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큰 사람이 질투를 다루는 방법

질투라는 감정을 또다시 돌아보다

by 하트온

1년쯤 전에, 부러워하는 마음, 질투, 시기심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부러워하는 마음, 질투, 시기심은 모두 탐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탐심에서 출발하는 마음은 조금이라도 품지 말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결국, 부러움, 시기, 질투는 내가 느끼는 순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 내버려 둬도 괜찮은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아갈 방향에 혼란을 주는 감정, 그것들이 내게 다가오는 순간 발로 뻥 차 버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감정이 큰 사람들이라는 글을 쓰고 나서,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질투는 나의 결핍을 자극하는 누군가에 대하여 일어나는, 나의 결핍에, 그 결핍감을 일으킨 존재에 단단히 화가 난 감정이다. 남녀 관계에서는 내 연인을, 내 연인의 마음을 가져갔거나 혹은 가져갈지 모르는 위기감을 주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런 결핍감이나, 내 것을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 분노를 느낄 때, 각자의 감정 스펙트럼에 따라 사람마다 다양한 폭, 다양한 색깔의 감정을 느끼겠지만, 질투는 분노나 슬픔에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이기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통증으로 느껴지는 감정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나의 질투는 어떤 색 어떤 모양이었나


나는 어릴 때 부산 사람들이 하는 말로 '에살'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뭐든 잘 하려고 기를 쓰고 애를 쓰는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친구들은 나를 떠올릴 때, '열정'과 '열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고들 했다. 시험기간에 한 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나를 떠올리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어떤 일에고 지는 것을 싫어했고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나는 어쩌면 결핍감, 질투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 두려운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결핍감이 너무 크고 파괴적이어서, 누군가를 경계하고 질투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몇 번의 경험 후에 나는 다신 그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 초월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내가 노력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것, 열심히 공부하기, 뭐든 최선을 다해 몰입하기에 매진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자라 어른이 되어갈수록, 낮은 자존감과 자기혐오가 위태롭게 넘나드는 피폐한 내면은, 결핍감에 더 쉽게 더 자주 노출되어 갔다는 것이다. 삶은 더 복잡해지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져 갔다.



질투가 전혀 자랄 수 없게


질투는 한 번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특히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미움으로 자라는 게 되면, 그것은 내게 너무 크고 힘든, 감당하기 벅찬 고통스러운 감정이었으므로, 나는 그 감정의 시초를 꽉 틀어막을 길을 열심히 찾았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되고 학창 시절을 벗어난 이후 질투라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고 살았다. 나는 감정이 큰 사람이지만,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마인드를 조절하여 질투가 타인에 대한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발전하는 것을 단단히 막았던 것이다. 내 마음에 질투라는 수도꼭지를 틀어막고, 내면에 시멘트 발라 향후 100년 간은 끄떡없을 대공사로 단단히 굳혔던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성취하고 성공하고 잘 되고 잘 사는 것을 좋아하고, 배울 점을 찾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 영향력이 닿는 모든 사람들이 잘되고 잘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사명이다.
저 일(것)은 저 사람에게 주어진 저 사람의 일(것)이다. 나의 사명, 내가 해야 할 일, 나의 것은 따로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따로 있다. 그러니 비교할 필요도, 남이 가진 것, 남이 줄 수 있는 것을 탐낼 필요도, 남이 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저 사람이 이룬 것을 나도 꼭 이루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있고, 이 길을 벗어나 남이 이룬 것에 정신을 팔게 된다면, 그건 나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현혹되지 말고 나의 길만 제대로 걷자.
내가 어떤 면에서 결핍감을 아직도 느끼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결핍이라는 감정도 에너지고 재능이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해서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도 재산이다.


내가 스스로의 내면을 양육하고 다시 세우고 이끌어 가는 내적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은, 애초에 내가 큰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던 덕분이다. 그것이 그렇게 큰 고통이 아니었다면, 질투 같은 감정들이 잠시 왔다 쉽게 흩어지는 감정에 불과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대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 모여, 내게 불쾌감을 주는 존재에 대해 뒤에서 험담하는 방식으로 풀며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큰 감정들은 그런식으로 해결될 수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여기까지 왔다. 나는 내가 찾은 방법이 나에게 잘 맞는 것이라 무척 마음에 든다. 내 큰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 50억 정도 재산을 모아놓은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무척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라고 느낀다.


질투 막기 대공사에 성공한 나는 어떤 다른 종류의 큰 감정이 밀려와도, 상당한 자신감이 생겨 이렇게 묻는다.

내가 다 공사하겠어. 얼마면 돼? 얼마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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