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큰 사람들

큰 감정 에너지의 무한한 가능성

by 하트온

각 사람의 고유한 감정 스펙트럼


성격과 성향, 지능,... 이 모든 것은 하나하나 떼서 재단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마치 겉에서 보기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무엇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나의 통찰력과 직감이 향하고 있다. 평생 이 주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읽고 생각하고 관찰해 온 내 나름의 결론이다.


내 직감이 속삭이는 것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드러난 성격 지표나, 지능 성향 리스트가 무언가 크게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 - 아직 정확히 형체가 잡히지 않는 몽글몽글한 그것 - 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나는 그것을 '각 사람 고유의 감정 스펙트럼'이라 이름 붙여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겠다.


내 마음에 떠오른 '감정 스펙트럼'이라 이름 붙인 이것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조금이라도, 일부분이라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을 시작하자면, 같은 일에 대해서, 각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 폭, 깊이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같은 자극에 대해 신체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양한 것과 같다. 누군가에겐 그냥 잠시 따갑고 마는 가벼운 자극이 누군가는 소리 지르게 되고 눈물이 터져 나올 만큼 큰 자극이 될 수 있다. 비 내리는 아침이 누군가에겐 우산 써야 하는 작은 불편함을 만드는 정도의 상황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속절없이 눈물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절망감을 몰고 오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이 변화무쌍하고 복잡 다양한 감정 스펙트럼에 대한 연구가 완전히 이루어진 바 없으므로, 우리는 각 사람의 감정 스펙트럼이 형성되는 바탕이나, 정확한 모양이나, 그것들이 특정한 일을 해 내는 에너지, 지능과 연결되는 신비로운 유기적 관계를 정확히 설명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쉽게 '예민'으로 분류하는 무지함


언어가 부족한 탓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큰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예민하다'라고 분류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 덕분에 '예민'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해진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예민하다는 단어는 다음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설명하는데 쓰이고 있다.

1. 감각이 발달한 사람들 - 남이 못 듣는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남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들

2. 감정이 큰 사람들 - 같은 자극에 대해 더 큰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뭔가 피곤한 성격임을 의미하는 것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나는 사람의 성향 성격에 대해 '예민하다'는 표현을 써서 묘사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위 두 그룹의 사람들을, 아래와 같이 긍정적인 다른 표현을 써서 묘사해 보았다.


1. 감각이 발달한 사람들 - 초능력을 가진 지능이 높은 사람들 (가령, 귀가 예민한 사람들은 음악적 지능 성향이 강하고, 청각적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2. 감정이 큰 사람들 - 큰 감정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큰 성취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감정이 큰 유명인들


나는 탁월한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이나, 인도의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같은 사람들은 분명 감정 에너지가 매우 큰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조리 앞에서 생계 걱정을 내려놓고 밖으로 뛰쳐나와 많은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목숨을 거는 일에 앞장설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BTS를 키운 방시혁 대표도 어느 대학 졸업 연설에서 자신의 성향에 대해, 화가 많은 편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운영자들이 아티스트의 독특한 성향을 살려 키운다기보다, 틀에 가두고 제한하며 대중의 구미에 맞는 일정한 모양으로 비슷비슷하게 찍어내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방식들에 크게 화를 품었고, 그 화 에너지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사업 방식을 추구하게 하고, BTS 같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개성 강한 아티스트를 키워내고자 하는 사명에 불을 붙인 것인지 모른다.


물론 감정이 큰 것이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큰 감정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자기 조절에 실패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 심지어는 생을 감옥에서 마감하는 사람들도 많다. 홧김에 사람을 헤칠 정도로 화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사용하여 스스로의 인생에 화를 부르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감정 에너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큰 성취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내 삶을 망하게 하는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어쩌면 모든 성향, 모든 성격이 그렇지 않을까. 내가 타고 태어난 모든 것은 애초에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인 것이 아닐까. 이런 성격이 좋아, 순한 아이였으면 좋겠어, 이런 지능 성향이 좋아, 이런 인성이 좋은 인성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줄세우고 싶은 서열주의가 우리 문화 안에 심어 놓은 편견인 것은 아닐까.


내게 무엇이, 어떤 상황이 주어졌건, 좋게 긍정적으로 잘 조절해서 쓰면 좋은 인성,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리면 나쁜 성격, 몹쓸 인성, 안타까운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감각이 발달한 것도, 감정이 큰 것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중립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초예민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언어적 감각이 발달했으며, 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큰 감정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 남다른 감각과 감정을 언어적 힘으로 전환하여 성취를 이루고, 예민하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낸, 내게 주어진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어 긍정적인 성취를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작가들인 것이 아닐까.


내면에 끓어오르는 큰 감정들을 멋진 글, 풍부한 예술로 바꿀 줄 아는 작가들, 예술가들이 새삼 멋있게 지혜롭게 느껴진다. 감정을 조절하여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할 줄 아는 어른들 모두 칭찬하고 등 두드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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