘콤플렉스 덩어리’ 선생들은 자신들의 편협하고 괴상한 심리 잣대와 졸렬한 권위의식 만으로 A를 바라봤다. 선생들은 늘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수능 모의고사 점수를 보고 비웃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상은 본인들은 수능을 가르칠 능력이나 깜냥도 되지 못하고, ‘참 교육’을 명분으로 자기들 편의와 이득만 챙기는 교활하고 무능한 부류였던 것이다. 자기들이 쌓은 성(城)을 넘어서는 학생에겐 나름 명분을 내세워 대단히 훌륭한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인 양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편협한 사고로 ‘괘씸하다고 여기며’ 저열한 괴롭힘을 행할 뿐이었다.
문제는 선생뿐 아니라 학생 사이에서도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는 점이다. A가 졸업식 때 단상 앞으로 나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본 주변 학생들 중 한 아이는 A 면전 앞에서 그간 품어온 ‘열등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A를 돌려 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A 앞에서 알랑방귀 뀌고 친한 척하던 아이였다. A는 인생 처음 겪는 ‘뒤통수’에 어안이 벙벙했다.
특히나 학생들 사이에선 “A가 거짓말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수능 뒤 A는 “수능을 잘 봤냐”는 주변 물음에 “언수외(국영수)는 생각보단 잘 나왔는데 사탐이 망해서 재수해야 한다”고 주변에 몇 번 얘기했었다. 언수외 점수도 살짝 말했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말을 다른 아이들은 매우 다르게 해석했다. 그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매우 공부를 못하는 곳이었기에 수능 원점 500점 만점 기준 400점만 넘겨도 매우 잘 본 것처럼 여기는 곳이었다. 실상은 400점을 간신히 넘겨도 전국 수준에서 소위 명문대라 불리던 곳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점수인데 그 실상을 그 학교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A가 속한 고3 반에서 현역으로 서울권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으니, 실상 선생과 아이 모두 입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편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한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입시에 무지한 여러 아이들은, A의 언수외 점수만 듣고서는 마치 A가 연고대 진학쯤은 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간 자기들 수준에선 A가 ‘공부 잘하는 이미지’였기에 팩트 없는 다분히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그 점수를 이해했고 그게 와전돼 주변으로 퍼진 것이다. 와전 정도가 심해 A도 모르게 주변 아이들 사이에선, A의 모든 수능 과목 등급이 대략 1등급은 됐을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당시 A의 고3 담임이 수능성적표를 교무실에 그냥 방치하다시피 놔둬서 반 아이들이 모든 학생들의 점수를 알게 됐다는 거였다. ‘최소 연고대쯤 성적이 나왔으며, 올 1등급은 받았을 것으로 알려진’ A의 사회탐구 4과목 수능성적이 4~5등급 선인 것을 알게 된 아이들 사이에선, 그렇게 “A가 거짓말했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고3 때도 마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처럼 반에서 뛰어놀고 현실 파악이 되지 않던 대다수 아이들 속에서, A는 단숨에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
그 모든 상황의 이면을 A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A는 주변의 오해와 비난과 조롱을 영문도 모른 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입시에 무지하고 객관적인 현실파악이 되지 않는 아이와 선생들 속에서, 환경을 뛰어넘어 열심히 하고 점수 급등을 이뤄낸 학생조차 ‘거짓말하는 나쁜 놈’이 돼버린 거였다.
여러 오해와 억측과, 조소와 비난 속에 A는 거의 공황장애급 고통을 한순간에 겪으며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키웠다.
A는 졸업식 이후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그 동네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가족이 그 동네를 떠나 이사하게 되면서 결국 실제로 완전히 연이 끊어지는 데 성공했다. 억울한 누명과 이상한 소문들 속에서 공황장애급 고통을 겪은 A는 안타깝게 재수도 실패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3수 끝에 A는 나름 괜찮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수험 공부보다는 내적 상처를 극복하는 데에 큰 에너지가 쏠린 탓인지 노력만큼의 결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기존 인연들과 연이 끊어진 덕에 그나마 작은 결실이라도 맺은 것이다.
#2. 30대 B씨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자기 일’을 해보고 싶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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