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나 같은 친구?

수치심을 이기고 나를 다시 설명하다

by 하트온

나는 너에게 어떤 친구일까


친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는 항상 그대로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질리도록 보아온 검은 단발머리, 여전히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읽고 쓰기가 불러오는 저 세상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극도의 내향성, 상황 판단에 한 박자 느리고, 술도 못 마시고 예능감도 떨어지는, 게다가 낯까지 가리는 노잼 친구. 그럼에도 자꾸 불러내서 편해지면 나오는 코믹한 흥부자 댄서의 모습을 끌어내고 싶은 친구. 나는 그런 친구가 아닐까.


그러다가 친구는 어떤 순간에 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하고 놀랄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까도 까도 또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 같은 존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람이다. 나를 어릴 때부터 알았다면 겹겹의 껍질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내 속 한가운데 마음을 보았을 수 있지만, 말 그대로 그 마음은 어렸던 시절, 타고난 유전과 어린 시절 환경이 빚어낸 날 것 그대로의 마음, 오래전에 내 속에 잠시 존재했다 스쳐 지나간 무엇일 뿐이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속에 몇 겹의 철벽을 설치한 복잡한 미로 가득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다. 거침없는 비판을 해 주고, 언제나 쉽게 속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솔직하고 단순한 사람을 친구로 선호하는 사람에겐 나는 구미에 맞는 친구가 아닐 것이다.


내 안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 시작부터 어렵지는 않다. 가장 바깥에 있는 문은 스타벅스 카페 문처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건넨다. 하지만, 그다음에 보이는 문은 마치 매장 안 뒷방 - 내가 사이사이 점심을 먹고 휴식하는 - 문 같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나와의 관계가 의미가 되고 좋은 관계를 맺어가기로 결심한 사람들 정도만 그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일상 스케줄을 파악하고, 서로의 진짜 취향을 이야기하며,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없는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누며 휴식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여기 이 관계까지 오는 것도 나에겐 오랜 시간이 걸리며, 때론 - 부담이나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자극이 너무 잦아지면 - 다시 스타벅스 매장 안에서만 보는 관계로 전환시키고 서서히 뒷방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매장 위 이층 내 침실까지 언제든 내어주는 관계는 이 세상에 나의 베프 1명과 아주 가까운 가족과 친척 몇 명 밖에 없는 것 같다. 때때로 이 침실을 당연하다는 듯 쉽게 요구하는 아직 뒷방도 안 거친, 스타벅스 매장 수준의 지인들 - 아직 친구라는 이름이 어색한 - 이 있는데, 주로 그런 요구를 거절하고 나면 그 관계는 급히 소멸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기에, 어차피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 - 항상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을 내 이익을 위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에 머리 회전이 빠른 - 과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이다.


특히, 나는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돈이나 명의를 빌려달라고 할 때가 가장 싫다. 대부분 그리 절실하지 않은 이유, 자신이 빨리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추진하는데, 쉬운 도구 방편으로 만만한 사람을 상대로 급전이나, 명의를 구한다. 나를, 내 감정을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많은 경우 나를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돈/학위/명의 소유자 정도로 여긴 것이 나는 무척 무례하게 생각된다. 내가 쉽게 타인에게 손 벌리고 의지하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기에 더욱 매너가 아니라고 느끼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줄 준비가 안된 것을 맡겨놓은 듯 달라고 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걸 준 만큼이 부족하다고 떼를 쓰는 사람들, 이 사라을 이용해서 최대한 뽑아내면 그만이라는 태도의 사람들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고 곤란하다.



나 같은 친구 사용법


나는 누군가에게 매일 같이 붙어 지내며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에 관해 수다 떨고 싶은 친근한 친구, 가족처럼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고, 마음 한가운데로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마음이 항상 활짝 열린 친구는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잃고 싶지 않은 좋은 친구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며, 열정적으로 내 삶에 사명에 최선을 다 하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친구들이 나를 만나 에너지를 얻고, 도전과 자극을 받고, 생각과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얻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친구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격려하는 응원단이며,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성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언제나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모색하는 든든한 같은 팀이다.


내가 이런 친구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친구들은 제법 정기적으로 연락하기 시작한다. 결정해야 할 선택의 기로 앞에 섰을 때,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에, 여러 가지 중요한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을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 정성스레 듣고 깊이 공감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입 무게가 강철덩어리 같은 사람이 필요할 때, 함께 깊은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친구는 바로 나다. 나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잊고 흘려버릴 가벼운 재미가 아닌 극적인 전환점이나 꼭 필요했던 깨달음으로 오래오래 남는 묵직하고 소중한 마음의 재산이 된다.


쓰다 보니, 나라는 친구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친구다. 섬세한 유리 성, 겹겹의 철벽 문을 열어 가려면, 조심조심 살살 들어가, 열쇠 코드를 잘 맞추고 일일이 내 손으로 열어내야 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렵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철벽 문을 점점 열어갈수록 만나게 되는 것은 그만큼 노력한 가치가 있는 장점, 거기까지 다가온 당신의 인내심과 가치를 충분히 알고 내 몸처럼 소중히 여길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런 친구다. 어때, 나 같은 친구?


뭔가 내 손으로 나를 발가벗겨 세워둔 것 같은 오글거리는 느낌이 드는 글이지만, 썼으니 발행합니다. 수치심에 취약하지만 견디는 연습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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