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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fodil May 22. 2024

발리에서 먹고살기

발리에 와서, 그리고 길리섬에서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피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발리의 맛있는 음식을 찾아보았는데, 나시고랭과 같은 대표적인 현지 음식 외에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으로는 바비큐립과 해산물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해산물 식당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고 가격도 비쌌다. 바비큐립은 물론 맛있었지만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는 먹지 않았다.      

길리섬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은 피자와 파스타 전문점이다. 이 식당들에는 언제나 각종 과일주스가 준비되어 있고, 아메리카노 대신 롬복 커피를 판다. 버섯과 치즈, 파인애플 등으로 맛을 낸 피자를 코코넛 주스와 곁들여 먹으니 그제서야 정말 발리에 온 것 같다. 달지 않고 묽은 느낌의 코코넛 주스는 훌륭한 에너지 보충원이었다. 정글의 법칙에 나오던 과즙이 콸콸 쏟아지는 그 코코넛과 똑같은. 주문하면 열매 하나의 꼭지를 그냥 뚝 잘라서 빨대를 꽂아주었는데, 그걸 마시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발리풍 피자는 한국의 여느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좋았다. 1인 1피자 원칙으로 혼자서 피자 한 판을 클리어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게살이 들어간 로제 파스타 역시 입맛을 돋구어 며칠이고 계속해서 먹고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바로 피자와 파스타 등 요리가격이 한국의 2/3 정도라는 점이다. 때론 1/2 가격에 파는 식당도 있어서 살이 찌건 말건, 항상 여유롭게 주문하여 식사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것은 맛이 좋았던 덕분이고...      

그러나 역시 인도네시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나시고랭과 미고랭이다. 요즘 서울의 아시안 레스토랑에도 나시고랭과 미고랭을 쉽게 주문할 수 있다. 나시고랭은 거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주식 같아 모든 식당(피자와 파스타 전문점 포함)에서 시간과 상관없이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도 팬케이크와 함께 아침 식사로 주문할 수 있는 것이 나시고랭이었다. 예쁘게 만들어진 계란프라이와 달짝지근한 소스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나시고랭. 그리고 새우와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든 흡사 볶음 비빔면 같은 미고랭. 여행 중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을 꼽자면 이 두 요리이다. 특히 나는 여행 내내 하루 한 끼는 꼭 나시고랭을 먹었다. 밥이 좋아서이기도 했고, 나시고랭이 내 입에 착 달라붙어서이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나시고랭을 안 사먹을 듯 하다. 현지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      

또 발리 대표 음식으로 사테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사테는 일종의 꼬치구이인데, 발라먹는 인도네시안 소스의 향이 아주 독특하다. 주로 주인이 직접 구워서 소스까지 바른 상태로 서빙이 되어 나온다.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기호에 맞추어 주문할 수 있고, 때때로 새우 사테를 파는 곳도 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해서 양고기와 소고기 사테를 자주 주문해서 먹었다.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흰 쌀밥을 곁들여 먹기 편하게 조리되어 나오는 사테는 물놀이 후 먹는 음식으로 최고였다. 배도 든든하게 채워지면서 열량 보충이 빠르게 되어 한 접시 먹고 나면 얼마 안가서 다시 물속에서 즐겁게 놀 수 있었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지 않은 날은 사테를 먹었다. 그리고 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사테를 먹고....

발리 망고는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나는 여행 중 망고주스를 가장 많이 마셨다. 망고는 맛없어도 망고주스는 나름 맛있었던 것을 보면 발리산 망고가 아니어서인가? 발리에서도 길리에서도 망고나무를 직접 본 일이 없으므로 실제 망고가 생산되는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곳에서 망고는 맛없고, 망고주스는 정말 맛있다는 것! 한국에서 먹는 주스보다 달지 않으면서도 망고 맛은 훨씬 더 싱싱하게 살아있다. 냉동 망고나 가루 망고, 망고 시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생과일을 직접 갈아서 만든 것이라 그럴까? 더운 여름을 식히는 시원한 얼음과 망고의 상콤한 비타민이 혀끝을 제대로 자극해주었다.        

길리에서는 커피전문점을 제외한 일반 식당 대부분에서 롬복 커피를 팔았다. 숙소에 마련된 것도 롬복 커피였다. 롬복 커피는 인도네시아산 커피이다. 고운 가루가 인상적이지만 맛은 텁텁하고 쓰다.  커피가 당기는 날, 일부러 까페에 가서 카푸치노를 주문하지 않으면 식사 후 식당에서 주는 롬복 커피를 마셔야 했다. 시키면 무조건 롬복 커피가 나오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처음 접하는 롬복 커피의 무겁고 텁텁한 맛에 굉장한 거부감이 들었다. 원산지도 아닌 한국에서도 세계에 내노라하는 인스턴트 커피들을 만드는데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대체 왜 이런 커피를 마실까? 업무차 방문했었던 중남미 커피 생산국들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갓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마시고 인스턴트 커피, 심지어 별다방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조차 인기가 별로 없다. 그런데 발리에서는 원두커피 판매점을 본 일이 없고 일상적인 커피까지 이토록 맛이 없으니, 이 나라 사람들은 커피에 애정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롬복 커피는 내 입맛에 안 맞았다. 알고보니 롬복커피는 가루가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렸다 마시는 커피인 걸 모르고 주는대로 마셨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이런 커피무식자가)그 곱디 고운 입자를 만들기 위해 발리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정성들여 커피를 갈고 볶는지도.


 하지만 그 쓰디쓴 롬복 커피의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었으니, 바로 길리 메노섬으로 스노쿨링을 갔을 때였다. 바닷속이 무서워 제대로 얼굴을 담그지도 못하고 물에 떠다니다 나왔는데, 입술은 파랗게 질리고 상체는 바들바들 떨렸다. 일행도 없이 혼자 온 터라 누구에게 티도 내지 못하고 기다리던 중 점심시간이 딱 되었다. 투어 회사에서 주선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롬복 커피! 다른 메뉴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주문한 것이었지만 뜨겁고 진한 롬복 커피는 긴장으로 굳어진 나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카페인이 들어가자 정신은 다시 맑아졌고 나는 그렇게 불안을 완전히 태운 후 해변가로 걸어나왔다. 모래밭에 몸을 누이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이내 정상 컨디션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후 일정을 롬복 커피가 준 에너지에 의지해 무사히 소화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다시 롬복 커피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지만, 만약 다시 마실 수 있다면  그때는 진짜 나도 현지인들처럼 뭉근히 기다려서 가루가 가라앉은 뒤 배어나온 진한 롬복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고 싶다. 그렇게 해변가의 고운 모래보다 더 곱게 갈린 커피에 들어간 발리인들의 정성을 제대로 음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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